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연합뉴스

"55만가구 살펴봐라"..유병언이 부른 '감시사회'

입력 2014. 06. 22. 09:02 수정 2014. 06. 22. 09:38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검경, 정보력 부재와 한발 늦은 대응 탓에 수사력 낭비"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유병언이 종적을 감추고 꼭꼭 숨었다.

검찰이 힘을 못 쓰자 그동안 뒷전에 밀려 검찰에게 '수사상황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며 볼멘소리를 하던 경찰이 앞으로 나섰다.

경찰청은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장남 대균씨를 검거하기 위해 지난 13일 사상 유례없이 일선 경찰서 단위까지 전담팀을 구성했다.

각 지방경찰청은 1주일 단위로 자체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한 수사·수색 상황을 지방청장이 직접 경찰청장에 보고하고 있다.

유씨 부자의 행적이 지난달 25일 이후 잡히지 않으면서 경찰은 막연히 광범위한 수색을 펼치고 있으나 성과는 없고 부작용은 곳곳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

◇ "광주 55만 모든 가구 살펴봐라" 지방경찰청 비상

경찰청 지시로 광주지방경찰청은 일선 경찰서장을 비롯해 과장급 간부를 총동원, 비상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이 자리에서 "55만 모든 가구를 모두 살펴보라"는 내부지시가 떨어졌다. 별로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지시인데도 경찰 담당부서는 이를 위한 수색계획을 마련했다.

광주의 모든 지역을 각 경찰서 관할 지구대별로 나눠 각 경찰서에 따라 적게는 100여 개에서 많게는 250여 개, 광주의 5개 경찰서 관할 구역을 808개 구역으로 바둑판 같이 나눴다.

나눈 구역에 지구대원과 경찰서 인원을 2인 1개조로 편성, 광주에서만 1천200여명이 수색에 동원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광주지방청은 유씨 부자 수사전담팀에 86명의 경찰을 배치했다.

검거전담팀은 지방청 광역수사대원들뿐만 아니라 각 경찰서 단위까지 꾸렸고, 여기에 분석전담팀, 사이버 담당, 보안담당 등 전담요원까지 배치했다.

이들은 경찰서의 구역별 수색과 별도로 자체 수색을 벌이거나 구원파 관련 시설과 관련자들을 수사해 보고한다.

◇ 유병언이 부른 '감시사회'…광범위한 민간사찰 우려

유씨 부자에 대한 행적이 지난달 25일 이후 묘연하자 경찰은 광범위한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22일 광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수색구역을 할당받은 지역경찰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초인종을 누르고 협조를 구하는 방법으로 구역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수색하고 있다.

수색영장이 없어 함부로 들어가 살펴볼 수 없는 곳은 건물주나 통·반장의 힘을 빌린다.

경찰은 통반장을 접촉해 특정가구의 사정이나, 전세계약 여부 등 정보를 수집,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면 첩보형태로 정리해 정보과나 수사과에 보고한다.

유씨 부자가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가정 아래 전국의 모든 곳이, 국민 모두가 경찰의 수사대상, 불심검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현장 수색에 동원된 일선 경찰은 "영장도 없이 샅샅이 수색하라는 지시에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 등 인권침해 소지가 충분히 있으나 이에 관한 주의나 지침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통·반장에게 주민들을 대신 살피도록 하라는 상부의 지시까지 이어져 주민들이 서로 감시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한 경찰관은 "아파트 단지 모두를 수색하라고 해서 현장을 가면 막연해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지시대로 한다면 인권침해는 눈감아야 하고, 반대로 인권을 생각한다면 수색을 설렁설렁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토로했다.

◇ '풍선효과' 강·절도범 못 잡는다…수사력 낭비 내부비판

경찰 내부에서는 무리한 수색동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무리하게 수색구역을 광범위하게 설정하고, 천여 명의 수색인력을 편성하는 것이 모두 '보고용'이고 '무능의 상징'이라는 게 현장 경찰관들의 불만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은 "지방청장이 매주 경찰청장에게 직접 유병언 관련 수사상황이나 수색성과를 보고한다"며 "아무런 단서가 없는 상황에 보고는 해야 하니 몇백 곳을 몇 천명이 수색했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보력 부재가 '맨땅에 헤딩 식'의 수사와 수색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병언 탓에 죽겠다"고 고충을 토로한 검거전담팀 소속 경찰은 "내부 제보나 정보가 없으면 유병언 검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전했다.

그는 "유씨 부자 검거작전 초기 검찰과 경찰 사이에 수사정보 교환만 제대로 됐더라면 조기에 검거할 수 있었을 것이다"며 "현재 난관에 봉착한 것도 검·경 모두 정보력 부재 등 무능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사력 낭비다.

전국에서 검문·수색 중이라 발생사건이 줄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절도사건과 강도사건 등 강력사건이 발생해도 동원할 수사인력이 적어 검거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pch80@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