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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의 노동여지도]세월호를 빼닮은 노동재난구역 안산

입력 2014. 09. 17. 10:51 수정 2014. 09. 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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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 비정규직노동자 지원센터가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노동자 623명 중 파견업체 소속이 37.9%, 용역업체 소속이 36.9%였다. 응답자 중 75%가 간접고용 노동자다.

도심과 아파트 단지를 돌고 들판을 가로지른 버스가 바닷물을 막아 만든 시화공단에 이른다. 1995년 안산시 신길동과 시흥시 정왕동 일대에 조성된 공업단지다. 추석 연휴가 끝난 첫 출근길,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다.

"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는 파견, 하청노동자예요. 사람을 채용할 때 파견업체로부터 공급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1만개가 넘는 업체의 평균 인원이 11명이니까 정규직이라고 해도 비정규직과 별 차이가 없죠." 2001년부터 이곳에서 활동해온 시화노동정책연구소 공계진 이사장이 공단을 안내한다.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은 파견이 금지되어 있지만 임시·간헐적 업무는 3개월을 사용하고, 한 번 연장할 수 있다. 불법파견, 무허가 파견이 허다하다. 상시 업무에 하청업체를 돌려가며 파견하기, 6개월 뒤 쉬었다 다시 파견하기 등 법의 허점을 이용한 '변종 사람장사'가 기승을 부린다.

안산시 인력회사들 | 박점규

대한민국 파견노동 1번지, 인간경매 단지로 불리는 공단 입구. '생산직 인력파견 자동차부품 전자 ??인력' 간판들이 지천에 깔렸다. 고용노동부가 시화공고 앞에 걸어놓은 '구인구직 알선 및 지원사업' 현수막을 비웃는다.

출근시간 파견업체 차량이 '나래비'를 서는 시화공고에서 정왕우체국까지 걸으며 숫자를 헤아린다. 50m 거리에 집을 사고파는 부동산이 6개, 사람을 사고파는 인력회사가 19개다. 좋은사람들, 나이스, 신화, 월드…. '사람장사'하는 회사 이름이다. 하기야 '묻지마 살인'의 원인이었던 일본의 최대 인력 파견업체 이름도 '굳윌'(Good Will)이었다.

건너편 원룸단지로 향한다. 3층짜리 주택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한 층에 5개씩 15개의 쪽방이 들어 있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30만원. 가난한 파견노동자, 이주노동자의 거처다. 원룸에 적당한 값싼 가구와 가전제품 재활용업체도 즐비하다. 원룸단지 쪽방에서 살아가는 1개월, 3개월짜리 파견노동자들 때문에 인력회사, 부동산, 재활용업체가 호황을 누리는 괴기한 풍경이다.

인력회사·부동산이 호황, 괴이한 풍경

한국산업단지공단의 '2013년 12월 국가산업단지 동향'에 따르면 반월공단은 7060개 업체 17만7624명이, 시화공단은 1만157개 업체 11만2558명이 일하고 있다. 안산시 비정규직노동자 지원센터가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노동자 623명 중 파견업체 소속이 37.9%, 용역업체 소속이 36.9%였다. 응답자 중 75%가 간접고용 노동자다.

