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22년 산 명예시민도 영주권은 안되네요"

이유석기자 2014. 8. 19. 15: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명예시민이 본 한국] 케이피 시토울라 네팔관광청 한국사무소장"자격조건 너무 엄격.. 귀화가 차라리 쉬워남편에 맞아 반신불수된 네팔인신부 구출도"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헬렌 안 여사, 토머스 도드 전 미상원의원,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얼핏 보기에 전혀 같을 게 없는 이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서울 명예시민'이라는 점이다.

서울 명예시민은 매년 10월28일 외빈이나 시에 공로가 인정되고 시민에게 본보기가 되는 대한민국 국민이나 외국인 등에게 주어진다. 1958년 '역사학보' 간행을 지원한 '1호 명예시민' 미국인 마커스 셰바허부터 20년간 빈민구제활동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명예시민이 된 노무라 모토유키까지 모두 694명에 달한다.

명예시민이 되기 위한 조건은 꽤 까다롭다. 우선 외빈을 제외하고 3년을 연속해서 서울에 거주하거나, 총 거주기간이 5년 이상이 되어야 한다. 또한, 10인 이상의 시민 추천을 받거나, 공공단체의 장 혹은 10인 이상의 회원이 있는 사회단체장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그리고 서울시 명예시민증수여심사위원회의 심사와 시의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해서 매년 탄생하는 명예시민은 한 해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서울 명예시민 중 네팔 이주노종자의 한국 생활을 지원한 공로로 지난 2009년 601번째로 선정된 케이피 시토울라 네팔 관광청 한국 사무소장을 서울 광화문 사무소에서 만나봤다. ◇현재 서울에서 하는 일은.

△먼저 네팔 관광청 한국사무소를 자비로 운영하고 있다. 아직 네팔이 가난해서 국가 차원에서 외국 관광청을 운영할 수가 없어 내가 나섰다. 그리고 삼청동과 광화문에서 네팔·인도 레스토랑을 경영한다. 네팔 교민 사회에서는 쉼터를 운영하고, 네팔 소식지발행, 노동자 인권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서울에 네팔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네팔문화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서울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서울에 온 지는 22년이 됐다. 네팔에서 대학을 다니고 친구들과 홍콩 대만 한국으로 배낭여행을 했다. 88올림픽을 통해 서울의 발전상을 듣고 있던 터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특히 단시간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특히 동대문 일대의 의류산업을 배워 네팔에 적용하고 싶었다. 92년 한국에는 네팔 대사관이 없었다. 거주 네팔인도 서너 명 남짓이었다. 93년 산업연수생 제도를 이용해 일하러 오는 네팔인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불거졌고, '찬드라사건(경찰이 한국어가 서툰 네팔인 '찬드라'를 행려병자로 보고,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가둔 사건)등 노동자 인권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외국인 노동자 인권문제 활동이 두드러진다.

△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인은 2만 7,000명으로 늘었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방식이 산업연수생제도에서 고용허가제로 바뀐 이후 외국인 노동자 인권문제는 많이 나아졌다. 그래도 문제는 늘 발생한다. 최근에는 다문화가정 문제가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인과 결혼을 통해 이주한 네팔인이 약 3,000명 정도 된다. 나이 차이, 문화차이로 한국으로 시집온 네팔신부가 어려움을 겪는다. 최근 남편에게 맞아 몸의 반쪽이 마비된 네팔인 신부를 구출해 '네팔인쉼터'에서 보호하고 있다.

◇시민으로서 서울은 어떤가?

△서울을 보면 항상 감격스럽다. 한국이 가난했던 과거를 딛고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에 놀랐다. 그리고 서울시민은 정의롭고 단합이 잘된다고 생각한다. 서울에 오고 나서 국제통화기금(IMF) 당시의 금모으기운동, 2002년 월드컵 응원, 촛불집회 등을 보며 서울에 사는 것이 참 보람됐다.

◇서울이 바꿔야 할 점이 있다면

△나는 서울시 명예시민이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네팔은 나를 길러줬고, 성인이 되어 22년을 산 서울은 또 다른 고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쉽다. 나 같이 장기거주 외국인이 '진짜 시민'이 되는 제도가 부족하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영주권 얻기가 힘들다. 국적을 포기하고 귀화하는 게 영주권을 따기보다 더 쉽다. 명예시민으로 뽑힌 나조차도 수차례 영주권 준비하다 중도 포기할 정도 제약이 많다. 네팔에 있는 아버지도 서울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내가 계속 모시지 못해 관광비자가 만료되는 90일이 지나면 네팔로 돌아가야 한다. 이런 점은 개선됐으면 한다. 자녀 학교 문제도 크다. 현재 서울거주 외국인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려면 고가의 외국인 학교와 일반 한국학교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외국인 학교는 비싸 보낼 수가 없고, 한국 학교 교육은 본국으로 돌아갈 일이 생기면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많은 네팔 부모들이 그래서 자녀를 네팔에 두고 온다. 외국인을 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외국인 학교가 생기면, 자녀와 이별할 일도 적어 서울에 사는 외국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 서울시민으로서 앞으로 계획은

△부처님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고 있나? 다들 인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부처는 네팔 룸비니에서 태어났다. 인도와 비교하면 腔좋痴?않았지만, 한국에는 네팔인이 인도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산다. 네팔인은 한국 음식도 잘 먹는 편이고, 일도 성실하게 잘하는 편이다. 나는 한국과 네팔의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인을 돕고, 한국인에게 네팔에 대해 알리고 싶다. 네팔이 아직 경제적으로 낙후되어있는데, 처음 한국에서 오면서 다짐했던 것처럼 한국을 배워 네팔의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다.

이유석기자 e131212@sed.co.kr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