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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말리는 작업이 치밀하고 반복적으로"..MBC는 지금

입력 2014. 05. 24. 15:50 수정 2014. 05. 2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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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MBC 기자가 '한겨레 21'에 보내온 글

지금까지 징계자 수만 160여명…하나둘씩 계속 쫓겨나'세월호 보도 참사' 비판하자 다시 불기 시작한 징계의 바람역설적으로 비관 속에서 희망을 준비하는 시기라 변명해본다 ▷한겨레21 바로가기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KBS 구성원들은 실패할 경우 KBS의 미래가 MBC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달랐다. 자유롭게 분출하는 비판과 상호 견제는 MBC 구성원들의 자부심이었다. 종합편성채널 탄생의 길을 열어준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법 개악에 맞서 2009년 언론인들이 벌인 총파업의 주력도 MBC 노동조합이었다. 그 MBC가 지금 앓고 있다. KBS를 포함한 언론사들이 뉴스를 통해 세월호 보도를 반성할 때도 MBC 보도본부 고위층에선 희생자 가족을 비난하는 발언이 흘러나왔다. 김재철 전 사장 이후 사내의 비판 목소리들이 징계와 보복 인사로 거세돼버린 MBC에서 한 기자가 답답함과 각오를 담은 글을 <한겨레21>에 보내왔다.

"제작 거부 안 해? KBS도 한다던데 당신들은 파업 안 해? 왜 가만있어?" ㄱ부장이 히죽히죽 웃는다. 그는 지금 MBC 수뇌부의 일원이다. 무시하고 돌아서는데 그가 재차 물었다. "이럴 거면서 2012년 170일 동안 파업은 왜 했어? 그때 당신들 구호대로라면 지금도 '다 물러나라'고 밖으로 뛰쳐나가야 하는 것 아니야? 왜 지금은 가만히 계시나?" 비아냥거림은 계속됐다. "공정방송 외치는 훌륭한 기자님들이 왜? 뭐가 두려우신가? 아하, 단체행동 하면 죄다 외곽으로 쫓아내고 경력사원 뽑아 채워넣을까봐? 그거 알면 쥐 죽은 듯 계셔야지."

끝없는 '씨를 말리는 작업' 

ㄱ부장의 말은 비아냥거림이라기보다 '협박'에 가까웠다. 파업 기간에 대체 인력으로 뽑은 '시용기자들'(김재철 사장이 파업 참가자들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며 '1년 근무 후 정규직 임용' 조건을 내걸고 채용)과 파업 직후 선발한 '경력기자' 대다수가, 'MBC의 현재 안보'를 지켜주는 큰 축이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취재하고 방송 잘하던 기자들은 하나둘 계속 쫓겨났다. 대신 상대적으로 입지가 불안하고 윗사람 말을 잘 듣는, 신규 채용 인력들이 청와대, 국회, 검찰 등 민감한 취재부서에 대거 배치됐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의혹과 청와대 뒷조사 논란'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국정원 댓글 수사' 등에 대한 MBC의 온갖 편파 보도가 이런 여건에서 탄생했다.

이것도 모자라 경영진은 최근 '헤드헌터'까지 별도 고용해서, 바로 데스크를 맡길 수 있는 '중견 경력기자' 10여 명의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면접 질문이 '당신 보수냐 진보냐' '고향이 어디냐' '누가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등이었다고 한다. 많은 선배들이 "기존 기자들의 씨를 말리고 자기들 입맛에 맞게 보도국 DNA를 완전히 바꾸려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해석한다.

'씨를 말리는 작업'은 치밀하고 반복적으로 진행돼왔다. 해고와 정직에, 대기 발령과 부당 전보까지. 지금까지 징계자 수만 160여 명이다. 특히 '주동자로 분류된' 사람들은 '맞은 놈만 골라 또 때린다'는 식으로 '추적 징계'를 당해야 했다. 파업 복귀 뒤 인사평가 점수를 최하 등급으로 부과하고, 그걸 명목으로 다시 정직 징계를 내리는 식이었다.

