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째 제자리 "이젠 기다림마저 죄 짓는 기분"

진도 입력 2014. 6. 2. 06:01 수정 2014. 6. 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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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선체절단 시작 고조됐던 기대감..잠수사 사망소식에 망연자실

[머니투데이 진도(전남)=박소연기자][[세월호 참사]선체절단 시작 고조됐던 기대감…잠수사 사망소식에 망연자실]

세월호 침몰 사고 37일째를 맞은 22일 오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을 찾은 한 실종자 가족이 난간을 부여잡으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뉴스1

세월호 참사 45일째인 지난달 30일 오후 3시50분. 진도 실내체육관이 일순간 얼어붙었다. '선체 절단작업 중 잠수사 사망.' 믿고 싶지 않은 TV속보는 냉정하게 흘러나왔다. 가족들은 고개를 숙였다. 밖으로 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또 다시 본의 아니게 '죄인'이 됐다.

◇잠수사의 사망…"하늘도 무심하시지"

지난달 21일 이후 실종자 수는 '16'에 멈춰있는 상태. 88바지는 일말의 '희망'이었다. 선체 절개를 통한 장애물 제거로 수색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듯했다. 수개월이 걸리는 줄 알았던 절단작업은 2~3일내에 순조롭게 끝낼 것으로 예상됐다. 좋은 소식이 이어질 거란 기대감이 팽배했다. 그러다 절단작업 이틀 만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한 어머니는 "지칠 대로 지쳤지만 88바지가 새로 들어오니 혹시나 하는 기대감,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며 "일이 풀릴 만하면 이러니 하늘도 무심하다"고 한탄했다.

잠수사의 건강과 안전을 누구보다 걱정해온 실종자 가족들은 망연자실했다. 매일 과일과 떡, 산낙지, 고기 등 건강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바지선에 올라 잠수사들을 응원해왔던 가족들이다. 바지선의 식사와 보급품, 의료진 투입 등 잠수사들 복지에 대한 모든 사안에 가족들이 일일이 개입해 개선해왔다.

한 아버지는 "시신 하나 때문에 산 목숨 죽일 수 없지 않나. 늘 조심스럽고 미안한 마음"이라며 "가족들은 바지선에 많이 가봐서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녹초가 돼있는 잠수사들에게 뭐라고 못 한다. 재촉 못 했다"고 말했다.

전남 진도 앞바다 세월호 사고해역으로 수색작업에 나선 바지선 벽면에 잠수 작업에 대한 감사와 바람을 적은 희생자 가족의 글이 붙어 있다. /사진=뉴스1

잠수사의 사망으로 수색구조는 다시 기약이 없어졌다. 내주 초엔 풍랑주의보가 예보돼 모든 바지선이 피항할 예정이다. '다음주도 공쳤다'며 한숨이 가득하다. 하지만 가족들에겐 '기다림'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우릴 위해 가장 힘써주는 사람이 잠수사지. 여기 사람들도 그런 얘기 하는 거예요. 입장 바꿔서 우리가 잠수사 가족이라고 생각하자. 내 가족, 내 동료가 이렇게 죽으면 어떻게 즐겁게 일할 수 있겠냐. 나 같아도 일하기 싫고 들어간다면 들어가지 말라고 말리고 싶고… 여긴 다시 조용해요. 또 힘들어지겠구나. 한참 기다려야겠구나."

◇등돌리는 여론에 커지는 아픔…"숨죽여 기다립니다"

사고 48일째, 진도의 '숨죽인' 기다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루에 두 번씩 성과 없는 브리핑을 듣고 사고해역 바지선에 간다. 10일 넘게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기다림의 목적마저 의심해야 하는 답답한 상황. 여기에 사고가 잇따르면서 여론이 등을 돌리는 건 아닐지 가족들은 '이중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한 어머니는 "월드컵 열리고 선거하고 아시안게임 있고, 그러면 분위기가 거기로 다 가지…"라며 "우리한테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지만 나 같아도 당사자가 아닌 이상 월드컵 하면 치킨 먹어야 되고 응원하고 박수쳐야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한숨지었다.

세월호 참사 39일째를 맞은 24일 오전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 아버지는 "여론이 불리한 쪽으로 가는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데 자꾸 잊혀지는 것 같다"라며 "여기서 누가 가족을 찾아가면 남은 가족들은 더 적어지는데, 힘은 더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입 밖에 내진 못하지만 내가 끝까지 남진 않을지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조류 등 악조건 탓에 실종자 수습이 유례없이 길어지면서 '전원 구조' 대원칙마저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욕심 그만 부리라', '인양하라'고 실종자 가족들을 비판한다. 하지만 선체 인양에만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현실. 가족들은 부실 구조의 피해자이면서 '미안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안게 됐다. 50일 가까이 기다림이 일상이 된 가족들과 국민 정서의 간극은 점점 커지고 있다.

"처음 기다리는 거하고 또 한 주, 그 다음 한 주 기다리는 거랑 달라. 한 2~3주 전에는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지. 지금은 알아볼 수도 없는데. 40일 넘게 기다렸는데 뼈라도 갖고 가야 되는 거 아니야? 영혼이라도 좋은 곳에 보내줘야지. 바람처럼 휙 사라진 것 같아. 지금 정신 나간 상태에서 기다리는 거지 무슨 생각으로 기다리는 게 아니야."

◇"내 딸은 찬 바다에 있는데 육지에 편히 있을 수 있을까?"

애타는 기다림에 가족들은 밥을 먹어도 살이 계속 빠지는 등 건강이 성치 못하다. 한 아버지는 "죽고 싶어도 못 죽어. 데리고 가야지 왜 죽냐"며 "기다린 시간이 너무 길어가지고 안 된다"고 애써 웃어보였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유가족들, 의료지원단을 태운 해양경찰 경비정이 사고해역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기다림에 대처하는 방식은 갖가지다. 바지선에서 밤을 지새는 아버지부터 성당에서 기도하는 아버지, 체육관에 누워 시간을 견디는 어머니와 브리핑에 쫓아다니며 대책을 촉구하는 어머니까지, 마음만은 같다.

"내 딸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마음, 내 딸은 찬 바다에 있는데 육지에 편히 있을 수 없는 마음이지. 바지 가서 누워서 'OO야 아빠 여기 있는데 왜 안 오니' 한마디 더 해보는 거지. 저기 산에 애들 있다 그래 봐요, 다들 이러고 안 있지. 가서 손으로 다 흙 파고 있지. 근데 바다라 아무 것도 못 하는 거야. 기다리는 것밖에 해줄 수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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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진도(전남)=박소연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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