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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유대균과 박수경, 그리고 신정아

이경원 기자 입력 2014. 07. 28. 16:12 수정 2014. 07. 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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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참사를 다루는 방식

2007년 가을은 대한민국의 성장통일 수 있었습니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위조 파문 말입니다. 미국 예일대 학위를 받았다고 속여 버젓이 대학 교수 자리까지 꿰찼다는 사실만으로도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대한민국 학계가 얼마나 허술하고 썩어빠졌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여기에 청와대 간부가 그 뒤를 봐줬다는 의혹까지 맞물리면서 사건은 희대의 스캔들로 비화됐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습니다. 청와대 간부와의 부적절한 불륜 의혹까지 뒤엉키면서 학력위조라는 사건의 본질은 어느새 뒤로 물러났습니다. 언론의 무게 중심은 대한민국의 학계와 정치계가 신정아라는 팜므파탈의 유혹에 어떻게 놀아났는지에 옮겨졌습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일상을 들춰내기 시작했습니다. 검찰에 소환된 그녀의 패션, 그녀가 맨 명품 가방의 가격까지 뉴스거리 됐습니다. 한 언론은 그녀가 벗었다며 사진까지 공개했습니다. 언론은 그녀의 일상을 해체해 거침없이 폭로했고, 여론은 이를 날 것 그대로 소비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신정아는 당시 유행하던 '된장녀' 코드의 상징이었고, 사회는 그 반감을 신정아를 통해 해소하는 듯 보였습니다. 당시 저는 수사가 진행 중이던 서울 서부지검에 두 달 가까이 뻗치기(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무기한 대기하는 것)했는데, 기자들도 그녀의 학력 위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일 년 뒤, 당연히 사건은 잠잠해졌습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희대의 스캔들은 징역 1년 6월로 끝났습니다. 학력 위조와 미술관 후원금 횡령 혐의가 인정됐고, 이후 신정아는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명품 가방과 수백만 원짜리 옷을 소지한 혐의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신문의 사회면 2단 기사로 채워진 허무한 마무리에, 추석까지 반납하며 몇 달 생고생했던 시간이 여간 아깝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 선배가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작년엔 대한민국이 미쳐 돌아갔었으니까." 그랬습니다. 신정아 사건은 학력위조가 만연했던 대한민국 사회의 성장통이라기 보단, 막장 드라마에 가까웠습니다.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씨의 아들 대균 씨가 검거됐습니다. 그와 함께 있던 '호위무사' 박수경 씨도 철창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박 씨의 미모와 함께 필요 이상으로 당당한 그녀의 표정이 연일 화제였습니다. 언론은 기민하게 답했습니다. 이제부터 그녀의 일상이 모두 뉴스거리입니다. 언론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를 '단독'이라며 앞 다퉈 보도합니다. 표정에서 읽히는 심리상태를 심리학, 범죄사회학 등 온갖 학문과 수사를 동원해 분석해댑니다. 심지어, 세 달 간 오피스텔 안에서 유대균과 함께 뭘 했는지, 민망한 제목까지 뽑으며 기사를 써댑니다. 사건의 본질은 세월호인데, 이번 검거 뉴스에서 세월호란 말을 찾기 힘듭니다. 결국 가십으로 흘렀던 7년 전 그 사건과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다시 2014년 4월 16일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 참담한 날을 겪으며 유족들의 입장을 강조했던 이유는 단순히 측은지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유족의 눈물을 충분히 소비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유족의 입장이 먼저인 이유는, 유족의 눈에 투영된 대한민국의 밑바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잔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유족의 시각에 공감하며 더 분노했고, 우리가 재구성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족들은 정작 유병언과 유대균, 박수경의 일상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유족들이 더운 여름 국회 앞에서 땀 흘리며 끈질기게 원했던 건 유 씨 일가의 조속한 검거보다 세월호 특별법이었습니다. 세월호보다 대한민국의 치부를 먼저 인양하길 바랐습니다. 반면, 우리 사회와 언론은 세월호 참사 100일이 넘은 지금, 유대균과 박수경에 더 분노하고 있습니다. 자기모순을 못 견뎌서 일까요. 일부 언론은 유족과 선을 그으며 되레 유족이 감정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유족들의 대응 방식이 차라리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심지어 이타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 사회와 언론이 사건의 본질에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사이, 유족들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 세월호라며 외롭게 중심을 잡고 서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언론이 유대균과 박수경을 다루는 방식은, 7년 전 신정아 사건과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본질을 호도하고, 왜곡된 여성관으로 반감을 무차별하게 배설하는 방식, 심지어 그들의 일상을 해체하며 묘한 쾌감을 얻는 그 관음증까지 말입니다. 유대균과 박수경 검거가 대한민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련의 과정이길 그 누구보다 바라고 있지만, 아직까지 잘 모르겠습니다. 세월호는 온데간데없고, 유대균과 박수경의 삶과 일상을 소비하며 희생자들의 죽음을 물 타기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무엇보다도, 유병언과 유대균, 박수경 검거하느라 진을 뺐던 그간의 100일이, 아이들에게 미안해 미치겠습니다. 2015년 어느 날, "작년엔 대한민국이 미쳐 돌아갔어."라는 말, 반복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이경원 기자 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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