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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캐디 때리곤, 100만원 던지고 가"

입력 2014. 09. 19. 21:31 수정 2014. 09. 2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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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민진 기자]

지난 2012년 2월 13일, 국회 본청을 떠나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

ⓒ 남소연

뉴스에서 "박희태 의장 캐디 성추행 파문"이라는 기사를 봤다. "손녀 같고 딸 같아서 등 몇 번 토닥였다"는 박씨의 해명에 밥을 먹다가 속이 부글거렸다.

기막히게도 나를 성추행했던 그 아저씨도 똑같이 말했다. 경상북도 영천에서 골프장 경기보조원(아래 캐디)로 일할 때였다. 고객 4명의 평균 나이가 60대였다.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아저씨들, 캐디 생활 3년차면 티샷 전에 고객 관상부터 나온다. 녹록지 않은 팀이었다.

"2명은 진행 진상, 1명은 말 진상, 1명은 음... 아직까지는 잘해주네."

고객 4명이 모이면 3홀 만에 인간관계가 보인다. 누가 상사인지, 비즈니스 접대를 받는 사람인지, 부인인지, 세컨드인지... 그 날은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이 제일 상사였다. 다들 나에게 "나는 신경 쓰지 마라", "저분만 잘 모셔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양반, 아까부터 내 옆에 딱 붙어 있다. 한 손으로는 내 손과 깍지까지 낀 채로...

싫다고 내색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손님

기분이 나빴지만 참았다. 라운딩 초반이라 얼굴 붉히면 라운딩 내내 고생이고 지금 캐디를 교체하게 되면 나는 일당을 날린다. 작은 목소리로 "채 바꿔드려야 돼요"라며 자리를 피했다. 그때 버럭 화라도 냈어야 했는데 아직도 아쉽다. 그 고객은 홀마다 내 손을 꽉 잡은 채 다른 고객의 샷을 지켜봤다. 그늘집을 지나자 허리까지 손이 왔다. 카트에 타서는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운전대를 잡은 손을 주물럭거렸다.

성추행을 여러 번 당해 봤지만 이건 좀 지나치다 싶었다. 마침 지나가던 당번이 남자 캐디였다. 당번에게 무전을 쳐서 몇 홀만 같이 가달라고 했다.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고객들은 불편하다는 이유로 당번을 돌려보냈다. 세 명은 내가 성희롱 당하는걸 알고도 모른 척했다. 상사 비위를 맞추려고 말이다.

쉬는 시간에 사무실에 상황을 보고했다. 평소에도 싫은 소리를 못 내는 나를 안타까워 했던 마스터는 "민진이 너가 싫다고 말을 해야 고객들이 안 그러지"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라운딩에 나가면 성인 고객 4명을 상대로 싫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은연중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21살 겨울에 시작한 캐디 생활은 살면서 해본 어느 일보다 힘들었다.

라운딩 후반에 들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당번이 멀리서 지켜보다가 마스터에게 무전을 했다. 마스터는 고객에게 정중히 다가와 "오해를 부르는 행동을 삼가 달라"고 요청했다. 마스터가 가고 나자 고객들은 정색을 하며 날 몰아세웠다. "싫으면 싫다고 말로 할 것이지, 왜 사람 민망하게 무전을 하느냐"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적반하장이라 어이가 없었지만 배운 대로 무표정으로 응대했다. 마스터는 어리고 많이 웃는 사람을 고객이 만만하게 본다고 일렀다. 후반은 별 탈 없이 지나갔지만 불편함이 계속 감돌았다. 고객들은 나를 무시했고 내 안내를 따르지 않았다. '역시 괜히 말했나? 그냥 참을 걸'같은 생각이 들었다.

라운딩을 마치고 들어가자 프론트에서 전화가 왔다. 최근 성추행 문제가 많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해당 고객에게 사과를 받으려고 하니 오라는 전화였다. 나는 불편했고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많은 고객이 보는 앞에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골퍼와 캐디

ⓒ 위키백과

사과 아닌 사과, 엎드려 절 받기

아빠보다 나이가 많았던 아저씨는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아가씨, 내가 뭐 불편하게 한 거 있어? 사람 민망하게 왜 이래. 내가 뭘 어쨌는데"라고 쏘아댔다. 사과가 필요 없어 거절했던 것이 아니라 '저 놈' 면상을 한 번 더 보기 싫어서 안 오려던 것이었는데 막상 오니 역시나 모르쇠로 밀어붙인다.

"고객님이 제 손 깍지 끼고 허리 껴안고 하셨잖아요."

나는 울컥하며 말했다. 사과를 받는 건 나인데 창피해서 눈물이 났다. 아저씨 고객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내가 예쁘지도 않은 너를 왜 만지냐"라는 식으로 말했다. 직원이 나서 "공개사과를 하지 않으면 라운딩 이용권 박탈되고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손님은 그제야 서둘러 사과를 하고 황급히 떠났다. 찝찝한 사과였다. 자기는 끝까지 성추행을 한 적이 없고 "손녀 같고 예뻐서 만진 거"란다.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내 허리 안 만진다.