'감시와 적발'도 계속됐다. 지난 3월 수습기자 3명이 수습 해제와 함께 노동조합(제1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에 가입하자, 보도국의 간부가 당사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너희가 스스로 노조 가입을 결정했을 리 없다. 누가 시켰냐. 배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뉴스 보도에 대해 내부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보도국 편집회의에선 '정파성을 띤 일부 세력이 분열을 획책하고 선동하고 있다'는 식의 얘기가 등장했다. 사내 게시판에 간부 비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사실관계 확인이 안 돼 기사 작성을 거부했는데 '부장 지시에 항명했다'는 이유로, 인사를 안 한다는 이유로, 교과서 논란 기사를 마음대로 인터넷 뉴스에 올렸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이유로 기자들은 뉴스 취재·편집 부서가 아닌 외곽 부서로 쫓겨났다.

그 와중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MBC는 세월호 참사 직후 한 달간, 재난 대응 체계의 결함과 해경의 초동 대처 문제 등 정부 비판 보도를 대폭 축소했다. MBC 노동조합에 따르면, 4월16일부터 5월18일까지 지상파 3사의 보도를 분석한 결과, KBS와 SBS는 정부 비판 뉴스를 각각 68건과 66건 방송한 반면, MBC는 3분의 1 수준인 23건만 보도했다. 청와대 외압 논란에 휩싸인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이 "여러 루트로 해경 비판 기사를 자제해달라는 외압을 받았는데, 그런 KBS가 MBC보다 훨씬 더 비판 보도를 많이 했다"는 자평까지 했다.

'보도 참사' 비판에 중징계로 답하는 사 쪽 

MBC는 정부 비판 보도 축소만 한 게 아니었다. 지난 5월7일에는 보직 부장이 직접 나서서 "일부 실종자 가족들의 조급증이 잠수사의 죽음을 불렀고, 외국에 비해 미성숙한 대응을 하고 있다"며 유족들을 모욕하고 비난하는 보도를 했다. 이른바 '제도권 언론' 보도 중에 유일한 '유족 모욕·비난'이었고, 본질적으로는 '보도 참사'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여기 가담하지 않았어요'라고 얘기하기에는 너무 처참하고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차장급 이하 기자 121명이 대국민 사죄 성명을 냈고, 기자들이 사내 게시판에 실명 비판을 이어갔다. 노조위원장이 삭발을 했고, 노조 집행부와 함께 연일 피케팅에 나서며 사 쪽의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다들 징계를 각오했고, 실제 경영진은 징계 절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간부들은 일부 기자를 불러 성명서 작성 경위를 '추궁'했다. 그리고 성명과 사내 비판 글에 동참한 14~15년차 기자 2명이 '경인지사'라는 외곽 조직에 발령됐다. 문제의 '유족 모욕·비난 기사'를 입사 동기들과 카카오톡 채팅방에 공유한 기자는 "기사를 대외 유출했다"는 '죄목'으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사 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예능 PD가 MBC의 지금 상황을 설명하며 "MBC 구성원들이 정말 어렵게 버티고 있다"는 취지의 글을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자, 경영진은 "MBC 뉴스를 보지 말자는 불매운동을 벌였다"는 '혐의'를 씌워 그를 중징계할 방침을 세웠다.

회사 쪽은 구성원들을 점점 더 구석으로 몰고 있다. MBC는 다시 기로에 섰다. 하지만 파업에 돌입했던 3년 전과는 상황이 너무나 달라졌다. 단체행동에 들어가는 순간(우리는 회사도 이걸 원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경영진이 기다렸다는 듯 대체 인력을 대거 투입하고, 그만큼 기존 인력을 대거 쫓아내는 수순을 밟을 것임이 눈에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걸 아는 기자들은 망설일 수밖에 없다. 징계 때문이 아니다. 회사 쪽이 원하는 '물갈이'를 감수하며 다 일어서야 하느냐, 장기적인 싸움을 준비해야 하느냐, 떠나느냐 남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맞다. 이런 인식과 고민 자체가 변명이자 자위일 것이다. 그러나 당장 욕먹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예능 PD가 쓴 글에 나오는 얘기다. "MBC를 영원히 '엠병신'으로 망하게 놔두고 대안언론을 형성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대안언론을 찾는 사람들은 어차피 지상파 언론에 좌우되지 않는다. 반면 지상파 언론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숫자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사회의 주요한 공공재인 MBC를, 아직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단체행동, 섣불리 시작할 수 없지만…

이것만은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MBC 구성원들은 가만히 앉아 저절로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밖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개별 구성원들의 보이지 않는 백병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철저한 비관 속에서, 역설적으로 희망이 시작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희망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또 한 번 변명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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