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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발] 원세훈 판결 뒤 '보이지 않는 손' / 김의겸

입력 2014. 09. 16. 18:50 수정 2014. 09. 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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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원세훈 판결'이 나온 뒤 고위 법관을 지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그는 대뜸 <한겨레> 13일치 1면 사진을 거론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지금 법원이 청와대를 봐줬다고 해서 난리가 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두 분이 밀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니요. 청와대는 이런 사진도 안 걸러내고 뭐 하는 겁니까. 경악할 일입니다. 사법부가 총체적으로 무너졌어요."

물론 사진은 판결과 무관하다. 1면 편집자에게 물어보니 그저 관련 사진이라서 배치했단다. 그래도 이 변호사는 판결에 권력의 입김이 미친 것으로 비칠까 봐 우려하던 차에 사진을 보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것이다. 과연 그는 괜한 걱정을 한 것일까. 판결문에 대한 김동진 판사의 비판은 노골적이다. 승진을 위한 사심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하지만 누구나 사심은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마음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판사들이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 말이다.

판결을 내린 이범균 판사는 양승태 대법관의 전속 재판연구관을 지냈다. 재판연구관은 공동조와 전속조로 나뉘는데, 자기들끼리는 공동조를 '외거노비', 전속조를 '솔거노비'라고 자학한다. 공동조는 사무실이라도 따로 쓰는 데 반해 전속조는 대법관과 한 공간에서 밥도 같이 먹고 늘 머리를 맞댄 채 사건을 논의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법관은 "전속 연구관은 비록 몸은 분리돼 있지만 대법관과 영혼을 공유하는 분신"이라고 표현했다. 이 판사는 아마도 그렇게 2년을 지내며 대법원장의 자장권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 인연을 쌓았을 것이다. 대법원장의 낯빛만 봐도 그 뜻을 알아채는 단계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범균 판사는 2013년 2월 선거전담 재판부인 형사합의21부를 맡았다. 막 정권이 바뀌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이 들어오는 중요한 자리다. 몇몇 판사에게 물어보니 인사권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사무분장권이 있는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전적으로 결정한다"는 말도 있고, "중앙지법의 형사부장은 과거에 검찰이 비토권을 행사했을 정도로 정치적인 이목이 쏠리는 자리다. 지법원장이 윗선과도 교감을 나눌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튀는 판사'가 앉을 가능성은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어느 조직에서나 인사권은 중력의 법칙만큼 막강하다. 궤도를 따라 행성이 태양을 돌듯이, 지시가 없어도 조직원은 인사권자의 의중을 살피게 되는 법이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김기춘 실장이 경남고 선후배 사이란 점은 상상력을 부채질한다. 대학과 법조로도 인연이 이어지니 관계는 더 두터워진다. 게다가 최근에 서울중앙지법원장 둘이 잇따라 국민권익위원장과 감사원장으로 '영전'한 것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대법관 기회를 줄 수 없는 두 사람에게 좋은 곳을 마련해주고 싶은 게 대법원장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 후배의 고충을 선배가 해결해 줬으니 훈훈한 미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빚을 졌으니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문제가 되는 게 사법부다. 김기춘 실장은 자신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검사를 검찰총장에 앉혔고, 얼마 전에는 데리고 있던 비서관을 경찰청장으로 발탁했다. 사법부마저 그의 휘하에 들어간 거라면 우리나라는 정말 '기춘대원군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고 마는 게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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