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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초가집 어우러진 이곳에선 당신도 '시간 여행자'

고성 입력 2014. 06. 19. 04:01 수정 2014. 06. 19.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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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르 차르르…. 전날 날이 궂더니 밤사이 비가 오나 했다. 여름 갈대와 대나무가 바람에 이는 소리란다. 바깥 창문 창호지 문틈으로 보름을 갓 넘긴 금모래빛 달이 살짝 걸쳤다. 별빛도 살포시 스며든다. '평화'라는 단어를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다면 바로 이 순간일 것이다. "사람이 잠드는 시간에 어떤 신비스러운 세계가 고독과 고요 속에서 눈을 뜬다. 낮은 생물의 세계이지만 밤은 무생물의 세계"라던 알퐁스 도데의 소설 속 한 장면이 그대로 펼쳐지는 듯하다. 아니, 그보다 더 적막하고 청아하다. 사람은 변해도 이곳만큼은 옛것을 고스란히 품어내고 있다. 무성한 수풀 사이로 초가집과 기와집이 오종종 모인 모습이 소박하기만 하다.

지난 13~14일 찾은 강원도 고성군 오봉리 왕곡마을. 6만여평(19만8347㎡) 규모의 땅에 100여년 전 가옥 모습 그대로 70여채가 보존된 작은 마을이다. 여길 찾는 대부분이 동해안 7번 국도를 타다 이끌리듯 들어온다고들 했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송지호(湖)에서 700m 정도라 어쩌다 발길이 닿기도 한다. 고성의 명물인 천간정과 천학정을 둘러본 뒤 호기심 삼아 들르는 이도 있다. 그들처럼 처음엔 우연이었다. 아니, 큰 기대도 없었다. 그랬던 것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아마 운명이었나 보다.

왕곡마을의 역사는 6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했던 고려 충신 함부열이 고성에 은거하고, 자손 함영근이 터를 잡으면서 강릉(양근)함씨와 강릉 최씨 등의 집성촌이 생겼다. 현재 50채 정도만 사람이 살고 나머지 중 8곳은 군청에서 매입해 한옥숙박체험장(채당 1박에 2만5000~10만원·화장실 등 내부는 현대식)으로 만들었다.

왕곡마을은 두백산·공모산·순방산·제공산·호근산 등 해발 200m 내외의 다섯 개 산이 둘러싼 분지 형태다. 왕곡마을 이광수 문화해설사는 "수백 년간 전란과 화마로부터 안전했던 명당"이라고 말했다. 실제 6·25전쟁 당시 비행기 포격으로 포탄 3발이 공모산에 떨어졌지만 불발탄이었다고 한다. 또 1996년과 2000년 고성 산불로 인근 마을이 초토화됐지만 불길은 왕곡마을 앞에서 사그라졌다.

천하의 길지(吉地)라는 문화해설사의 말 때문인지, '큰상나말집'이라는 기와집에서 하룻밤 묵었을 뿐인데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작은 초가집인 '갈벌집'에는 작가 세 명이 혼신을 다해 탈고 중이었다. 이광수 문화해설사는 "땅의 기운 때문인지 이 마을에서 집필해 좋은 결과를 맺은 작가들이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굳이 멀리서 찾지 않더라도 이렇게 푹 잠이 든 게 얼마 만인가. 그 흔한 선풍기 하나 없는데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북방 가옥 특유의 겹집 구조 때문이란다. 안방과 사랑방, 마루와 부엌이 나란히 배치되고 부엌에 외양간이 붙은 형태다. 2000년 중요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됐다.

아이들에게도 가르칠 거리가 있다. 1820년 세워진 '양근 함씨 4세 효자각'이 그것이다. 4대에 걸쳐 다섯 명의 효자가 부친에게 단지주혈(斷指注血·위독한 부모에게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는 것)한 사연을 담고 있다. 최근에는 왕곡마을의 가치를 더 알리기 위해 문화재청 후원으로 '생생문화재사업'도 펼쳐지고 있다.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짚풀 공예체험과 왕곡 풍류방 등의 행사가 이어진다. 이를 진행하는 여민의 김영옥 대표는 "살아있는 문화재인 왕곡마을에서 '시간 여행자'가 돼 보는 경험은 분명 매력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속버스·직행버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속초고속버스터미널-왕곡마을 / 동서울터미널-간성시외버스터미널-왕곡마을

자가용 진부령-알프스리조트입구-건봉사입구-간성읍-왕곡마을 / 미시령-천간정-송지호해수욕장-왕곡마을 / 한계령-설악산 오색지구-낙산사-속초-천간정-왕곡마을

생생시간여행 프로그램 왕곡풍류방(5월~11월) :토요일 저녁 7~8시. 매월 다른 악기로 풍류사가 진행. 무료. 문화해설(5월~11월) : 토요일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http://www.wanggok.kr (033)631-2120

맛집 백촌막국수 막국수에 얼음 띄운 동치미 육수를 직접 부어 먹는데 그 육수 맛이 일품이다. 수육 역시 고소하다. 메밀국수 7000~8000원. 편육 1만2000~1만5000원. 강원 고성군 토성면 백촌리 162. (033)632-5422 독도횟집 교암항에 있으며 고성의 명물인 천학정과 가깝다. 직접 잡아 올리며 양이 푸짐하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교암리 151-12. (033)631-8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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