[단독]또다른 밀양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法 "합의해도 용서없다"

류인하 기자 입력 2014. 4. 30. 13:08 수정 2014. 4. 3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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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울산지방경찰청은 "울산에 거주하는 여중생이 밀양에서 수개월간 고교생 44명으로부터 집단성폭행을 당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울산지검 특별수사팀은 2005년 1월 8일 경찰이 송치한 피의자 44명 중 10명(7명 구속·3명 불구속)만 기소하고, 20명은 소년부에 송치했다. 나머지 13명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피해자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한명은 다른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점을 들어 타청에 이송했다.

어린 여학생 1명을 44명의 고교생이 집단강간했음에도 처벌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미흡했다. 울산지법 역시 구속된 7명의 학생 중 5명이 신청한 보석을 허가했고, 기소된 10명 전원에 대해 소년부 송치결정을 내렸다. 부산가정법원은 검찰의 소년부 송치결정을 받은 가해학생 20명 중 4명만 소년원으로 넘겨 수감명령을 내렸을 뿐 나머지 16명은 보호관찰 및 80시간의 봉사활동, 40시간의 교화프로그램 수강명령을 내렸다.

소년원에서의 생활은 전과가 남지 않는다. 수사자료로서 결정문 정도만 보관될 뿐 평생 '범죄경력조회'에도 남지 않는다.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을 저질렀음에도 이들은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대상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밀양 여중생 집단 윤간사건'이라는 이름만 남았을 뿐 많은 사람들은 이 충격적인 사건을 잊고 지내고 있다. 가해자들과 이들을 옹호했던 여학생은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며 지낸다.

■"피해 여학생과 합의했다는 사유만으로 집행유예 안돼"

서울고법 형사12부(민유숙 부장판사)는 17세 여고생을 집단강간하고, 자전거·오토바이 등을 훔쳐 달아난 혐의 등(성폭력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 상 특수강간 등)으로 기소된 이모군(18·당시 만16세)에게 징역3년에 집행유예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장기 1년6월~단기 1년3월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밀양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다룬 영화 < 한공주 > 포스터 사진

또 임모군(18·만16세)에게 징역 장기 4년~단기 3년6월 및 벌금 30만원을, 함께 범행을 저지른 또다른 이모군(19·당시 만17세)에게 징역 장기 2년6월~단기 2년을 선고했다. 또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했다.

이군(A)은 지난해 7월 평소 친구로 지내온 임군과 이군(B)을 만나 자신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는 가출 청소년인 ㄱ양(당시 17세)를 윤간할 것을 모의했다. ㄱ양에게 술을 마시게 한 뒤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면 이때 강간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임군 등은 ㄱ양과 함께 머물던 ㄴ양이 범행에 방해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ㄴ양을 유인해 머리를 잡아당기고, 주먹과 손바닥으로 얼굴을 10회 때리고, 배를 걷어차 넘어뜨린 뒤 목과 배, 다리 등을 걷어차거나 밟았다. 이윽고 ㄱ양에게 돌아온 이들은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뒤 반항하지 못하게 제압해 차례대로 돌아가며 성폭행을 저질렀다.

범행 당시 불과 만 16~17세에 불과했던 이들에 대해 1심 법원은 임군에게 징역 장기 4년~단기 3년6월에 벌금 30만원을, 이군(B)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또다른 이군(A)은 징역 장기 3년6월~단기 3년을 선고했다. 이미 1~2차례 소년부 송치를 받아 형을 마쳤거나, 보호관찰이 끝난 직후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고려할 때 또다시 소년부로 송치하는 것은 처벌이 될 수 없다 판단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집단강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군(B)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피해여학생과 유일하게 합의를 한 점이 주요 참작사유가 됐다. 그러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 "똑같이 범죄 저질렀는데 '유전무죄'가 통하면 안 되지 않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군(B)의 부모가 피해학생에게 합의금을 지급하고, 합의서를 받아왔더라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가해학생과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고, 실제 범행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돈으로 합의했다는 사정만으로 다른 가해학생보다 나은 처벌을 하는 것은 법정의에 맞지 않다고 본 것이다.

임군과 나머지 이군(A)은 합의를 해줄 부모님이 없거나, 가정형편상 합의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군(A)의 부모는 항소심에 와서야 주변의 도움으로 공탁금 200만원을 법원에 겨우 납부했다.

재판부는 "가해학생들이 범행 당시 어린 나이었지만 이미 소년보호처분을 여러차례 받았고, 보호관찰기관이 종료된 직후에 또다시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이상 만19세 미만의 청소년의 경우 소년부 송치라는 선택지가 있다고는 하지만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소년부송치를 통해 교화가 됐어야 할 아이들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 이상 더이상의 소년부 송치는 교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비록 1심이 이군(B)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지만 범행의 죄질 및 가담정도를 고려할 때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또 임군에 대해서도 "윤간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피해자를 간음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1회 간음하는 등 가담 정도가 중하고, 또다른 피해여학생에게 가장 먼저 폭행을 가한 점, 소년보호처분을 받아 보호관찰기간 중에 있었음에도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 점 등을 고려했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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