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충돌? 손가락 골절 시신 발견?'세월호 6가지 루머'와 팩트 확인

2014. 5. 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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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형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여러 루머가 떠돌기 마련이다. 어떤 것은 여론의 '자정작용'을 통해 사라지지만, 또 어떤 것은 오히려 언론과 여론에 편승해 확대되기도 한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불신, 정부의 입만 바라보는 언론, 진영 논리에 갇힌 일방적 주장들이 뒤섞이면서 의혹은 '사실'로 굳어진다. 사실(팩트)이 아닌 것을 두고 벌어지는 소모적 논쟁이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까먹고 불신을 확대재생산한다. 세월호 사고를 둘러싼 대표적 루머들을 '팩트 체크' 해봤다.

① 사고당일 오전 7시20분에 KBS 자막에 '구조신호' ?담당PD "송출실 진짜 화면 받아놔…의혹제기 답답"

안행부·소방청 "오전 8시께 침몰"해수부 "8시30분" 진도군 "8시25분"애초 불명확한 정보로 혼란 키워

세월호 사고 발생 시각을 둘러싼 각종 '설'과 의혹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세월호와의 교신기록을 늑장 공개한 해경, 보고 기관마다 중구난방인 사고 발생 시각이 음모론을 키우는 자양분이 됐다.

세월호 침몰 다음날인 지난달 17일 오전 한 포털사이트에 사고 발생 시각을 의심하는 글이 올라왔다. '선장은 7시20분에 구조 요청했다. 8시58분이 아니다'라는 제목이었다. 사고 발생 시각을 무려 1시간40분이나 앞당긴 근거는 사고 당일 오전 7시20분께 방송된 <한국방송>(KBS) 프로그램 <굿모닝 대한민국>의 자막이라고 했다. 포털사이트에 의혹을 제기한 이는 "7시20분께 이 프로그램에서 뉴스속보로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배가 구조신호를 보냈다는 뉴스를 분명히 봤다"고 주장했다. 당시 방송 장면이라고 '주장'하는 화면 사진은 온라인을 타고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본 이들은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의궤, 8일간의 축제>라는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방송 화면 위아래가 불투명하게 '블러' 처리가 됐는데, 이를 두고 일부러 자막을 지운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굿모닝 대한민국> 제작진은 애초 '7시20분 사고' 자막 자체가 없었고, 따라서 자막을 일부러 지운 적도 없다고 했다. 박도환 피디는 "매일 2시간씩 방송을 하는데 자체 촬영분 말고 다른 업체에서 찍은 화면을 재가공하기도 한다. 우리는 화면을 16:9로 쓰지만, 어떤 곳은 4:3을 쓴다. 우리 화면에 맞게 다시 비율을 맞추고, 원본에 있던 불필요한 자막을 지운 것을 두고 이런 의혹이 일었다"고 했다. 박 피디는 "이걸 가지고 의혹을 제기하니 답답할 뿐이다. 송출실에서 당시 나간 진짜 화면도 받아놨다"고 했다.

한국방송이 운영하는 트위터 글을 갈무리한 사진도 '7시20분 사고설'을 부추겼다. 사고 당일인 16일 오후 4시19분 한국방송 트위터에는 "오전 7시20분부터 침몰한 세월호 수중탐색이 재개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16일 오후 4시19분'이라는 시간이 의혹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는 4월17일 오전 8시59분에 올라온 내용이었다. 트위터의 시간표시 방식이 '로그인'을 하기 전에는 트위터 본사가 있는 미국 시각이 표시되지만, 로그인을 하면 한국 시각이 표시되는 탓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이런 의혹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진 데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급속하게 번지는 온라인의 특성도 있지만 애초부터 불명확한 정보로 혼란을 키운 정부의 책임도 크다. 당일 사고 발생 시각을 기록한 정부기관 보고서는 제각각이었다.

정부는 첫 사고 접수 시각이 4월16일 오전 8시52분이라고 밝혔지만,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 공문에는 '오전 8시께 침몰중'이라고 나와 있다.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해양조사원은 사고 당일 '항해경보(제14-155)'를 발령하며 사고 발생 시각을 '오전 8시30분'으로 적었다. 진도군청 상황실이 작성한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보고서'는 '오전 8시25분'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기록했다. 이들 기관은 논란이 된 뒤에야 뒤늦게 착오라고 해명하고 수정하기에 바빴다.

