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삼킨 대학과 기자 색출작전

2014. 6. 1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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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특집] < 한겨레21 > 과 대학 독립매체가 시작하는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

재단과 학교에 비판적 내용은 못 싣는 상황에서 탄생한 성균관대 독립언론 < 고급찌라시 > 이야기

< 한겨레21 > 이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를 시작합니다.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는 권력과 자본에 맞서 분투하는 대학 독립매체들이 < 한겨레21 > 을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아 탄생시킨 '독립언론 공동기획 프로젝트'입니다.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는 세 개의 열쇳말을 갖습니다.

하나, '대학'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기성 언론은 '기레기'로 낙인찍혔습니다. 권력과 자본에 굴종해 정보 왜곡을 일삼는다는 비판이었습니다. 진실 보도로 공론장을 형성하는 대신 거짓 보도로 공론장을 파괴했다는 평가였습니다. 상처를 치유하기보다 취재 경쟁에 몰입해 사람을 할퀴는 흉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대학은 정글로 나가기 앞서 진실을 지탱할 근육을 키우는 땅이어야 합니다. 대학에서 벼린 결기와 비판의식 없이는 정글을 헤쳐나가기보다 기레기로 날아 우회하라는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역설입니다. 오늘의 대학은 기레기를 조기교육하는 곳으로 둔갑하고 있습니다. 검열로 위협하고 돈으로 길들이는 정글의 세계관이 대학 안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기레기는 대학에서부터 생산·출시되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둘, '독립언론'입니다. 녹슨 공론장을 닦으려다 내몰린 대학 언론인들이 있습니다. '해직'과 '권고사직'은 정글의 활자만은 아닙니다. 말이 자유롭게 흘러야 할 대학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메시지에 맞서 '말의 감옥'을 깨려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학교 당국에 인정받는 언론'이길 거부하며 대학 독립언론은 '자비 제작의 고행길'에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셋, '네트워크'입니다. < 한겨레21 > 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좇으며 언어를 생산해왔습니다. 스무 살 < 한겨레21 > 이 대학 독립언론의 젊은 시각과 전위적 문제의식에 빚지려 합니다. 독립언론은 < 한겨레21 > 을 벗 삼아 사막 같은 정글을 건널 물기를 얻었으면 합니다. 모두 6개의 대학 독립매체와 1개의 협동조합이 시작(46~47쪽 기사 참조)을 엽니다. 네트워크의 새 마디가 되기 원하는 독립언론의 추가 참여도 기다립니다.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는 격주로 독자를 찾습니다. 첫 회는 재벌이 장악한 '기업대학'에서 벌어지는 '말의 감금'을 살폈습니다. '배움'의 전당에서 펼쳐지는 '훈육'의 살풍경이 놀랍습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저랑 같이 학생지원팀 한 번만 같이 가주면 안 될까요? 무사히 졸업하고 싶어요ㅠㅠ."

지난 4월 말 < 고급찌라시 > (이하 < 고찌 > ) 페이스북으로 날아온 메시지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 고찌 > 의 독자 K 학우. 그는 어쩌다 이같은 메시지를 보내게 됐을까?

< 고찌 > 를 버리는 교직원을 찍은 K 학우

< 고찌 > 는 '배부자보'를 통해 배부된다. 배부자보는 자보를 쓰는 전지에 봉투를 붙이는 방식으로 배포된다. 봉투 속에 < 고찌 > 를 넣어두면 오가는 학우들이 원하는 만큼 가져갈 수 있다. < 고찌 > 기자들은 정기적으로 배부자보의 현황을 확인하며 봉투가 비어 있을 때마다 < 고찌 > 를 채워넣는다. < 고찌 > 를 향한 학우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학기는 배부자보의 회전율이 이상하리만치 높았다. 배부자보가 매번 비어 있어 < 고찌 > 를 읽을 수 없다는 학우들의 민원이 '쇄도'했다. 4월25일 어김없이 배부자보를 '충전'하고 있던 < 고찌 > 기자 '밍기뉴'와 '개마고원'은 휴지통에 버려진 < 고찌 > 를 발견했다. 밍기뉴가 휴지통 속의 < 고찌 > 를 집어든 순간 둘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버려진 < 고찌 > 아래에는 더 많은 < 고찌 > 뭉치가 버려져 있었다. 어림해도 열댓 장이 넘었다. 누군가 배부자보 봉투에 있던 < 고찌 > 를 통째로 쓰레기통에 집어던진 것이 틀림없었다. 이 참극을 두고 개마고원은 한마디를 남겼다. "읽고는 버린 거니?" 그대로 당하고 있을 수 없었다. 페이스북에 속보를 올렸다. 쓰레기통에 처참하게 버려진 < 고찌 > 의 모습은 사진과 기사를 통해 고스란히 학우들에게 알려졌다. 속보를 게재한 직후 K 학우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괜찮다면 내가 배부자보를 감시하고 있다가 범인을 잡아 정체를 밝히겠다"는 제안이었다. 페이스북 속보를 본 '열혈 독자' K 학우는 매우 분개했던 듯하다.

