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박근혜, 국민들은 왜 구해줬나

2014. 6. 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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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종필 기자]

정권구조론과 정권심판론이 격돌한 6·4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결국 정권구조론의 손을 들어줬다.

집권 새누리당은 경기·인천 등 전체 17곳 광역단체장 중 8곳에서 당선자를 내며 선전했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참사 속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막판 도와달라는 새누리당의 호소에 유권자들이 어느 정도 화답한 모양새가 됐다. 한 마디로 말해, 세월호 참사와 함께 침몰 위기에 있던 박근혜 정권을 가까스로 구해 준 셈이다.

지방선거의 일차적인 지표라 할 수 있는 수도권 광역단체장은 서울-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연합)과 인천·경기-새누리당으로 표심이 갈렸다. 새누리당이 두 곳을 가져갔으나 상징성이 큰 수도 서울에서 비교적 큰 표차로 박원순 후보가 이긴 데다 인천과 경기에서도 초박빙의 접전 끝에 새누리당이 승리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승리 혹은 패배를 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격랑 속에서 수도권 전멸까지 점쳐졌던 선거 전 상황을 감안하면 새누리당의 대단한 선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기초단체장의 경우 서울 25개 구청장 중 새누리당이 5개, 경기지역 31개 단체장 중 15곳을 확보함으로써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때와 비교해 현상을 유지(서울)하거나 오히려 승리 지역을 더 늘렸다(2010년 당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경기지역 기초단체장 선거 10곳에서 승리했다). 게다가 비례대표 정당지지율에서 새누리당은 서울에서는 45.0%(새정치연합 45.6%), 경기도에서는 47.6%(새정치연합 43.6%)라는, 예상보다 높은 정당 지지율을 얻었다.

충청권 얻은 새정치연합... '새누리 선방' 뒤집진 못해

전국적인 판세를 보면 우선 지난 대선 때 박근혜를 지지했던 충청권이 새정치연합으로 넘어간 것이 눈에 띈다. 하지만 충청권은 2010년에도 참패한 지역인 데다 충북지사 선거의 경우 막판까지 초접전 혼전을 벌이는 등 나름 선전한 면이 있다. 반면 대구에서는 새정치연합 간판의 김부겸 후보가 40%가 넘는 득표를 했고 부산의 무소속 오거돈 후보는 막판까지 초접전 경합을 벌이며 새누리당의 아성을 위협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새누리당의 선방'이라는 결과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5일 오전 8시 현재 전체 226개의 기초단체장 중에서 새누리당은 124곳을, 새정치연합은 72곳을 이겼다. 이는 2010년 한나라당 82곳, 민주당 92곳의 결과에 견주어 새누리당의 당선자가 오히려 크게 늘어난 것이다.

지난 1일 오후 부산역광장에서 새누리당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눈물' 사진이 담긴 피켓을 100개 가까이 들고 나왔다.

ⓒ 정민규

새누리당이 선전한 가장 큰 이유는 선거 막판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전면에 내세우고 '도와 달라'고 읍소한, 이른바 '박근혜 마케팅'이 일정 정도 먹혔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04년 노무현 탄핵 정국 뒤 총선 시기에 한국 유권자들은 묘한 균형감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탄핵 역풍의 위기 속에서 참패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무려 121석이나 얻으며 선방했다. 그런 균형감각이 이번 선거에서도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은 세월호 참사 등에 대한 책임은 묻되, 그것이 정권의 붕괴나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은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상대적으로 야당의 후보 경쟁력이나 선거 전략이 저열했기 때문이다. 경기도지사 선거의 경우 JTBC 보도에 따르면 새정치연합 김진표 후보에 대한 연관 단어를 분석한 결과, '새누리당'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새누리당이 밉기 때문에 찍어준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남경필 후보에 대한 상대적인 후보 경쟁력이 없었다는 얘기다.

인천시장 선거는 새정치연합 송영길 현직 시장의 프리미엄과, 안전행정부 장관 출신이라는 상대 유정복 후보의 약점을 새정치연합이 최대한 살리지 못한 결과, 송영길 현 시장이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선거 때까지 야당으로서의 새정치연합의 존재감은 거의 없었다. 유의미한 선거 이슈를 만들어 내지도 못했고 세월호 사건의 진상도 속 시원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정부를 강력하게 압박한 것도 아니었다. 부동층이 늘고 초박빙 접전이 계속될 때 중앙당의 존재감과 정국 주도력이 결국에는 승패를 가른다고 봐야 한다.

새누리당, 맘 놓고 웃을 때는 아니다

▲ 환호에 화답하는 박원순 당선자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가 5일 새벽 서울 종로5가 선거캠프에서 지지자들에게 배낭과 신발을 선물받고 부인 강난희씨와 함께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그러나 새누리당이 선전했다고는 하지만, 정권에 대한 유권자의 경고 메시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체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하나일 뿐이더라도 수도 서울의 민심은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정몽준 후보가 얻은 41%의 득표율은 최근 각종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서울에서 얻은 득표율 중 최저값이다. 특히 박원순 후보가 전통적인 새누리 강세 지역인 서초구 등에서도 46.2%로 선전하는 등 이른바 강남 3구의 민심도 정권에 곱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또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후보가 13명이나 당선(보수 성향은 4명)된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결과다. 2010년 진보 성향 6명, 보수 성향 10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거의 '상전벽해'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여기에는 보수 후보들의 단일화 실패에 따른 난립이 크게 작용한 면이 있다). 특히 경남과 부산에서도 진보 성향 교육감이 탄생한 사실은 눈여겨볼 만하다. 경남 지역은 이미 김두관 도지사를 배출한 적이 있고 부산은 오거돈 후보가 거의 승리에 근접하는 선전을 펼쳤다. 이런 결과를 놓고 봤을 때 향후 이른바 PK 지역과 TK 지역의 정치적 분리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칠 수 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상황이 이러하다면 부산 출신의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영남보다 광주에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인 것이 야권 전체로서는 전략적인 손해였다고 볼 수 있다.

국가가 수백 명에 달하는 국민의 생명을 버린 상황에서, 오히려 국민들은 그 정권을 침몰의 위기 속에서 구원해 줄 손길을 뻗어 주었다. 박근혜 정권이 국민들에게 정말로 큰 빚을 진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이 결과를 얼마나 무겁게 진심으로 받아들일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에는 유권자들이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언젠가는 평가와 심판을 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도 찾지 못한 세월호 실종자를 하루빨리 모두 찾아내야 하며, 지금 진행 중인 세월호 국정조사를 충실하게 진행해서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가리고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 또한 국가재난 주관방송사로서의 자기역할을 하지 못한 KBS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며, 방송통제로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청와대는 즉시 이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공석인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등 요직 인선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최소한의 조치들이 충실하게 취해지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이 진심으로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아마도 정권을 위기에서 구해준 오늘의 그 손길을 미련 없이 거두어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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