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데일리

내 여자에게 선물하고픈 '남자의 도시' 홍콩

문화부 입력 2014. 08. 12. 06:06 수정 2014. 08. 12. 07:26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덩라우가 모여 있는 건물 사이로 난 좁은 골목에서 한 모자(母子)가 조상들을 위해 향을 피우고 있다. 홍콩에서 음력 7월은 귀(鬼)의 기운이 가장 센 기간이라 향을 피우는 모습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홍콩=이데일리 정철우 기자] 언제부터 '홍콩' 하면 여자가 먼저 떠올랐다. '쇼핑천국' '미식천국'이라는 수식어는 남자, 특히 40대 남자가 '매력 없는 도시'로 낙인찍기에 딱 좋게 몰고 갔다. 낭만을 잃은 아저씨들에게 쇼핑은 지옥이요, 맛난 음식이 가장 많은 곳은 서울이기 때문이다. 홍콩에 대한 기대가 뜨뜻미지근했던 이유였다. 마음이 바뀐 건 홍콩으로 출발하기 전날. 비행기에서 들을 만한 음악을 밤새 고르면서부터다. 정확히는 운명처럼 '영웅본색'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른 후다. 대한민국은 지금 '의리'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아무나 의리를 외치며 주먹을 부딪친다. 하지만 의리하면 역시 홍콩이다. 원조가 어디이건 홍콩 누아르 속 의리는 1980년대를 부대끼며 살아온 남자들에게 '로망' 그 자체다. 홍콩 영웅들 표정 속 허무함,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태생적 외로움이 담겨 있다. 홍콩을 가면 그 알 수 없던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갑자기 피가 뜨거워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심장아 너 살아 있었구나.'

허름한 공장과 덩라우들이 모여 있는 셩완의 거리

◇남자, 고독 그리고 홍콩

첫 목적지는 홍콩섬에 위치한 '셩완'. 홍콩 경제의 중심지다. 30∼40층 높이의 초 현대식 건물 사이로 낮고 초라한 낡은 건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셩완에는 왠지 낯설지 않은 거리가 있다. 사이잉펀 거리다. 30년 전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한 영화 속 모습이다. 거리에 들어서는 마치 홍콩 누아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살던 집과 거리는 여전히 그대로다. 좁은 골목 사이로 오밀조밀 붙어 있는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 사람들은 덩라우라고 한다. 당나라 때 지어졌을 법한 오래된 건물이라는 뜻이다.

이름은 우스꽝스럽지만 그 속엔 가슴 저린 이야기가 담겨 있다. 홍콩은 무인도나 다름없던 곳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보내던 유배지이자, 버려진 땅이었다. 그러다 1898년 난징조약으로 영국이 식민통치를 하면서부터 홍콩은 달라졌다. 영국은 홍콩을 무역항으로 개발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더 모여들었고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유가 무엇이건 살던 곳을 떠나온 사람들의 섬인 셈이다.

덩라우는 유난히 다닥다닥 붙어 있다. 땅이 좁아서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서로 붙어 있기 위함이다. 설명을 듣고 나니 덩라우의 또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서로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낯설고 험한 땅. 홍콩 사람들은 피붙이 못지않게 내 이웃과 친구들과 가까워져야 했다. 주위에 온통 의형제들이 살고 있고, 밑도 끝도 없이 남을 위해 목숨을 걸던 의리의 근원과 맞닥뜨릴 수 있는 곳이 바로 홍콩이다. 그래서일까. 홍콩 사람들은 작은 구멍가게를 해도 꼭 동업을 한다. 힘을 모아서 서로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란다. 외롭지 않게 되는 건 보너스. '가까운 사람일수록 동업은 하지 말라'고 배워온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홍콩의 옛 주택 건물 덩라우

◇향내로 가득한 홍콩의 거리

음력 7월의 홍콩은 향내로 가득하다. 귀(鬼)의 기운이 가장 센 기간이기 때문. 너 나 할 것 없이 간단한 음식을 내놓고 향을 피우며 조상과 그 주위의 영령들을 위로한다. 향을 피우는 의식은 먼 옛날 홍콩의 주인이었던 범죄자들 사이서 시작됐다. 홍콩까지 쫓겨 내려와 한참 지난 후에야 진심으로 지난 세월을 반성하게 된 사람들은 향에 불을 피웠다. 향의 연기는 그들의 외로움과 참회를 담고 하늘 위로 흔들리며 올라갔을 것이다.

그들을 보고 다시 덩라우를 올려다 보니 홍콩이 낳은 세계적인 배우 유덕화가 옥상에 걸터앉아 있는 듯했다. 향을 피워 먼저 떠난 이를 추억하며 복수를 다짐하던 영화 '천장지구'의 유덕화의 모습. 반쯤 머금은 맥주를 하늘로 뿜어내는 장면은 수없이 많은 패러디를 양산한 명장면이다. 향 피우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특별해 보였다. 누군가의 지루한 일상이 내겐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는 것. 여행만이 만들 수 있는 기적이다. 홍콩은 뭐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도시다. 너무도 현대식이면서도 예 스러웠고, 복잡하고 지저분한 듯 했지만 깨끗했다. 단순히 동양과 서양이 혼합된 곳이 아니다. 허무와 끝 모를 불안, 내일을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운 시간의 무게감, 이 모두가 홍콩의 진짜 모습이다.

