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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머리' 유병언을 검찰은 왜 못 잡을까요?

입력 2014. 06. 06. 20:10 수정 2014. 06. 0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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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오랜만에 친절한 기자에서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유병언(73) 세모그룹 전 회장 때문에 적잖이 체면을 구기고 있는 검찰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대재앙에 직면한 검찰은 거침없는 광폭 행보를 보였습니다. 구조자 숫자 집계도 틀려가며 허둥지둥하던 여타 정부 부처와 달리, 검찰의 움직임은 신속했습니다. 검찰은 광주지검 목포지청을 중심으로 검경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사고 원인과 구조 실패를 조사했습니다. 부산지검도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관피아' 수사의 원형인 민관 유착 구조에 대한 수사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인천지검은 유병언 전 회장 일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언론이 검찰 수사를 뒤쫓기 시작하면서, "역시 해결사는 검찰"이라는 상찬이 나돌았습니다. '유병언'. 세월호 참사 뒤 가장 많이 들은 이름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유병언 전 회장과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에 대한 수사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단어가 있습니다. '돼지머리 수사'입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세월호 사고 직후 간부회의에서 "이런 사건에서는 돼지머리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고사상에 '돼지머리' 올리는 심정으로 유병언 전 회장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건 평소 품격과 절제를 수사의 가장 큰 미덕으로 꼽아왔던 김 총장의 평소 소신과는 좀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돼지머리 수사'라는 조어만 놓고 검찰을 탓할 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4월16일 이후 대한민국은 분노와 침잠을 교차로 겪는 집단우울증 상태였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생생하게 목격한 우리는, 어쩌면 모두 범죄 피해자와 비슷한 심리상태를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형벌의 원초적인 목적은 '응보'입니다. 구조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있는 해경과 민관 유착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진행돼야 형평성 시비에서 벗어나겠습니다만, 어쨌건 청해진해운의 부실화를 초래한 유병언 전 회장 일가를 수사하는 것을 무작정 '별건수사'라고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그 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민들을 위한 고사상에 '돼지머리'를 올리려면 제때 제대로 올려야죠. 검찰은 유병언 전 회장 검거 작전에서 번번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유병언 전 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지난달 16일부터 3주가 넘었습니다. 그나마 지난달 25일 전남 순천시에 위치한 '숲속의 추억' 별장을 급습해 유 전 회장한테 근접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 말고는, 유병언 전 회장의 꼬리를 잡았다는 신호도 없습니다. 급기야 지난 5일 진행된 인천지검 언론 브리핑에서는 "유병언 옷자락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라는 모욕적인 질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많이 다급해 보입니다. 유병언 전 회장이 망명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 대표적입니다. 검찰이 '망명 타진'을 밝힌 목적은 두가지로 해석됩니다. 첫째, 유병언 전 회장이 여전히 국내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과, 둘째, 검찰이 외교적 루트를 통한 탈출 경로까지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겁니다. "언제건 잡을 수 있으니 걱정 마시라"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교적 관례입니다. 망명 허용 및 신청 여부는 파견국 주권에 관계된 고유하고도 민감한 영역입니다. 수사상 목적 때문에 망명 신청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상대국에는 실례가 될 수 있죠. 그래서 검찰은 유병언 전 회장이 망명을 타진한 나라가 어디인지는 끝내 밝히지 못했습니다. 외교부 쪽에서도 "망명을 타진한 나라를 밝히는 관례는 없다"며 모르쇠로 나섰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무리수'를 던지다 보니 모양새가 영 좋지 않았던 꼴입니다.

아무튼 검찰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세월호 참사 연합기도회'에서 "유병언 일가가 법망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말한 지도 일주일이 다 됐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오래된 노래 한 소절이 떠오릅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검찰의 다급함이 어느 정도일지 능히 짐작되지 않나요?

노현웅 사회부 법조팀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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