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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넌 국가를 배신했다..애들 때문에 눈물난다"

입력 2014. 05. 07. 20:33 수정 2014. 05. 0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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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잠수사 이광욱 씨 구조 자원 결심부터 사고 나기까지 진도에 동행한 오랜 동료 증언 "지친 잠수사들 대신 적극 나서"

희생 잠수사 이광욱 씨 구조 자원 결심부터 사고 나기까지

진도에 동행한 오랜 동료 증언 "지친 잠수사들 대신 적극 나서"

(남양주=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열악한 환경에서 이미 지쳐 있는 다른 잠수사들 대신 적극적으로 나서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세월호' 구조작업에서 희생된 민간 잠수사 이광욱(53) 씨는 세월호 속에 갇힌 아이들을 도저히 내버려둘 수 없었다. 진도까지 천리가 넘는 길을 달려갔다.

그는 구조작업 참여를 거절한 동료에게 "넌 국가를 배신했다"고 일갈하며 채근해 결국 동참시켰다. 이씨는 그러나 평생의 터전인 바다에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7일 경기 남양주장례식장에 마련된 이씨의 빈소에선 고인의 오랜 친구인 양영수(51) 씨가 영정을 한없이 바라보며 눈물지었다.

양 씨는 이씨와 진도에 동행해 구조 작업에 참여한 동료 잠수사다.

양 씨는 연합뉴스 기자에게 고인이 진도로 가기로 결심할 때부터 사고를 당하기까지 전 과정을 증언했다.

그는 "침몰 사고가 난 지 얼마 안 돼 내려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씨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양씨는 고인의 얘기에 "일이 바빠서 내려갈 수가 없다"고 거절했다가 거듭된 부탁에 진도행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당초 구조작업을 거절한 양씨에게 '너는 국가를 배신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전화 통화에서 "TV를 보면 아이들 때문에 눈물이 나서 못살겠다"고 채근했다.

고인이 평소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협심 강한 성격이었다고 양씨는 덧붙였다.

그렇게 뭉치게 된 두 사람은 4일 오전 11시께 남양주 덕소에서 승용차를 타고 진도로 출발했다.

출발 전 팽목항에 내려가 있는 동료 잠수사에게 신분증과 차량 번호를 보내 구조 참여 계획을 미리 알렸다.

그날은 황금연휴인 탓에 차량 정체가 심해 꼬박 10시간이 걸려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깜깜한 밤에 닿은 팽목항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둡고 적막했다.

세월호 민간 구난업체인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 측 관계자가 마중나와 "밤이 늦어서 들어갈 수 없다, 내일 아침 일찍 들어가자"고 얘기했다.

세월호에 갇혀 있을 아이들 생각에 마음은 한시가 급했지만 현장의 얘기를 듣기로 하고 민박집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인 5일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난 두 사람은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떼우고 언딘 바지선을 향해 출발했다.

언딘 쪽과는 어떠한 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양씨는 "돈을 벌려고 했다면 처음부터 출발도 안 했을 것"이라며 "우린 그런 것(돈)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언딘 바지선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께.

그러나 물살이 좋지 않았다. 다시 기다려야 했다.

물살이 잦아들길 기다렸다가 오후 3시가 넘어 양씨가 다른 잠수사와 팀을 이뤄 2인 1조로 먼저 들어갔다.

잠긴 선체 앞 뿌연 물살을 헤치고 주방 안까지 진입했다. 성과는 없었다.

세월호 선체 창문이나 통로가 워낙 좁아 공기통을 매고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수중 작업 시간은 최대 20분으로 제한됐다.

양씨가 나온 후 이씨가 들어가기로 돼 있었지만 물살이 세졌다는 판단에 따라 투입은 또 미뤄졌다.

이튿날인 6일 오전 0시 50분으로 다음 작업 시간이 잡혔는데 또 미뤄졌다. 다시 오전 6시에 들어가기로 됐다. 또 라면을 먹었다.

결국 이씨는 자는 둥 마는 둥 6일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투입을 준비했다.

그렇게 이틀을 기다려 오전 6시 7분께 물속에 들어간 이씨는 허무하게도 5분여가 지나 교신이 끊겼다.

양씨는 "숨소리는 들렸지만 대답하는 소리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바지선에 있는 통신수의 '상승하라'는 지시에 응답이 없었고 줄을 세번 잡아당기는 '줄신호'를 보냈지만 반응이 없었다.

위급하다고 판단한 현장 대기 소방구조대원들이 수면 아래서 이씨를 건져냈다.

양씨는 "'바다 아래서 발견 당시 (이씨가) 마스크와 중량벨트를 이미 벗은 채였으며 에어호스와 유도줄이 엉켜있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구조된 양씨는 헬기로 목포 한국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세월호 침몰 직후부터 안타까운 마음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했던 이씨는 그렇게 유명을 달리했다.

해군 UDT 출신인 부친 고 이진호 씨에게 잠수를 배워 20대 때부터 민간 잠수부로 활동해왔다.

양씨는 "둘째 아들이 단원고 애들과 같은 고2이라서인지 구조에 열성을 보였다"면서 "당시 다른 잠수사들이 너무 지친 상태여서 (이씨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며 안타까워했다.

남양주시는 이날 이씨의 의사자 지정을 요청하는 서류를 경기도에 냈다.

보건복지부는 경기도를 통해 이를 접수한 뒤 의사상자심의위원회를 열어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고인의 영결식은 오는 10일 오전 9시에 열린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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