공단 대로를 달린다. 작은 공장들이 이어진다. 대길통상, 금창공업 등 노조 결성을 시도했던 사업장을 지나친다. 노동운동의 불모지에서 주요 사업장에 노조를 만들고 주변으로 확산시키려는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1만개가 넘는 회사 중에 민주노총 소속은 인지컨트롤스와 파카한일유압 단 둘이다. 그마저도 복수노조를 통한 탄압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공 이사장은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를 지역 차원에서 묶어내 노조로 들여보내는 일종의 '합작' 운동이 필요하다"며 "민주노총이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사업을 하다보니까 30만명이 넘는 반월, 시화공단을 조직하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점심시간, 파카한일유압 권오진 노조분회장이 공장 밖으로 나온다. 현대중공업, 두산인프라코아에 굴착기용 유압밸브를 납품하는 회사다. 잘 나가던 한일유압을 인수한 파카는 매출이 급감했다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했다. 치열하게 싸웠지만 200명이 넘었던 노동자가 62명으로 줄었고, 복수노조가 만들어지면서 금속노조 조합원은 5명 남았다. 권 분회장은 노조를 깨기 위해 경기도가 갖은 혜택을 준 화성 장안공단에 파카코리아를 만들어 물량을 빼돌리고, 아예 공장을 없애려고 한다고 말한다. 최근에도 기업노조 조합원 10여명이 협박에 못 이겨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공단 어디에도 좋은 일자리는 없다. 파카에서 노조를 만들고 싸워서 오른 임금은 공단에서 상위권에 속한다. "외국인 투자기업과 싸우는 것이 힘겹지만 민주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면 더 큰 손해를 입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며 19살부터 시화공단에서 살아온 그가 입을 앙다문 채 공장으로 돌아간다.

시화공단을 떠난 버스가 10분 만에 도착한 안산역 주차장 끝에 컨테이너 사무실 세 동이 있다. 건설노조 사무실이자 건설노동자들의 쉼터다. 출근투쟁과 산업안전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푸름미래 해고노동자들이 담소를 나눈다. 간척지 매립과 공단 조성, 낙후한 공단 리모델링, 도시재생까지 건설노동자의 일자리가 많은 안산과 시흥의 건설노조 토목건축 조합원은 300여명이다. 이주노동자들도 노조에 받아들여 100여명 정도 있다. 건설노조가 회사와 협상을 해서 조합원의 일당을 높이고, 노동시간은 줄였다. 현장에 들어갈 조합원 수도 교섭으로 따낸다. 건설일용 노동자 무료 취업알선과 건설기능학교도 열고 있다. 김호중 사무국장은 "처음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감이 컸지만 노조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며 함께 싸워야 한다고 해서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안산시 촛불집회 | 박점규

공단 어디에도 없는 좋은 일자리

그는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건물을 지으러 갔던 단원구 원시동의 영풍전자 생산라인이 소사장제 방식으로 전부 비정규직이라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영풍그룹 계열사들도 비슷하다. 김 국장은 "우리는 일용직인 건설현장을 안정된 일자리,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현장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우리 사회가 모든 노동자를 건설노동자처럼 만들려고 하고 있다"며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공장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산역 2층에서 건너편 건물을 내려다본다. 건물마다 인력회사가 빠짐없이 들어서 있다. 출퇴근시간이면 이곳도 버스와 봉고들이 공단의 원청회사로 파견노동자를 실어 나르는 광경이 펼쳐진다.

반월공단에서 7년 동안 파견노동자로 일했던 한 청년을 만났다. 벼룩시장을 보고 전화를 했더니 파견업체였다. 바로 다음날 출근하라고 했다. 6개월만 참으면 정규직이 된다고 했다. 주방용 가전제품을 만드는 파세코, 코알라 빵을 만드는 서울식품, 프린터를 만드는 롯데캐논을 떠돌아다녔다. 파견노동자의 3대 공통점은 장시간 노동, 월급 120만원, 고용불안이었다. 젊은 청춘들이 왔다가 견디지 못하고 떠나가면 그 자리는 또 다른 파견노동자가 채웠다. 민방위훈련처럼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에 대비해 불법파견을 숨기는 모의훈련을 하는 곳도 있단다.

파견회사가 얼마를 떼어가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하루 일당 7만8000원 중 파견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5만원. 인력회사에서 36%를 가져간다. 하루에 100명을 보내면 280만원, 한 달에 최소한 7000만원을 벌어들인다는 계산이다. 실장 둘, 경리직원 한 명을 고용한 파견회사가 끝없이 늘어나는 이유다. 2013년 안산시에 등록된 파견업체만 320여개, 무허가를 합하면 500여개에 달한다. "10%도 아니고 40% 가까이를 떼어간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러니까 안산역에서 친구를 기다리면 술집 삐끼처럼 인력회사 직원이 나와서 일하러 안 가냐고 묻는다니까요."

