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치명적 독성물질 든 '아기 물티슈' 팔리고 있다"

조현주 기자 입력 2014. 8. 30. 09:59 수정 2014. 8. 3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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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인 2011년 임산부와 영유아들이 원인모르게 잇따라 사망한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같은 해 8월31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원인 미상의 산모 폐 손상과 사망 사건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른바 '가습기 살균제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2014년 8월 현재까지 정부에 접수된 피해 의심사례는 모두 453건. 이 가운데 사망자는 144명이나 된다.

이후 불똥은 '아기 물티슈'로 튀었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 성분이 아기 물티슈 방부제로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지난해 7월1일부터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에 의해 물티슈 전 성분 표시제가 도입됐지만 물티슈는 공산품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는 유해 화학물질은 단 1개에 불과하다. 또 아무리 유해 화학물질이라 하더라도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면 성분을 표시할 의무가 없다. 독성 화학물질은 극미량이라도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이 국가기술표준원에 의뢰해 시판 중인 물티슈 제품 32개를 조사한 결과, 23개 제품에서 가습기 살균제 파문의 원인으로 지목된 화학물질 4종(PGH, PHMG, CMIT, MIT)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히면서 물티슈 업계에 파장을 몰고 왔다.

"가습기 살균제보다 더 독한 물질 들어갔다"

"CMIT(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린)와 MIT(메칠이소치아졸리논)는 원래 대다수 물티슈 제조업체들이 방부제로 써오던 성분이다. 지난해 7월1일부터 전 성분 표시제가 도입되면서 업체들의 고민이 컸다. 특히 '아기 물티슈' 소비자 사이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에 대한 반감이 워낙 커 업체들은 대체할 다른 방부제를찾기 시작했다. 문제는 대체 성분의 유독성이 CMIT나 MIT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은 최근 물티슈 업체들이 인체에 유해한 '수상한 성분'을 제품에 사용하고 있다는 제보를 접하고 취재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대다수 물티슈 업체가 신생아와 임산부에게 유해한 화학성분으로 알려진 4급 암모늄 브롬 화합물인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Cetrimonium Bromide)'를 지난해 8월부터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향후 큰 파장이 예상된다. 취재 결과 4대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 등을 통해 현재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가 들어간 40여 종의 아기 물티슈 제품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방부제 제조·유통업체의 핵심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전 성분 표기제가 도입되면서 업체들이 부랴부랴 방부제 개발에 나섰지만 물티슈에서 곰팡이가 나오는 등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며 "문제가 된 MIT 등의 성분을 피한 다른 방부제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다. '무색무취'에 강력한 방부 효과를 지녔지만 독성이 강한 물질로 알려져 있어 해외에서도 세정제·샴푸 등 제품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는 식약처의 '독성 정보 제공 시스템'에도 등록될 정도로 유해성이 충분히 입증된 성분"이라며 "큰 논란이 벌어졌던 MIT나 CMIT는 아직까지도 유해성이 입증된 독성 정보가 많지 않아 등록이 안 돼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물티슈 업체들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홍역을 피하려다 오히려 더 '독한 물질'을 찾아내 이를 제품에 사용한 셈이다.

실제 식약처가 제공하는 독성 정보 안내 서비스인 '독성 정보 제공 시스템'에서도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와 관련된 독성 자료가 다양하게 검색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세트리모늄 브롬화물로 검색)'는 '심각한 중추신경계 억제를 유발하여 흥분과 발작을 초래할 수 있으며 호흡근육 마비로 사망할 수 있다. 강력한 피부 자극원으로 섭취시 유해하다'고 돼 있다. 또 국내에서는 인후통·구내염·치은염 등의 통증 완화용 의약품과 수입산 세정제 등의 상품에 쓰이고 있다고 적시돼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신 중 영향과 관련해 '임신한 쥐의 사망 착상수를 증가시켰다'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심혈관계 독성과 관련해서는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 100mg의 경구 섭취로 심장 정지가 발생했다'는 내용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공하는 독성 정보 제공 시스템에 물티슈의 방부제 성분으로 쓰이는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의 독성 정보가 기재돼 있다(왼쪽 하단). 나머지는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아기 물티슈 제품 포장에 적힌 성분 표시.