해경 관계자는 "해경에서 작성한 상황보고서는 사고 접수 시각을 오전 8시58분으로 기재했다. 의혹을 깨끗하게 털기 위해서라도 기관마다 왜 다르게 보고가 됐는지, 정확한 사고 발생 시각은 언제였는지를 수사를 통해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②'에어포켓' 존재?차수벽 충분찮은 로로선 '에어포켓' 가능성 적어

뱃머리 떠있어 수색 우선순위사실은 평형수 안 채운 공간

세월호 사고 초기, 실종자 가족들과 온 국민을 애타게 만들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에어포켓'(선체 내 공기층)의 존재를 두고 벌어진 '희망 고문'이었다. 선박이 침몰하더라도 뒤집힌 선체 격실 등에 물이 들이차지 않은 빈 공간이 일부 생길 수 있다. 이곳에 선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은 공기가 남아 있을 수 있는데, 이게 에어포켓이다. 바다 밑으로 급속히 가라앉은 세월호 선체 안에도 이런 공간이 생겼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리고, 배 안에 갇힌 생존자들이 에어포켓에 모여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사고 초기 상황을 지배했다.

세월호 침몰 직후 언론과 전문가 등은 에어포켓의 존재 가능성을 매우 높게 봤다. 세월호 뱃머리 일부가 사고 발생 3일째인 18일 낮까지도 수면 위로 솟아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선체를 물 위로 띄우는 부력의 존재는 선체 내 공기층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게다가 지난해 선박 전복 사고로 대서양 바다 밑에 갇혔던 선원이 3일 만에 구조됐다는 외국 사례가 반복 보도되면서 에어포켓의 존재는 '기정사실'이 됐다. 일부 매체는 에어포켓 안에 33명이 생존해 있다는 식의 '확인할 수 없는 구체적 보도'까지 쏟아냈다.

에어포켓에 대한 믿음은 한시가 급한 수색·구조의 '우선순위'까지 바꿔놓았다. 공기가 차 있는 뱃머리 쪽에 생존자가 있을 수 있으니 이곳부터 수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일부 민간 전문가들은 사고 다음날인 17일부터 언론 인터뷰에서 "뱃머리 쪽에 배에 남아 있던 공기가 차 있다.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여기부터 수색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다 보니 초기 수색·구조 작업의 초점은 '에어포켓 보호'에 맞춰진 측면이 크다. 특히 사고 초기에 객실 유리창을 깨고 선체 내부로 서둘러 진입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견은 '에어포켓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의견과 섞이며 힘을 얻지 못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에어포켓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적의 공격을 가정하고 건조되는 군함이나 2만t 이상 초대형 크루즈 선박 등에는 바닷물 유입을 막는 '차수벽'이 충분히 설치돼 있다. 이는 사고 발생시 에어포켓 형성 가능성을 높인다. 반면 세월호 같은 연안여객선은 차수벽이 충분치 않다. 특히 배 뒤쪽 램프형 출입구를 통해 차량이 직접 진입하는 세월호 같은 로로선은 바닷물이 한번 들어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침몰 초기에 에어포켓이 일부 형성됐더라도 금세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에어포켓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부른 '세월호 뱃머리'는 원래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가 채워져야 할 공간이었다.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 결과, 세월호는 평형수를 권고 기준의 4분의 1 정도만 채운 것으로 드러났다. 평형수가 부족한 사실을 몰랐던 상황에서 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이유를 에어포켓에서 찾게 된 셈이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사고 8일째인 지난달 23일 "구조팀이 3·4층 다인실을 집중 수색했지만 에어포켓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색작업을 지휘한 해군 고위 간부는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면서 (에어포켓은) 우현 쪽으로 옮겨갔을 텐데 밀폐 공간에 온갖 부유물이 뒤엉켜 있어 공기가 분산되거나 사라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천안함 침몰 때도 에어포켓의 존재가 논란이 돼 실종자 가족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당시 천안함은 배가 반으로 쪼개지면서 가라앉은데다 희생자들의 사망 추정 시간이 모두 비슷해 에어포켓이 애초부터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됐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③ 잠수함 충돌? 어뢰 격침? 암초에 좌초?선박 증축·과적·고박 불량 등 원인

김일성 생일·한-미훈련 시기 겹쳐'외부 충격설' 그럴듯하게 퍼져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두고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던 사고 초기에는 '암초 충돌설'도 제기됐다. 평소에 다니지 않던 진도 맹골수도 항로에 들어선 세월호가 암초를 타고 넘다 침몰했다는 것이다. 생존자들 가운데 일부가 배가 기울기 전에 '쾅'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이런 주장을 받쳐주는 근거가 됐다. 일부 전문가들도 '암초설'에 힘을 실었다. 세월호 정도 크기의 배가 완전히 뒤집히면서 침몰하려면 선체에 큰 구멍이 뚫려야 하는데, 내부에서 구멍이 저절로 생기는 일은 거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수십년간 진도 근처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온 지역 주민들은 사고 해역은 암초가 없는 곳이라고 했다. 사고 당일 단원고 학생들을 직접 구조한 서거차도 허학무(60) 이장은 "이 지역에 암초는 없다. 1만t 이상의 큰 배가 다녀도 암초에 걸릴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암초설이 수그러들자 '외부 충격설'의 또다른 버전이 등장했다. 북한 어뢰에 피격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세월호 침몰 전날인 4월15일이 북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이라는 것이 '근거'로 제시됐다. 일부에서는 '국가정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덮기 위한 '의도적 침몰'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까지 나돌았다.