안산의 끔찍한 파견 현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파견업체들이 모여 도급으로 전환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단다. 대기업들은 전국적 파견업체를 통해 생산라인은 도급, 비생산라인은 파견으로 정비한다. 파견회사 전성시대, 사람장사 합법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안산은 특별노동재난구역이다.

파견회사 전성시대, 사람장사 합법시대

경기금속지역지회 정현철 수석부지회장은 "고용노동부가 지금까지 방치해놓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변명한다"며 "불법파견 자료를 수집해 노동부에 진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응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신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불법파견 민·관 공동감시단 구성과 안산 지역에 대한 특별근로감독도 요구할 계획이다.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민주노총 안산시지부 김영호 지부장이 스타렉스 차량에 물건을 싣느라 분주하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될 단원구 고잔동 촛불집회 물품이 차량 한 가득이다. 그는 자동차부품업체 에스제이엠 지회장이다. 이명박 정권이 쌍용차 살인진압에서 자신감을 얻은 후 2010년부터 민주노총의 핵심사업장을 깨기 위한 '노조 초토화 전쟁'이 진행됐다. 자본과 창조컨설팅이 기획하고, 경찰이 비호한 전쟁이었다. 직장폐쇄→용역깡패 투입→지도부 구속→복수노조 설립→민주노조 무력화로 이어지는 전투는 2010년 2월 경주 발레오만도를 시작으로 대구, 구미, 충청을 거치며 북상했다. 민주노조는 변변한 전투조차 치르지 못하고 패배했고, 2012년 7월 안산의 중심 에스제이엠까지 쳐들어왔다. 마지막 보루, 김영호가 이끄는 안산전투에서 조합원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 민주노조를 지켜냈고, '노조 초토화 전쟁'을 멈추게 했다. 노조는 지난 8월 18일 불법 직장폐쇄에 따른 임금청구소송마저 승소했고, 추석 직전 회사가 상고를 포기해 21억원을 받게 됐다. 조합원 투표에서 통과되면 이 금액의 50%를 지역 노동기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에스제이엠은 생산라인 354명 모두 정규직이다. 누군가 세월호 현수막을 떼어갔다는 소식에 지회 조합원들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었고, 이날 간부들이 온종일 시내를 다니며 현수막을 걸었다.

"세월호 가족들이 처음에는 거리를 두셨는데 지금은 민주노총이 제일 믿을 만하다며 의지를 많이 해요. 노동자들도 열심히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어요." 김영호 지부장은 지금 세월호 전투를 이끌고 있다. 봉고차가 단원고등학교를 지나 고잔동 주택가 놀이터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세월호 생존자 대책위 장동원 대표가 반갑게 맞는다. 그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신흥에서 일한다.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 대부분이 반월과 시화공단의 노동자이거나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서민들이다.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세 명이 자식을 잃었는데 모두 하청노동자다. "살아온 아이들도 안전하지 못해요. 자판기에 깔린 친구를 두고 온 아이, 친구의 손을 놓친 아이, 누군가 발목을 잡았는데 뿌리치고 온 아이들이 지금도 울고 있어요." 그의 눈이 젖어든다.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해경이 촬영한 미공개 동영상이 상영된다. 장 대표가 일본 방송국에서 구해왔다. 누군가 안에 사람들이 있다고 계속 소리치는데 해경은 구하러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나온 사람들만 건진다. 어선이 배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배가 가라앉는다. 또다시 울음과 탄식과 분노가 터져나온다.

하청과 파견이라는 암세포가 도려낼 수 없을 정도까지 퍼진 공단은 규제완화라는 암세포가 번져 침몰한 세월호를 빼닮았다. 노동자와 시민이 촛불을 든다. 안전한 대한민국, 안정된 일터를 만드는 촛불이 안산의 어둠을 밝힌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cco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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