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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잊지 말아주세요"단원고 2학년 눈물의 등굣길

입력 2014. 06. 25. 11:29 수정 2014. 06. 2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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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유성애,이희훈 기자]

▲ 단원고 2학년, 상처 안고 등교

세월호침몰사고에서 생존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25일 오전 경기 안산 단원고에서 등교를 하며 희생자 유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책임을 회피하고 이기심에 가득한 어른들 때문에 우리 곁을 떠나야만 했던, 그런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저희에겐 있었습니다. 저희는 나라를 이끄는 모든 어른들이, 왜 우리 친구들이 희생돼야만 했는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앞으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람이 진짜 죽을 때는, 잊힐 때라고 합…."

등교에 앞서 호소문을 읽던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A4용지 세 장 분량의 호소문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던 학생은, "사람이 진짜 죽을 때는 (모두에게서) 잊힐 때"라는 부분을 읽다 결국 마이크를 내려놓은 채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18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아픈 등굣길이었다.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구조된 단원고 학생 75명이 25일 오전 8시 40분께 사고 후 처음으로 등교했다. 학생들은 '리멤버 0416(4월 16일을 기억하라)'가 새겨진 노란 팔찌를 손목에 차고 있었다. 71일 만에 돌아온 학교였지만, 웃거나 떠드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원고 정문에 학생들이 도착해 교실로 들어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40여 분. 등교하는 생존학생들을 맞이하는 학부모들은 등굣길 왼쪽(생존학생 학부모)과 오른쪽(희생학생 학부모)으로 나누어 서, 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살아 돌아온 아이들 얼굴 보며 통곡하는 부모들

학생들은 등교에 앞서 직접 작성한 호소문을 발표한 뒤, 희생학생 학부모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을 잊지 않기 위해 학생들이 생각해낸 자리였다. 보도자료에는 "엄마 아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란 인사를 하겠다고 써있었지만, 현장은 달랐다. 돌아오지 못하는 친구의 부모님을 마주한 학생들은 "죄송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인사했다.

이날 8시 30분께 합숙 중이던 안산 중소기업연수원에서 학생들을 태운 버스 3대가 단원고 정문 앞에 차례로 도착했다. 정문에서 학교까지는 약 100m 정도. 학교로 올라가는 언덕길 오른편에는 희생학생의 학부모 60여 명이 도착해 생존학생들의 복귀를 격려하며 축하해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 힘들지만 다시 돌아온 학교

세월호침몰사고에서 생존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25일 오전 경기 안산 단원고로 등교하고 있다.

ⓒ 이희훈

유족 측 학부모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면서도 학생들을 위해 감정을 절제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사랑합니다', '얘들아 살아 돌아와 줘서 정말 정말 고맙다'는 등 직접 쓴 노란색 손팻말을 들고 있는 학부모들도 보였다. 가방을 메고 단원고 교복을 입은 생존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하자, 공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학생들은 각자 어머니, 아버지 등 가족들의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렸다. 학생 중 일부는 정문 앞에 나와 있는 선생님들에게 "안녕하세요"라 소리 내어 인사했지만, 대부분은 표정 없는 얼굴로 짧은 목례만을 한 뒤 학교로 들어섰다. 학교 앞에는 카메라·사진 기자 등 취재진 70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학생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학생들이 모두 내리자 정문 안 등굣길 왼쪽에는 생존학생과 학부모 등 140여 명이, 오른쪽에는 희생학생의 학부모 60여 명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상황이 됐다. 이 날 등교에 앞서 생존학생의 아버지이자 학부모 대표 중 한 명인 박아무개(44)씨가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낭독하며 "아이들을 평범한 학생으로 봐달라"고 호소했다(관련기사: "'저주받은 아이' 아냐... 평범하게 대해주세요").

"지나친 관심에 지친 우리...평범한 18세 소년 소녀로 대해달라"

이어 단원고 학생 중 한 명이 나와 생존학생들을 대표해 호소문을 읽기 시작했다. 학생은 "처음에는 샤워를 하지도, 잠을 자지도 못할 만큼의 공포에 시달리는 등 저희는 아직도 수많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며 "좋든 나쁘든 지나친 관심에 저희는 지쳐있다, 사고 이전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저희를 그저 18세 평범한 소년 소녀로 대해 달라"고 말했다.

이 학생은 "저희를 위로하고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사고를 회상시키는 질문, 또는 SNS와 메신저로 불쾌한 메시지를 보내는 분들도 있다"며 "심지어는 너만 살아 나와서 좋느냐, 어떻게 친구를 배신하느냐는 말을 하는 분도 있다"고 말하다가 힘에 겨운 듯 잠시 낭독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다 안전한 나라가 되게 해 달라, 사람이 진짜 죽을 때는…"이라고 하다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하고는 눈물을 터뜨렸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숙이고 눈가를 훔치며 서로를 토닥이는 등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 돌아온 단원고 학생 위로하는 유가족

세월호침몰사고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25일 오전 경기 안산 단원고에서 치료 뒤 첫 등굣길에 오른 2학년 학생들을 위로하고 있다.

ⓒ 이희훈

학부모들은 울음을 터뜨린 남학생을 껴안고 격려했다. 채 읽지 못한 글은 장동원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며 마저 읽어 내려갔다.

생존학생 학부모와 학생들의 호소가 끝난 뒤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희생학생의 학부모에게 가서 인사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내내 절제하던 희생자 학부모들의 감정은 살아 돌아온 아들·딸의 친구를 직접 마주하자 복받쳐 올랐다. "어떻게 해, 난 몰라…."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생존학생을 껴안은 채 통곡하는 어머니도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생존학생의 학부모들도 뒤돌아선 채 어깨를 들썩였다.

생존학생 학부모 박아무개씨는 아이들이 모두 등교한 후 짤막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박씨는 "지금 아이들이 다 나아서 등교하는 건 아니고 치료가 더 필요하지만, 학교 와서 정상 수업을 하며 치료프로그램을 받으려는 것"이라며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더 상처 입을 것 같아, 아이들이 힘들지만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아이들이 구조됐을 때는 학부모 대부분이 전학 등을 생각했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학교를 살려야 한다'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며 "전학 관련해서는 들은 바도 없고 진행된 바도 없다, 우리가 학교를 살려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안산 내 연수원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며 치료프로그램을 진행했던 한 관계자는, 생존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간 후에도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학교 내 배치된 상담전문교사와 사회복지사 등을 통해 치료받는 한편, 학교 측도 학생 건강을 전문적으로 살피는 스쿨닥터(school doctor)제 도입 등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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