이 와중에 미군 잠수함과의 충돌설까지 제기됐다. 사고 당일인 4월16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이 비준되도록 하려던 '준비된 사건'이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이었다. 침몰 시기가 한-미 해군 연합훈련 기간이라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국방부는 잠수함 충돌설에 대해 "당시 해당 지역에서 작전이나 훈련은 없었다. 게다가 사고 해역은 수심이 얕아 잠수함이 활동할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실제로 사고 해역의 최대 수심은 47m에 불과하다.

경찰은 포털사이트에 '세월호 침몰이 한-미 해군훈련에 참가한 미군 잠수함과의 충돌 때문이다', '한-미 해군 합동군사훈련 때문에 세월호가 사고 난 항로를 이용했다'는 등의 글을 퍼뜨린 이들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하기 바라는 취지에서 글을 올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를 통해 현재까지 드러난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복합적이다. △선박 증축에 따른 복원성 부족 △최대 적재량의 2~3배에 이르는 화물 과적 △화물 고박(고정 결박) 불량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선박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덜 채우는 대신 그 무게만큼 화물을 더 싣고, 물살이 유난히 빠른 맹골수도에서 급격한 변침(항로 변경)까지 한 상황들이 겹치고 겹쳤다. 항해 중 맞닥뜨린 외부 요인이 아니라, 승객들의 안전보다 화물 과적으로 몇천만원의 화물 운송료 수입을 더 얻고자 한 탐욕이 사고를 부른 셈이다.

최우리 기자

④ 탈출하다 손가락 골절된 시신들 발견?대책본부 "손가락 골절 희생자 없다"

4월21일 저녁 8시, '손가락 골절 시신 등 선실서 다수 발견'이라는 <연합뉴스> 기사가 인터넷에 떴다. 내용은 없고 제목만 뜬 '수색 속보'였다. 이후 이 내용도 근거도 없는 보도는 빠르게 윤색·과장되기 시작했다. 여러 언론이 잇달아 '탈출 과정에서 기울어진 바닥을 붙잡고 버티려다 부러진 것으로 보인다', '좌초될 때 여기저기 부딪혀 부러졌을 수 있다', '필사의 탈출'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출처는 거의 예외없이 익명의 해경 관계자, 수색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 등이었다.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실제로 '손가락 골절' 주검이 있긴 있었다. 지난달 21일 아침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채 인양된 '64번 희생자'였다.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안내문에는 '왼손 중지 골절 치료(손가락 깁스)'라고 쓰여 있었다. 이 희생자는 세월호에 타기 전에 이미 손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주검들 가운데 손가락 골절이 있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해경과 잠수사들은 이런 가능성을 낮게 봤다. 고민관 서귀포해양경찰 경비구난과장은 "사고 이후 손가락이 골절된 희생자가 있는지를 곧바로 확인할 수는 없다. 골절 여부는 부검을 해야 알 수 있다. 현재 주검들은 거의 몸이 굳은 채로 인양되고 있어 잠수사들이 만져봐도 골절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했다. 희생자들이 숨진 지 오래됐고,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장시간 있었던 탓에 육안 검사에서는 물론 손으로 만져봐도 골절 여부는 확인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민간 잠수사들도 "캄캄한 바닷속에서 겨우 주검을 수습하는데 손가락 골절을 어떻게 아느냐.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의 보도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상당수 주검 손가락 골절'에서 '대다수 주검 손가락 골절'로 확대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24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공식적으로 "손가락이 골절된 채 발견되는 주검은 없었다"고 밝혔다. 대책본부는 "왼손 중지 손가락에 깁스한 희생자는 있었다. 그러나 손가락이 골절된 다른 희생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까지도 손가락이 골절된 채 발견된 주검은 '64번 희생자'가 유일하다. 7일 해경이 희생자들의 휴대전화 메모리카드를 가족에 앞서 확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또다시 음모론이 퍼지고 있다. 휴대전화를 움켜쥔 희생자들의 손을 해경이 억지로 펴는 과정에서 손가락 골절이 일어났다는 식이다. 아직도 온라인에는 '필사의 탈출, 손가락 골절' 따위 기사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⑤ 외부 불순세력 개입해 정치공세?'유가족인척 하면서 선동하는 여자' 거짓 드러나권은희 의원 SNS 글 내리고 사과정부 비판을 선동으로 몰아붙여

세월호 사고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총체적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외부세력의 선동'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불순세력의 정치공세'로 여기는 시각이다.

