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향신문

[단독] "세월호 참사 말고 어느 정도 재난이 와야.." 피토하는 심정의 119 소방관 편지

김창영 기자 입력 2014. 06. 01. 02:19 수정 2014. 06. 03. 17:47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우리가 무슨 죄' 소방총수 강등에 현장 소방관 분노 폭발 "국민 여러분 119가 돼주세요"

< 경향신문 > 이 지난달 29일 [단독보도]한 현장 소방관의 다음 아고라 청원글이다. '국가직으로 전환하라'라는 청원은 SNS를 타고 급속하게 번지면서 1일 오전 2시 기준으로 네티즌 5만9000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소방해체를 막아 달라'라는 청원 목표 11만9000명의 49%를 달성했다.

청원 글을 올렸던 '불혼불작'이 < 경향신문 > 에 피를 토하는 심정을 담은 이메일 편지를 보내왔다.

"세월호 참사 말고 도대체 어느 정도의 재난이 와야 검토를 하시겠습니까?"라고 말문을 연 '불혼불작'은 "우리 소방관은 국민들을 위해서는 기꺼이 손, 발이 될 수는 있지만, 행정관료의 손, 발이 될 수는 없다"라는 말로 편지를 끝냈다.

그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만든 안전행정부 창조정부전략실장님께' 라는 제목의 첫 번째 편지에 앞으로 '실제 현장 동료들이 원하는 국가안전처', '현장에서의 폐해(119상황실과 재난상황실 문제, 시도 안전총괄과의 문제점'을 적은 두번의 편지를 더 보내겠다고 밝혔다.

< 다음은 첫번째 편지 전문 >

김성렬 안전행정부 창조정부전략실장님께.

안전하십니까? 저는 평범한 소방관입니다. 실장님의 언론사 기자 설명회에 있었던 내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해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지난 5월 28일 실장님께서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기자분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죠.

[기자님]지방의 소방조직이 시·도지사 관할이어서 지역 간 소방서비스 편차가 크다. 국가직으로 전환 계획은 없나?

[김성렬실장님]이번에는 검토하지 않았다. 외국도 소방은 지방사무다. 화재를 일차로 대응하는 곳이 지자체다. 국가안전처가 생겼다고 해서 소방직을 전체 국가직으로 하는 건 비효율이라고 본다.

검토하지 않으셨다. 세월호 참사 말고 도대체 어느 정도의 재난이 와야 검토를 하시겠습니까?

비록 제가 일개 소방관일 뿐이지만 꼭 설명을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실장님께서는 높은 자리에 계시면서도 어디서 들은(?)내용으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신 듯 합니다.

가장 선진화된 소방시스템을 자랑하는 미국과 일본의 소방을 말씀드리면, 미국은 주(州)사무죠. 그리고 그 주(州)는 한반도보다 큰 주도 있고, 대한민국보다 큰 주가 대부분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고 계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미 국토가 우리나라의 100배가 넘는 것은 알고 계신가요?) 주(州)를 국가개념으로 보셔야 합니다.

일본은 실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지자체에 해당하는 시·정·촌에 설치된 소방서가 지진·태풍·특수재해(가스, 항공기, 해난구조)등 재난재해에 대하여 모든 방재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와는 다르죠. 소방과 육상·해상을 포괄한 방재업무가 모두 소방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강력한 소방행정 체제입니다.

지난달 26일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부상을 입은 시민을 구조해 옮기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우리나라는 각 시도에 안전총괄과라는 행정관료들로 이루어진 조직에서 시·도 소방본부에 '자료 제출해라, 계획 수립해라'는 '페이퍼 워크(Paper work)'하는 것과 해양재난은 해경, 육상재난은 소방 이렇게 분리해 놓은 것과는 참 상반되죠.

그리고 방재를 소방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켰는데, 우리나라는 어떻게 된 것이 소방을 방재의 한 부분으로 취급하려는 비정상의 비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있죠. 이번 국가안전처가 만들어지면서 이 재난전문성과 현장 경험없는 안전총괄과를 안전총괄국으로 격상시켜 일반행정관료들의 자리를 더 만드시려고 하는 계획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실장님께서는 '화재를 일차로 대응하는 것이 지자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니 아직도 소방을 불만 끄는 1960년대 생각에 머물러 계신 것 같습니다. 2014년 119로 대변되는 현재 소방은 화재뿐만 아니라, 구조, 구급, 의료상담 외 모든 재난에 가장 먼저 대응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재난의 예방-대비-대응-복구에 모두 소방이 관여하는 것은 알고 계신지요?

국가안전처가 생겼다고 소방직을 국가직으로 하는 것은 비효율이라구요? 실장님께서 좋은 환경에서 사시고 안전하다고 재난을 경시하고 재난이 닥쳤을 때 이것이 단순히 지자체에서 해결해야한다고 하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가령 부산에서 원전사고나 지진이 나면, 수십, 수백명, 아니 수천명의 소방관들이 그 현장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런 국가적 재난에 대비할 조직 구상을 조금이라도 하셨습니까?

감히 말씀드립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은 서울에 살든, 경남에 살든 대한민국 어디에 살아도 위급한 순간에 119만 누르면 5분 안에 달려와 주는 국가를 원합니다.

서울에 살다가 전남에 여행을 갔는데 위급한 상황에 119를 불렀더니 5분만에 오는 소방관들이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얼마나 내가 내는 세금이 아깝겠습니까? 이건 실장님과 가족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와 4년마다 바뀌는 시·도지사의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소방안전서비스 체계를 국가에서 강력하게 국가직으로 단일화시켜주십시오. 세월호 참사로 지금 지방선거에 '안전'이 대두되고 있지만, 4년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죠.

실장님, 국민의 '안전'이라는 가치는 정치적으로 휘둘려서는 절대 안 되는 근본가치입니다. 그래서 국무회의 위원인 국가안전처 장관도 진정 안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소방지휘관이 와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죠.

우리 소방관은 국민들을 위해서는 기꺼이 손, 발이 될 수는 있지만, 행정관료의 손, 발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실장님, 우리 소방관들끼리 하는 "소방관들에게 잘해주는 사람치고 잘못되는 사람 못 봤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큰 결단 부탁드리고, 자자손손 복 받으십시오.

< 김창영 기자 bodang@kyunghyang.com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