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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에 묶인 한국 벤처, 게임에만 몰려 답답"

박수련 입력 2014. 06. 02. 00:19 수정 2014. 06. 02.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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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 NXC 대표가 말하는 '벤처의 위기'

전 세계 정보기술(IT) 시장이 지각변동 중이다. 애플·구글·아마존은 끊임없이 될성부른 떡잎(스타트업 기업)들을 찾아내 인수하고 있고, 세계 최대의 온라인 상거래 업체인 중국 알리바바는 미국 증시 데뷔를 앞두고 있다. 글로벌 주자들이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는 지금, 국내 IT 벤처 1세대인 김정주(46) NXC 대표를 만났다. 20년 전 게임회사 넥슨을 창업한 그는 몇 년 전부터 한국·미국·유럽을 오가며 글로벌 스타트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스스로 "나는 역마살이 있다"고 말하는 그는 1년의 3분의 1 이상을 해외에서 머문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넥슨 사옥에서 만난 김 대표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인터뷰 내내 "답답하다" "사회가 좀 더 유연해지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표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 김 대표가 투자하는 기업들이 화제가 된다.(※그는 지난해 레고 거래사이트 '브릭링크', 스웨덴의 유모차브랜드 '스토케'를 인수했다. 최근엔 이륜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릿모터스'에 투자해 주목을 받았다)

 "미국 동부에는 특이한 스타트업들이 있다. 성공 가능성보다도 남들이 안 하는 것, 다들 망할 거라고 하지만 재미있어 보이는 회사에 투자한다. 투자금의 10배를 회수하겠단 기대로 투자하는 게 아니다. 미국 서부(실리콘밸리)에는 주로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많은데, (남다른 발상과 창의적인 사업이 많은) 동부 스타트업들은 내게 학교 같은 존재다. 최근에 투자를 결정한 '엑소'는 귀뚜라미를 갈아 초콜릿을 만드는 회사다. 이게 또 '김정주가 대체식량에 투자한다더라'는 식으로 비춰지지 않으면 좋겠다(웃음)."

 - 국내에도 스타트업이 많다.

 "너무 비슷비슷하다. 게임이 너무 많다.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우리는 아직…. 좀 더 건강해지면 좋겠다. (정부가)창조경제를 얘기하는데, 손발이 묶여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돈으로 창업자들 지원해주는 것도 좋다. 그런데 더 크게 도와줘야 한다. 쉽게 말해 정부가 일본과 관계 잘 풀어주면 일본에 물건 잘 팔린다."

 - 창업 1세대인데, 20년 전보다 창업 환경이 나빠진 건가.

 "저희보다 더 잘하는 친구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중간에 길을 한번 잘못 들면 우리나라에선 돌아갈 데가 없다. 되게 답답한 상황이다. 요즘은 저희 창업할 때보다 압박감이 더 심해진 것 같다. 서울 대치동 학원 들어가려고 해도 시험 봐야 하고, 중간에 여기에 들어가려면 분위기 깨진다고 안 끼워준다는 게 현실이다."

 - 우리 스타트업 경쟁력이 떨어지나.

 "미국에는 어마어마한 스타트업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글로벌 숙박시설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는 11조원, 고급 콜택시 우버(Uber)는 기업가치가 14조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계속 카카오와 네이버 밴드가 게임개발사들에 수수료 얼마 받는지 같은 얘기만 오간다. 저쪽에선 막 달려가고 있는데…. 우리는 소카(소셜카셰어링) 얘기 나오면 '이게 영업용 택시냐, 개인 차량이냐, 렌터카냐'를 따진다. 사회가 좀 더 유연하게 (새로운 것을)받아주면 좋겠다."