경기 안산의 합동분향소에서 올라온 희생자 가족들은 9일 새벽부터 오후까지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가족들이야 청와대에 가겠다고 왔지만, 그 기회를 이용해 가세하려는 외부세력의 움직임이 있고, 희생자 가족들이 이념적인 집회에 이용당할 우려가 있었다"고 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순수 유가족' 발언으로 '외부세력 개입설'을 키웠다. 민 대변인은 유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하던 시간에 "실종자 가족들은 진도에 있지 여기 있을 가능성이 적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같은 날 "사회불안·분열 야기 언행은 국민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며 누구를 향하는지 '방향이 애매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보수언론들도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이들이 여론에 편승해 '선동'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다. 지난달 20일 정부 대처에 불만을 품은 실종자 가족들이 한국방송을 거쳐 '청와대 행진'을 했을 때도 "외부세력이 선동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실종자 가족들은 진도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서 각각 논의를 거쳐 자발적으로 행진을 결정했다.

지난달 20일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도 "유가족인 척하면서 선동하는 여자의 동영상이 있다. 같은 여자가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에도 똑같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전문 시위꾼', '외부 선동꾼'이 실종자 가족들을 부추긴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동영상 속 여성은 실제 실종자 가족이었다. '선동꾼' 중 하나로 몰린 권아무개(41)씨도 "진도에 간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권 의원은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했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수진영은 세월호 사고가 정권책임론으로 발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결국 위기를 느낀 보수진영이 외부세력론을 꺼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이재욱 송호균 기자 uk@hani.co.kr

⑥ 정부가 일부러 다이빙벨 투입 막았다?조류 세고 수심 깊어 다이빙벨 효과 못얻어이종인 대표 "가족들에 죄송하다"

세월호 침몰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무능한 정부'를 대신하고 나선 '상징적 존재'가 바로 다이빙벨이었다.

종(벨) 모양의 철제 구조물인 다이빙벨의 원리는 간단하다. 다이빙벨에는 수면 위에서 공기를 공급하는 장치와 무거운 추가 달려 있다. 잠수사가 탑승한 상태로 수중에 투입하면 다이빙벨 안에 자연스럽게 '에어포켓'이 형성된다. 공기통을 멘 잠수사가 한번에 길어야 20~30분밖에 수중 수색을 못하는 반면, 다이빙벨을 이용하면 좀더 긴 시간 수색을 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세월호 사고에서 다이빙벨의 존재가 본격 부각된 것은 사고 발생 사흘째인 지난달 18일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제이티비시>(JTBC) 뉴스에 출연하면서다. 이 대표는 "다이빙벨은 유속에 상관없이 20시간 정도 연속 작업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사흘 뒤 이 대표는 다이빙벨을 싣고 현장까지 갔지만, 해경은 안전사고 우려 등을 이유로 투입을 거부했다.

그때부터 "정부가 다이빙벨 투입을 일부러 막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해경은 "전문가 등의 자문을 거친 결과, 한곳에서만 잠수를 시도해야 하는 다이빙벨보다는 여러 곳에서 동시에 잠수를 시도하는 수색이 적합하다. 일부가 오랫동안 잠수를 하는 것보다는 수시로 교대하며 작업하는 현재의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이빙벨은 분명히 장점이 있다. 수심이 비교적 얕고 조류가 약한 곳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해경도 인정했다. 하지만 사고 해역은 조류가 유달리 거센데다 수심도 다이빙벨 작업 조건과는 맞지 않았다. 게다가 선체 길이가 140m에 이르는 세월호 수색에 다이빙벨을 달랑 1대 투입해서는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해군 역시 "군에 민간 다이빙벨보다 성능이 우수한 장비가 있지만, 사고 해역의 조건에 맞지 않아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장점만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특히 지난달 24일 실종자 가족들이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더딘 수색·구조 작업에 항의하는 자리에서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정부가 20시간 연속 구조작업이 가능한 다이빙벨 투입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호응한 일부 실종자 가족들이 강하게 요청하자 이 장관은 "민간 다이빙벨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제이티비시 뉴스에 출연한 이종인 대표는 거침없이 "조류에 관계없이 20시간 연속 작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이빙벨은 정작 작업 과정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수중 수색에 들어간 다이빙벨은, 단 1구의 주검도 수습하지 못한 채 2시간여 만에 물 위로 건져올려졌다. 거센 조류에 떠밀려 흔들린데다 공기를 공급하는 선 등이 꼬였기 때문이다. 다이빙벨은 결국 빈손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이 대표는 "진심으로 가족들에게 죄송하다"면서도 "저한테는 이 기회가 사업하는 사람으로서도 그렇고, 뭘 입증하고 입증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라고 말했다.

다이빙벨 투입 논란이 지속된 여러 날 동안 수색에 모였어야 할 현장의 노력들이 엉뚱한 곳에 허비됐다.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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