K 학우는 600주년기념관 앞에서 1시간을 기다린 끝에 < 고찌 > 를 뭉텅이로 수거하는 학교 교직원의 모습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곧바로 다른 교직원에게 휴대전화를 빼앗겼다. 두 명의 교직원은 K 학우를 좁은 사무실 방에 몰아넣고 2시간 넘게 윽박질렀다. < 고찌 > 수거 장면을 찍은 동영상은 삭제당했다. 큰 충격을 받은 듯 K 학우는 당시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피했다. 왜 그의 입에서 '무사히' 졸업하고 싶다는 말이 나왔을까. 사건 전후 K 학우의 태도도 완전히 바뀌었다. 학교가 K 학우의 입을 빌려 우리 쪽에 전한 메시지는 명확했다. 'K를 보호하고 싶으면 < 고찌 > 관계자가 학생지원팀으로 오라. 그러지 않으면 K에게 징계를 내릴 수도 있다.'

몇 번의 내부 논의가 있었지만 학생지원팀에 갈 수는 없었다. 기자들이 학생지원팀에 출두한다는 것은 신원을 밝힌다는 의미고, 신원을 밝힌다는 것은 학교의 감시망 안에서 '요주의 인물'이 된다는 뜻이다. 그것은 외부의 탄압에서 자유로워야 할 < 고찌 > 의 활동이 위험에 처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진 것은 선의뿐이던 학우에게 본의 아닌 부담을 지웠다. 이 지면을 빌려 K 학우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또한 학교에 경고한다. K 학우를 징계할 경우 < 고찌 > 와의 마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고구마 구워 투표 사은품으로?

성균관대 독립언론 < 고찌 > 를 '대학 언론계의 레지스탕스'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 고찌 > 기자는 전원 익명으로 활동하며, 기자인 신분을 철저히 함구한다. < 고찌 > 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실과 예쁜 포장의 이면을 이야기하기 위해 2012년 3월 창간했다. 창간 멤버 누구도 이토록 오랫동안 익명을 쓰며 보안에 점점 예민해져야 하는 상황이 올 줄 몰랐다.

< 고찌 > 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학교의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께였다. 단선으로 치러진 총학생회 선거는 부정선거 논란까지 발생하면서 한바탕 소동으로 번졌다. 학교는 총학생회 선거 과정 전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투표율을 실시간으로 열람했고, 당시 총학생회장에게 투표함을 지고 다녀서라도 투표율을 확보하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으며, 투표소에서 고구마를 구워 투표 사은품으로 제공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동의는 구하지 않았다. 투표함을 미리 개봉해 오차율을 낮추자는 학교의 제안은 학교 선거 개입의 '끝판왕' 격이었다. 당시 정간 중이던 < 고찌 > 는 호외(2013년 12월)를 발행했다. 학교의 부정선거 제안에 항의하며 사퇴한 선관위원을 인터뷰해 해당 사실을 확인·폭로했다. 부정선거 논란에 대한 학교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해명을 요구하는 대자보도 교내 곳곳에 써붙였다. 학교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며칠 지나지 않아 자보가 사라졌다. 다시 써서 붙였다. 다시 사라졌다. 자보가 사라진 자리엔 A4용지로 출력된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현재 자리에 게시된 대자보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관리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확인이 필요하오니 관계자는 관리팀을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학교 쪽의 음습한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가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됐을 때, 학생들은 "자보를 일방적으로 철거할 것이 아니라 반박 대자보로 해명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학교는 끝까지 어떠한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

교직원은 " < 고찌 > 가 틀린 정보를 실었을 때 호소할 연락책이 필요해서 관리팀 방문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다. < 고찌 > 기사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을 땐 전자우편을 보내면 된다. < 고찌 > 는 기자들의 신분을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지 소통 창구는 모두 열어두고 있다. 페이스북에 글을 써도 되고, 메시지를 보내도 된다. 전자우편을 보내도 되고,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도 되며, 방명록을 남겨도 된다. 심지어 트위터로 멘션을 보내도 된다. 기자별로 개인 전자우편 주소가 공개돼 있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기자만 콕 집어 악성 전자우편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벌써 3년째 우리를 '스토킹'하면서 전자우편 주소 하나 모른다니 우리 교직원들은 참 재능 없는 분야에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학생지원팀의 ' < 고찌 > 색출작전'으로 애꿎게 들볶인 사람은 K 학우 외에도 여럿 더 있다. < 고찌 > 가 모르는 사이 더 많은 사람이 시달렸을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깊은 유감을 전한다. 따지자면 < 고찌 > 의 잘못은 아니지만 < 고찌 > 기자들이 1년에 생돈 700만~800만원씩 내서 먹여살리는 교직원이 저지른 잘못이니 대신 사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어서다.

삼성은 성균관대의 '신성'(神聖)이다. 학교 당국이 < 고찌 > 를 경계하는 까닭에는 삼성에 대한 '보위'도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혹시나 삼성에 향할지 모르는 비판을 우려한 까닭이다.

