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한겨레

세월호 유족 '부릅눈'..마침내 국회를 움직였다

입력 2014. 05. 30. 20:10 수정 2014. 05. 31. 18:20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한겨레] 여의도 2박3일 국조 의결 투쟁기

의원회관 찬바닥에서 쪽잠자며 버텨

여야는 김기춘 증인 싸고 공방만

본청 앞 몰려가 "언제까지?" 호소

56시간 지난 뒤 의결하는 데 15분

"당연지사 사흘 소요" 유족들 한숨

29일 밤 10시, 국회 본회의 방청석에 109여명의 세월호 유가족들이 앉아 있었다. 말 없이 본회의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창희 국회의장이 "이것으로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계획서 승인의 건은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라고 의사봉을 두드렸다. 유족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정조사 계획서가 본회의를 통과하는 장면을 보겠다고 국회를 찾아온 지 56시간 만의 일이었다. 유족들이 사흘을 뜬눈으로 기다렸던 국조계획서 의결에 걸린 시간은 15분이었다.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유족들 사이로 나지막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금방 되는 걸…."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사람 애간장을 녹일 땐 한참이고 처리할 땐 금방이니, 유족들이 많이 허탈해 했다"고 전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출석을 놓고 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하던 여야가 국정조사의 시작에 합의한 것은 결국 유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족들이 국회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애초 27일 통과시키기로 한 국정조사계획서는 언제 처리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 유족들의 핏발 선 눈 앞에 여야는 20년 만에 국회가 전반기 국회 의장 임기 안에 다음 하반기 국회의장단을 선출하는 장면도 만들었다. 여야는 국조계획서 합의에 따라 6월2일부터 세월호 국정조사에 들어가게 된다.

정치인들이 흔히 "정치란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고 말하지만, 국회는 막상 눈물을 닦아 달라고 찾아온 유족들을 외면했다. 27일 오후 2시30분 유가족들 130여명은 "성역없는 조사를 해달라"고 국회를 찾았지만, 여야는 자기 입장만 내세웠다. 새누리당은 김기춘 실장 등의 출석에 계속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오는 여야 협상대표에게 유족들은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냐"고 물었다. 그 와중에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7일 밤 9시부터 28일 새벽까지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의 전화를 받지 않는 등 '잠수'를 타 유족들의 속을 타들어가게 했다.

여야의 협상과정을 밤을 새며 지켜본 28일 오전 유족들은 국회 본청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과 야당 원내대표들은 세월호 선장이나 1등 항행사와 같은 행동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국조 계획서에 증인을 명시하는 것은 관행도 아니고 법에도 없다"는 여당의 설명에 맞서 "관행대로 했다가 우리 자식 다 죽었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28일 밤, 지루한 협상 끝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청와대 비서실 기관보고를 하는 형식으로 국정조사 특위에 출석하도록 한다는 쪽으로 여야 합의가 이뤄졌으나 다음날 새누리당이 무효를 선언했다. 새누리당 조원진 특위 간사가 다음날 아침에 새정치연합 김현미 특위 간사에게 "왜 합의도 되기 전에 언론에 내용을 공개했냐"며 무효를 선언한 것이었다. 그 순간에도 유족들은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속을 끓이고 있었다.

유족들의 울분 속에서, 여야는 29일 오후 4시15분 협상을 재개했다. 그리고 오후 6시, 조사대상에 김 비서실장을 포함시키는 국정조사계획서안에 합의를 했다. 전국에 흩어진 국회의원들을 불러 모아 밤 9시30분에 열린 본회의는 참석 의원 226명 중 찬성 225명, 기권 1명(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으로 국정조사 계획서를 통과시켰다.

본회의가 끝난 뒤 여야는 앞다퉈 반성한다고 했다. 이완구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9일 밤 열린 의원총회에서 "많은 진통 끝에 국조 계획서가 합의돼 다행이긴 하나 (사흘이 걸려) 그간 유가족께 대단히 송구하다"고 말했다. 도종환 새정치연합 선대위 대변인은 30일 논평에서 "세월호 가족 분들이 국회에서 주무시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눈물로 호소한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의 요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성역없는 조사'라는 당연한 일을 시작하는데 사흘이나 걸려야 하는 국회의 민낯을 본 탓이다. "첫걸음 나가는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갈길이 순탄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기대를 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진상규명을 향해 가는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2박3일 애를 썼다. 우리의 뜻을 충분히 전달했다. 제발 말로만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을 보여달라." 유족 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의 말이었다.

이승준 하어영 서보미 기자 gamja@hani.co.kr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