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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만년 '부의 불평등' 이 화살에서 답을 보다

조현숙 입력 2014. 05. 23. 03:01 수정 2014. 06. 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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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 21세기 빈부격차 논쟁피케티 신드롬에 뛰어든 과학잡지 사이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115년에서 53년까지 살다 간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죽은 지 2000년도 더 된 그가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를 통해 되살아났다. 주인공 스파르타쿠스와 맞서는 악역 중 악역이다. 노예 반란군을 이끌고 어렵게 로마로 진군한 스파르타쿠스를 무자비하게 진압한다. 역사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저서 『로마인 이야기』에서 크라수스를 다른 시각에서 조명한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와 함께 '삼두(三頭)정치'의 한 축으로 로마 전성기를 여는 거물이다. 그의 힘은 돈에서 나왔다. 로마시대를 대표하는 갑부다. 삼두정치에 반발하는 원로원은 크라수스의 돈에 회유됐다. 카이사르 역시 크라수스가 지원하는 넉넉한 군자금을 믿고 해외 정벌에 나설 수 있었다.

 과학전문지 사이언스(Science)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부유한 1인이 모든 자산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로마시대 불평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분석을 곁들였다. "크라수스가 차지했던 부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에 비견할 수 있다. 하지만 크라수스가 해마다 벌어들인 돈은 지금 가치로 10억 달러(약 1조300억원) 정도로 게이츠의 연 자산 증가액 20억 달러에 못 미친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로마제국의 지니 계수(소득 불평등을 가늠하는 지수로 0은 완전 평등, 1은 완전 불평등)는 0.43이지만 2010년 미국 지니 계수는 그보다 높은 0.49다." 오늘날 미국이 로마제국보다 더 불평등한 사회라는 의미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의 책 『21세기 자본론』이 몰고 온 빈부격차 논쟁에 사이언스가 뛰어들었다. 22일자 최신호를 '피케티 자본론' 특집으로 꾸몄다. 피케티는 미국 버클리대 경제학 교수 이매뉴얼 사에즈와 함께 쓴 특별기고 논문에서 예의 주장을 펼쳤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경제성장 속도보다 빠르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사이언스는 과학전문지답게 연구의 장을 경제학 밖으로 넓혔다. 역사학, 고고인류학, 심리학, 교육학에 물리학까지 총동원해 피케티가 던진 화두를 파고들었다. 결과는 피케티의 주장만큼이나 암울하다.

 소득 불평등이 농경사회의 등장에서 비롯됐다는 기존 연구에 대해 사이언스는 "틀렸다"고 주장한다. 빈부격차의 기원은 농업사회가 뿌리내리기 전인 수렵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만2800~1만4500년 전 수렵시대에 이미 불평등의 싹이 텄다. 잉여식량의 등장과 함께다. 사냥과 낚시로 생계를 유지했던 캐나다 고대 원주민 집터가 이를 말해준다. 가장 큰 집에서 발견된 생선뼈는 75%가 4~5년산으로 크고 다양했다. 반면 가장 작은 집에서 발견된 물고기 뼈는 2~3년산 작은 연어가 100%였다. 지금으로부터 8200~1만500년 전 농경사회가 시작됐을 때 빈부격차는 이미 만연한 상태였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질까. 심리학에서 해답 중 하나를 찾았다. 가난한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조사했더니 과감한 투자 같은 위험부담을 지기 싫어하고, 미래의 더 나은 보상을 위해 지금 참기보다는 당장의 작은 보상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빈곤을 키우는 선택이다. 이 조사를 담당한 매사추세츠공대(MIT) 빈곤행동연구소 요하네스 하우스호퍼 연구원은 "가난한 사람의 본성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신용도가 낮아진 사람이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대안이 없어 사채를 쓰는 현실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현재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갖고 있는 결함이 부추긴 탓"이라고 했다. 교육 역시 빈부격차를 극복하는 사다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1% 부유한 사람과 나머지 99%의 차이를 벌리는 도구 중 하나였다. 학력 차이로 인한 소득격차는 1960~70년대보다 현재가 더하다.

 1%와 99%의 전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회는 로마제국처럼 공멸할 수밖에 없다. 사이언스는 그 해법을 탐구하러 불평등의 기원이 자리한 수렵사회를 다시 찾았다. 아프리카 주호안시·쿵족(族)은 척박한 칼라하리 사막에서도 수천 년간 종족을 보존했다. 비결은 결벽증에 가까운 평등 추구였다. 잡은 동물은 무조건 똑같이 나눈다. 사냥감을 잡는 데 누가 얼마만큼 기여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탐욕적인 1%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게 종족의 사냥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길이었다. 생존이냐, 멸족이냐를 걸고 수대에 걸쳐 쌓은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불평등 해결을 위해선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다만 사이언스는 희망 섞인 전망도 잊지 않았다. "지식기반 사회로 이동하면서 부동산이나 주식이 아닌 노하우, 사회성, 네트워킹같이 세습될 수 없는 요소가 부의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미래는 좀 더 평등한 사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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