패닉, '암흑기'로 돌아갈 것인가

1996년 삼성이 재단을 다시 인수한 뒤 성균관대는 기업친화적 학교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삼성재단은 1965년부터 학교 운영에 참여했지만 재벌의 학원 소유에 반감이 컸던 당시 학생사회의 반발로 1977년 손을 뗐다. 삼성재단과 결별한 뒤 운영난에 시달리던 성균관대학교를 봉명그룹이 인수했다. 하지만 봉명그룹 시절에도 성균관대는 계속 운영난에 시달렸고, 설상가상 봉명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성균관대의 상황은 악화됐다. 이에 삼성은 성균관대 운영에 다시 참여하게 된다. 이후 쪼들리던 살림은 '삼성 약발'을 받아 확 핀다. 2004년 < 성대신문 > 기사에 따르면 삼성 인수 당시인 1996년 성균관대 교육 예산은 1300억원이었으나 2005년에는 4151억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학생 1인당 교육비도 같은 기간 397만원에서 1550만원으로 급증했다. 교수 1인당 외부 연구비도 마찬가지다. 1996년 3100만원에서 9140만원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2013년 성균관대는 < 중앙일보 > 대학평가 순위에서 4년제 종합대학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삼성은 그야말로 성균관대의 은인인 셈이다.

그러나 학내 구성원들이 삼성의 '탁월한 경영'에 반발한 사건이 있었으니 '2000년 600주년기념관 점거 사태'다. 이 사태는 2000년 등록금이 9.8% 인상된 채 통지되면서 시작됐다. 등록금 책정 과정에서 학생과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총학생회와 학교 쪽의 갈등이 이어졌다. 끝까지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총학생회는 총학생회와 대학원총학생회로 구성된 공동투쟁본부(공투본)를 결성한다. 공투본은 등록금 동결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600주년기념관 점거 투쟁을 시작했다. 삼성재단은 '성균관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재단을 파렴치한 집단으로 몰아가는 현 사태가 유감스럽고, 학생회가 봉쇄를 풀고 반성의 자세를 보일 때까지 법인사무국 직원을 전원 소환하겠다'며 법인사무국을 삼성으로 철수시켰다.

교직원과 학생들은 패닉에 빠졌다. 일명 '암흑기'라 불리던 봉명그룹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때부터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일사천리로 움직인다. 학교 당국은 전례 없이 많은 학생을 징계 처분한다. ASA(현 총학에 반대하는 모임) 등으로 구성된 '학내 사태를 걱정하는 성균인 일동'은 '공투본이 법인사무국 철수 등의 학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안을 놓고 벌인 재학생 7990명의 서명 결과를 공투본과 학교 쪽에 각각 전달했다. 삼성의 '밀당'은 성균관대에 큰 교훈을 줬다. 앞으로 잘못했다가는 삼성이 학교를 버릴 수도 있겠구나!

이후 학교는 재단에 '알아서 기기' 시작했다. 2012년 수업 시간에 삼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유학대학 강사였던 류승완 박사를 부당 해고했다. 이 사건을 보도한 성균관대 학보사 < 성대신문 > 은 학교의 지시로 결호됐다. 동아리도 예외가 없었다. 2013년 성균관대학교 중앙동아리 '노동문제연구회'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원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려다가 학교의 방해로 행사를 취소당했다. 사건을 보도하려던 < 성대신문 > 은 주간교수에 의해 또다시 결호를 맞는다. 재단과 학교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내용은 학보에 실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은 독립언론 < 고찌 > 가 호명되는 강력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갇힌 말을 흐르게 하라!

삼성재단의 유무에 따라 흥망을 오가던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교직원의 히스테릭한 행동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 대한 비판을 두고 어떤 학생은 '그렇게 학교가 싫으면 네가 학교를 떠나라'며 날을 세운다. 성공은커녕 당장 취직을 걱정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성균관대학교'란 이름은 터럭만큼도 훼손되어선 안 될 귀중한 학력자본이다. 학우들의 방어적인 모습은 생존이 유일한 목적이 돼버린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 고찌 > 는 2012년 창간해 2013년 9월 운영의 어려움으로 정간을 선언했었다. 정간 상태에서 같은 해 12월 앞서 언급한 선거부정 사태로 호외를 발행했고 큰 호응을 얻었다. 그 호응에 힘입어 지난 3월 정간을 해제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갇힌 말을 흐르게 하라! < 고찌 > 를 만든 것은 성균관대의 현실이다. 설령 학교 당국의 ' < 고찌 > 색출작전'이 성공해 < 고찌 > 기자 전원의 신분이 드러난다 해도, < 고찌 > 가 끝내 종간을 하게 된다 해도, 그것은 제2의 < 고찌 > , 제3의 < 고찌 > 를 낳는 길일 뿐이다.

개마고원·밍기뉴 성균관대 < 고급찌라시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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