할리우드 공원 정문

◇가장 중국스럽고 이질적인 곳 '할리우드로드'

가장 중국스러우면서도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할리우드로드다. 또 다른 이름은 캣로드. 원래 골동품상이 하나둘 생기며 만들어진 곳이다. 이 거리의 첫인상은 '허무함의 한 조각'이었다. 처음엔 장물을 취급하던 곳이었지만 진품들은 대부분 거리를 떠났고 이젠 가품들로 채워져 옛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홍콩에서 가장 중국스러운 것들을 볼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름은 할리우드로드다. 홍콩을 지배한 영국인들이 아무렇게나 갖다 붙였다. 서울의 인사동거리를 '지브리스튜디오'라 불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할리우드공원에서 조깅하던 40대의 크리스 천은 "홍콩 사람들은 가슴 한구석에 불안감을 안고 산다. 1980년대 최고의 성장기 땐 중국 반환 이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현재는 다른 두 체제 속에 살고는 있지만 언제든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속한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은 우리의 머릿속에 늘 잠재해 있다"고 말했다. 홍콩 누아르에 유독 선과 악이 혼란스럽게 얽혀 있는 이유도 이런 분위기가 잘 묻어났기 때문은 아닐까.

홍콩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와인들. 와인이 면세로 판매돼 한국 보다 싼 가격에 좋은 와인을 구매할 수 있다. 현재 홍콩 달러는 약 1불에 130원 정도 한다.

◇연인과 함께하기 좋은 도시

홍콩은 연인과 함께하기 좋은 도시다. 이미지보다 훨씬 깨끗하고 안전했다. 무엇보다 그 거리의 진한 고독의 무게를 이겨내기 위해선 사랑하는 사람이 꼭 필요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30년이나 지나고서야 알게 된 그 옛날 형님들의 아우라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함께 이어폰을 나눠 끼고 '영웅본색'의 주제가를 들으며 홍콩의 밤거리를 걷고 싶어졌다.

홍콩에는 연인에게 소개해 주고픈 가게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팬케이크 전문점인 '스탁'(STACK). 셩완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홍콩스러운' 거리 한구석에 자리잡은 가장 '서양스러운' 가게다. 새로 창조한 칵테일과 함께 여러 종류의 '창작' 팬케이크를 파는데 그 맛이 제법 조화롭다.

외국인이 집단 거주하고 있는 웨스턴스트리트에는 서양 음식점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중 '하이 스트리트 그릴'(High Street Grill)이 가장 유명하다. 음식 맛도 맛이었지만 가게 앞 작은 탁자에 와인과 음식을 시켜놓으면 로맨틱 그 자체다. 한국이라면 남세스러워 못 하겠지만 홍콩에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은 분위기다.

쇼핑 명소야 이미 널리 알려진 터. '피엠큐'(PMQ)는 아직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쇼핑센터다. 홍콩의 신진 디자이너들의 공간으로 옛 홍콩 경찰 기숙사를 리모델링해 정부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월세는 '번 만큼'이란다. 이곳에서 성공해서 나갈 수 있도록 출발을 돕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늘 같은 패턴과 유행에 지친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러 시간을 가져볼만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원하다. 소호지역을 걷다가 비처럼 쏟아졌을 땀 식히기에 제격이다.

웨스턴 스트리트에 위치한 레스토랑들

◇여행메모

△어떻게 가나=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캐세이패시픽, 타이항공 등에서 매일 인천~홍콩 간 직항편을 운행한다. 제주항공, 진에어와 같은 저가 항공사도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3시간 반 정도 걸리며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다.

△안전은=대체로 밤에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지만 여행객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공공장소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침을 뱉는 행위에는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번화가의 경우 2차선 도로 간 신호등이 없는 곳이 많아서 횡단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환율과 환전은=홍콩달러(HK$)를 사용하며 1홍콩달러는 133원(8월 기준) 정도다. 환전은 시중은행과 공항 환전소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홍콩에서도 은행과 시설 환전소에서 환전이 가능하지만 수수료 부담이 있으니 미리 준비하고 떠나는 것이 좋다.

누군가 옛 홍콩 경찰 기숙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PMQ의 벽 한켠에 '영웅본색' 1에 나오는 주윤발의 명장면을 붙여두었다. 건물 벽에 한 장난 중 손 꼽히는 재치가 아닐 수 없다.

STEAK의 각종 퓨젼 팬케이크들

홍콩의 전통 섀시 문양. 이젠 이 문양을 낼 수 있는 장인이 거의 남지 않았다고 한다. 홍콩의 가게에는 이 섀시를 인테리어로 활용한 현대식 카페 들이 많다.

웨스턴 스트리트에 있는 레스토랑 테라스

웨스턴 스트리트의 한 레스토랑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홍콩의 레스토랑과 바에는 스탠딩 문화가 발달해 있어 술 한 병 들고 선 채 대화나누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PMQ 내부에 있는 스낵바. 옛 홍콩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며 흔치 않은 홍콩 지역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화부 (culture@edaily.co.kr)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