 - 청년 창업이 힘들다는 얘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해야 한다. 한곳에 붙어서 밥 먹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하고, 세상은 훨씬 험하게 변하고 있다. 창업해서 돈을 번다기보다 자기 생각을 세상에 펼쳐보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

 - 청년들이 안정적인 길을 선호한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우리 사회에는 사업하는 사람들, 기업이 돈 버는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아직 남아 있다고 느낀다. 이게 젊은이들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네이버처럼 자국의 검색시장을 이렇게 지키고 있는 기업이 없다. 또 하인즈케첩도 오뚜기케첩에 밀려서 실패한 나라다. 이런 기업들 덕분에 우리가 밥 먹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한다고 한다.

 " 사람들이 시스코·제너럴모터스·코카콜라가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관심 많은데, 건강한 시장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비상장 회사들끼리도 서로 M&A를 많이 한다. 다음·카카오 합병은 네이버가 카카오를 사는 것보다 훨씬 좋은 모델이다. 서로 부족한 게 좀 있지만 함께 더 큰 것을 해보겠다는 게 멋지다."

-PC시대에 창업했다. 지금은 모바일 시대다. 이 다음에는 뭐가 올까.

 "늘 고민하는데, 정말 어렵다. 컴퓨터가 처음 생겼을 때 우리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닐 거라고 아무도 몰랐다. 3년 뒤에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이 바뀔 것이다. 구글이 인수한 가정용 온도조절기업체 네스트가 답이 될 것 같다. 네스트가 미국 텍사스의 발전소와 계약을 맺고 각 가정의 온도를 낮추면 발전소를 더 안 지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 걸 볼 때 참 답답하다. 온도계는 우리도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 기업들도 태양광 시설 열심히 만들고, 정부에서 정책적으로도 지원해주는데 네스트 하나가 여러 문제를 해결해 버린다. 기업들이 참 다양하게 손을 잡는다. 경계가 없다. M&A 로 주인이 바뀌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손 잡는 거다. 위협적이라고 해야 하나, 무섭다. 저런 식으로 세상을 먹겠다고 달려가는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보유 주식가치가 2조원을 넘나들어서 항상 주목받는데.

 "한국 밖에 나가서 크게 돌아가는 판에 가면 이 돈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사업을 하려는 입장에서 보면 정말 그렇다. 제가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참 어렵다. 이런 말이 또 곡해될까 걱정된다."

 -이해진(네이버)·김범수(카카오)·이재웅(다음)이 모두 대학 동기들이다.

 "너무 잘나가거나 너무 못나갈 때는 연락이 잘 안 된다(웃음). 요즘은 해진이가 제일 잘 나가는 분위기죠? 사람들이 바이오 리듬에 변화가 있을 때, 사업에 굴곡이 있을 때 연락이 잘 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님은 연락드리면 만나는 사이다. 요즘 알리바바 상장 준비하느라 바쁘신 것 같더라."

박수련 기자

김정주의 말말말

● 한국 스타트업은 너무 비슷비슷하다. 게임에 편중돼 있다. 남다른 생각을 하는 미국 동부 스타트업들은 내게 학교 같은 존재다.

● '창조경제'를 얘기하는데, 손발 묶여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내가 창업할 때보다 사회가 더 답답해졌다. 그래도 창업을 해야 한다. 어느 한곳에 붙어 있으면서 밥 먹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 구글이 인수한 온도계 제조 업체가 발전소를 줄이는 시대다. 글로벌 시장에선 저렇게 세상을 먹겠다고 달려드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김정주와 넥슨

● 서울 광성고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86학번)를 졸업. KAIST 전산학과 박사 과정에 다니던 1994년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고 넥슨을 창업했다.

● 카트라이더·메이플스토리 등 다양한 온라인 게임을 개발.

● 2006년부터 지주회사인 NXC(옛 넥슨홀딩스) 대표를 맡아 그룹을 지휘하며 2011년 일본 증시에 넥슨을 상장시켰다. 넥슨의 최대주주(48.5%)인 김 대표는 보유주식 가치가 2조원을 넘나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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