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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팀 리포트] 자리 앉자마자 "1만원 내세요"..술병 뒹굴고..곳곳이 싸움판..여름 백사장 '50일 무법천지'

김태호/홍선표/백승현 입력 2014. 07. 12. 09:02 수정 2014. 07. 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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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 무질서에 몸살 앓는 해수욕장 휴가철 지구대 신고 평소 3배..대부분 음주 인한 폭력행위 지구대 근무인원 5명 불과..수십만 피서객 올땐 속수무책 "법 제재 필요" 목소리 커져..공공장소에서 음주 제한 복지부, 국회 제출 계획.."국민자유 침범한다" 우려도

[ 김태호/홍선표/백승현 기자 ]

서해안 최대 규모인 대천해수욕장을 관할하는 충남 보령경찰서 해수욕장지구대원들은 요즘 '50일간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피서지에서 발생하는 폭행 강도 성추행 등 각종 범죄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태풍 '너구리'가 비켜가고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됨에 따라 이번주부터 피서 인파가 대거 몰려들고 있다. 휴가철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평일 2만~4만명, 주말 7만~10만명에 달한다. 보령 머드축제 기간에는 하루 최대 7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기도 한다.

인파가 몰리면 범죄가 빈발한다. 해수욕장에선 주취자들이 가장 큰 골칫거리다. 얼마 전엔 20대 남성 6명이 음주 후 폭행으로 이곳 지구대에 연행됐다. 불구속 입건된 A씨는 함께 술을 먹던 친구가 보이지 않자 친구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다른 일행이 장난삼아 A씨를 따라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고, 이 모습이 불쾌했던 A씨 일행이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사소한 시비였지만 휴가철 해수욕장에서 벌어지는 음주는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박종섭 해수욕장지구대장은 "주말엔 하루에 5~6건 정도 음주 후 폭행 등의 사고가 발생한다"며 "머드축제 기간에 접어드는 다음주부터는 전 대원을 순찰활동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올해도 전국의 주요 피서지가 무질서에 몸살을 앓고 있다. 보령 대천을 포함해 부산 해운대·광안리, 강릉 경포 등 전국 유명 해수욕장에선 크고 작은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대부분은 음주에서 비롯된 범죄다. 보건복지부는 해수욕장 공원 대학 등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제한하는 법안을 재추진하기로 했지만, 찬반 여론이 거세게 맞서고 있다.

◆음주 패싸움에 살인까지

지난 10일 대천해수욕장 백사장. 평일 저녁인데도 해변가엔 옹기종기 모여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대천해수욕장에서 '만남의 장소'로 통하는 시민탑광장 인근은 불법 주차한 차량이 다른 차량의 원활한 진행을 막고 있었다. 밤 10시가 지나자 피서객들은 해변가 곳곳에서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의 폭죽이 터진 탓에 폭죽 연기가 금세 해변가 주변으로 퍼져 관광객들은 손으로 코를 막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슷한 시각 광안대교가 바라다보이는 부산 민락동 수변공원엔 시민과 관광객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쓰레기통 주변에는 맥주캔과 소주병이 뒹굴었고, 곳곳에서 술에 취한 사람들의 고성이 오갔다. 과도한 애정행각을 하는 남녀 커플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이곳 수변공원에선 술을 마시던 10대 청소년들이 패싸움을 벌여 이 가운데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변공원 인근을 지나는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민락동에 거주하는 김모씨(28)는 "살인사건 이후 수변공원을 지날 때 술 취한 사람을 보면 겁이 난다"며 "무질서를 막을 수 있는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서객과 동네 주민 간 다툼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5일 인천 강화군 동막해수욕장. 차광막을 놓고 피서객과 해수욕장 관리자 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피서객들이 뜨거운 볕을 피해 그늘로 들어와 돗자리를 펴면 몇 분 안에 조끼를 입은 '할아버지'들이 다가와 "자릿세로 1만원을 내라"고 요구했다. 해수욕장 어디에도 '자릿세'에 대한 안내문이 없었지만, 할아버지들은 "'동막리개발위원회'에서 관리하는 자리"라며 "돈을 내라"고 막무가내였다. 언쟁이 심해지자 "만원도 없으면 집에 있지 왜 돌아다니느냐"는 막말도 튀어나왔다.

동막해수욕장을 찾은 한 피서객은 "소속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돈을 요구하니 화가 나지만, 아이들도 있는 만큼 어쩔 수 없이 돈을 줬다"며 "앞으로 다시는 이곳을 찾아오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되풀이되는 무질서…관리는 역부족

여름철 피서지의 무질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경찰청은 여름철 피서지에서의 불법행위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전국 98곳에 여름경찰서를 운영 중이다. 지난해 여름경찰서에 접수된 형사범 숫자는 538명이었다.

이 가운데 폭력범이 62명으로 가장 많았고 절도(146명), 강간·추행(4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원인은 거의 대부분이 음주였다. 경찰 관계자는 "여름경찰서에 접수되는 사건의 90% 이상이 과도한 음주로 취한 상태에서 일어난다"며 "피서지에서의 과도한 음주를 단속할 마땅한 수단이 없어 시민들의 상식에 호소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를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게는 수십만명이 몰리는 피서지 치안을 감당하기에 경찰의 대응은 부족하기만 하다. 올해 여름경찰서에 투입되는 경찰 인력은 1402명. 한 곳당 14명 정도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해운대에는 최대 32명이 배치되지만, 이곳에 하루 최대 백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사건 사고를 제때 대응하기는 어렵다.

해수욕장을 관리하는 지구대도 마찬가지다. 대천해수욕장 지구대의 경우 평소 20여건의 112신고가 들어온다. 휴가철에는 70여건으로 급증한다. 지구대에는 현재 13명의 경찰관이 3개조로 순찰팀을 편성해 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수십만명이 몰리는 머드축제 기간에는 경찰 기동대원 3~4명이 각 팀에 추가로 배치된다. 그렇다고 해도 각종 신고를 접수하고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주변 상인들의 얘기다.

◆"법으로 제재" vs "문화를 바꿔야"

과도한 음주에서 비롯되는 피서지의 무질서와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인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복지부는 최근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제한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개정안에는 해수욕장과 같은 피서지도 음주 제한 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수욕장 등에서의 음주행위는 다른 사람들, 특히 아동과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판단에서 개정안을 마련한 것"이라며 "상인 등 일부 반발이 있는 만큼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하기에 앞서 각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법으로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제한하려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세계보건기구 등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의 음주금지는 정책적 효과가 입증됐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 중"이라며 "해변에서만이라도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하면 여름철 피서지 주취범죄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가가 개인의 음주까지 통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해수욕장 질서 유지를 위한 음주 제한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며 "해수욕장 등 피서지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을 선행한 다음 일부 규제를 도입하는 게 적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보령=김태호/부산=홍선표/강화=백승현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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