눈·귀·호흡기계 독성 부문에서는 더 다양한 자료가 제시된다. 여기에는 '수유를 받는 건강한 신생아 5명이 클로르헥시딘 0.05%와 세트리마이드 1%의 희석된 방부액을 우연히 섭취한 후 수 분 내에 입술·입·혀에 부식성 조직 손상이 발생했고 영아 5명 중 1명에게서 폐부종이 발생했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

물티슈 업체들이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사용한 시점은 지난해 8월 즈음이다. 9월부터는 '영·유아용'으로 분류된 '아기 물티슈' 제품 대부분에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가 전면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한 방부제 제조업체의 관계자는 "전 성분 표시제가 시행되기 전에 아이 엄마들이 드나드는 유명 온라인 카페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들어간 '아기 물티슈' 리스트가 떠돌면서 업계가 떠들썩했다"며 "위기에 빠진 업체들이 관련 기관에 의뢰해 '자사의 아기 물티슈 제품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시험성적서를 받아 제품 홍보에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슈에 민감한 아기 물티슈 제품에 먼저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물티슈 업계 1, 2위로 불리는 (주)몽드드와 (주)호수의 나라 수오미가 가장 먼저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 선두 주자 격인 두 회사가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먼저 사용하게 되면서 한 물티슈 제조사가 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동시에 생산하는 업계 특성상 다른 업체들도 덩달아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쓰게 됐다는 것이다.

업체측 "이제는 사용 안 한다"

현재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쓰고 있는 대다수 업체는 제품 포장지와 각 쇼핑몰 사이트 등을 통해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에 대해 '핸드크림과 보디로션 등에 쓰이는 안전한 성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몽드드의 한 관계자는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업체들 중에서 빨리 사용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성분은 미국의 환경 연구 비영리 단체인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의 스킨딥 등급(화장품에 들어가는 성분의 유해성을 나타내는 등급으로 0~2등급은 안전, 3~6등급은 보통, 7~10등급은 위험성분으로 분류)에서 3등급으로 분류돼 비교적 안전한 축에 속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가 몽드드의 물티슈에 들어가는 성분 중에서는 EWG 스킨딥 등급이 가장 높기 때문에 8월 중으로 제품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이 성분을 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주)호수의 나라 수오미의 관계자 역시 "지난해부터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써온 것은 맞다. 국내에서 그동안 자주 쓰이진 않았지만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는 해외 브랜드 제품 중 영아부터 노인까지 사용하는 보디로션 등에 쓰이고 있고 EWG의 등급도 좋은 편이라 안전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식자재에 들어갈 수 있는 성분으로만 제품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제품이 업그레이드됐다. 그래서 8월부터 생산된 제품에는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전혀 넣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대다수 아기 물티슈 업체들은 자사 제품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제품 성분 테스트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물티슈 업체들은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를 안전한 성분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문제가 될 것 같으니까 일시에 이 성분을 빼고 업그레이드된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물티슈 업계 1, 2위 업체를 시작으로 '세트리모늄 브로마이드'가 물티슈 방부제로 널리 쓰이다가 일시에 사용이 중단되기까지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동안 이 과정을 지켜봐왔던 방부제 제조·유통업체의 한 핵심 관계자는 "업체들이 조만간 문제가 될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제품 성분에서 뺀 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뺀 것인지 포장지 성분 표기에서만 뺀 것인지 소비자 입장에서는 알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판매되는 물티슈는 인체 청결용 공산품과 구강 청결용 의약외품으로 나뉘어 취급됐다. 이 때문에 공산품으로 분류된 '아기 물티슈'의 안전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물티슈를 화장품으로 관리하고 있고 일본은 1964년 약사법을 개정하면서 '아기 물티슈'를 따로 약사법에 의해 관리를 받는 품목으로 정했다. 일본에선 '아기 물티슈' 제품에 전 성분 표시는 물론이고 그 함유량까지 모두 표시해야 한다.

"애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용납 못해"

식약처는 8월19일 현재 공산품으로 관리되는 물티슈를 화장품으로 분류하는 내용을 담은 '화장품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오는 9월28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물티슈가 화장품으로 분류되면 화장품 사용 원료 기준을 준수해야 하고 부작용 보고가 의무화된다. 현재 공산품은 유해 화학물질 1개 성분만 사용이 금지돼 있지만 화장품의 경우에는 사용할 수 없는 성분이 1013종에 달하며 보존제, 자외선 차단 성분, 색소 등 260종은 사용량 제한이 필요한 성분으로 지정돼 있다.

물티슈 제조·유통업체 관계자는 "원래 지난해 1월 물티슈 전 성분 표시제가 시행되기로 했는데 업체들의 반발이 상당했다. 시행 시기를 7월까지 늦추고 그 사이 부랴부랴 제품을 갈아엎은 것"이라며 "화장품법이 개정된다고 하자마자 '은근슬쩍' 제품 성분을 바꾸는 곳들이 눈에 띄고 있다. 몇 달 사이에 연구·개발을 마치고 특정 성분만 뺀 제품 출시가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유해 화학물질은 극미량으로도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해성 여부를 입증하는 것 또한 매우 어렵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방부제 업체 관계자는 "양심고백을 한 이유는 나 역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물에 적신 휴지에 독성물질을 넣은 것인데, 내 아이가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조현주 기자 / cho@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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