21살 겨울에 뭔지도 모르고 시작한 캐디였다. 눈 쌓인 골프장이 좋아서, 같이 일하는 언니들이 좋아서, 가끔 만나는 착한 고객들이 좋아서 4년을 일했다. 대학교 휴학하고 2년, 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에만 2년을 일했다. 성추행은 여러 번 겪었지만 사과는 단 한 번밖에 받지 못했다.

일본인 손님이 유니폼 지퍼를 내리기도 했고, 엉덩이를 만지기도 했다. 일본어를 조금이지만 할 수 있었던 탓에 일본 손님 전담 캐디를 했었다. 제대로 항변도 못 하고 라운딩 마친 후에 언니들한테 털어놓았던 기억도 있다.

캐디만의 진상 고객 퇴치법?

경력이 많은 언니들은 저마다의 진상퇴치법이 있다. 말을 안 듣는 손님은 구슬리고, 실력이 없는 손님은 특별히 붙어서 코치해 주고, 느린 팀을 만나면 더 많이 뛰고,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단호한 모습을 보인다. 나는 나이가 어렸고 싫은 소리를 할 만큼 용기도 없었다.

한 번은 내기에 져서 큰돈을 잃은 고객이 화풀이로 캐디를 때린 적이 있었다. 그 캐디는 정신을 잃을 만큼 맞아 응급실로 실려 갔고, 고객은 카운터에 100만 원을 던지고 가버렸다. 그나마 멀리서 무전을 한 덕에 직원이 달려와 말렸다. 덕분에 이 정도에서 사건이 종료됐다.

맞은 캐디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회사는 그 캐디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이 고객을 상대로 고소하려는 것을 회사가 막았다. 그 일 이후로 많은 캐디가 회사를 떠났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무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고 죽어갔겠지."

그 골프장은 회원제였다. 캐디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그 팀은 이후로도 뻔뻔하게 골프장을 찾았다. 때린 사람은 사장이었고, 나머지 3명은 부하 직원이었다. 사건 당시 나머지 사람들은 사장을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캐디들은 항상 공포감을 가지고 일한다. 고객이 휘두른 채에 맞아 뇌진탕으로 죽기도 하고 옆 홀에서 날아온 공에 맞아 뼈가 부러지기도 한다. 나도 머리와 팔에 공을 맞은 적이 있다. 한동안 머리가 울렸지만 CT를 찍을 돈이 없었다.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작정하고 덤벼드는 고객에서 두들겨 맞기도 하고, 성추행 혹은 그 이상의 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골프장은 넓고 한 팀당 간격이 길다. 저녁타임이나 팀 수가 적은 날은 9홀을 통틀어 한 두 팀만 있기도 하다.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사고 후에도 회사는 캐디의 편이 아니다. 회원제는 상황이 더 나쁘다. 서울,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골프장은 연간 회원권이 싸면 1억~2억, 비싸면 몇십 억을 호가한다. 회원권 유지를 위해 회사는 회원이 잘못해도 캐디 잘못으로 돌린다. 회원이 왕이다.

골프장에 불었던 작은 파란... 과장 1명 VS 캐디 100명

2008년에 내가 다녔던 골프장에서는 작은 파란이 일었다. 이 골프장은 캐디에 대한 복지가 나쁘지 않았지만 대우가 좋은 편도 아니었다. 경기팀을 관리하는 과장이 횡포를 부렸던 것이다.

어느 날, 과장은 파3홀 그린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나에게 무전으로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황당했지만 채를 내려놓고 커피를 갖다 줬다. 업무 외적으로 시비도 많이 걸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어리고 말을 잘 들어 특별히 더 괴롭혔다고 한다. 나뿐 아니라 몇몇 어린 캐디들도 괴롭힘을 당했다. 이전에도 과장 때문에 일은 그만 둔 캐디가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고객이 불만을 이야기하며 전후사정 안 보고 무조건 캐디의 탓으로 돌렸다. 캐디들은 과장이 캐디 출신이 아니라 골퍼 출신이라 실정을 모른다고 욕했다. 불만이 쌓이자 캐디장이 회사에 "과장을 바꿔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고 민원을 넣었다. 회사에서는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며칠 후 과장은 "잘못이 없다"며 "못 나가겠다"고 버텼고 우리는 과장 사퇴를 외치며 하루 파업을 벌였다.

과장 1명과 캐디 100명의 싸움이었다. 골프장 회장은 캐디 모두를 잘랐고 다음날 칼같이 예치금을 돌려줬다. 언니들은 서러워서 엉엉 울었다. 회사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힘든 일과 궂은 일을 도맡아 했던 1·2기 캐디마저 해고했다. 회사는 '노 캐디제'로 운영됐다. 결국 노 캐디로 운영되던 골프장은 고객이 줄었고 결국 과장도 해고되었다.

그 뒤로도 캐디가 구해지지 않아 회사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당사자인 캐디들은 잃은 게 많았지만, 이 골프장의 캐디 처우에 대한 이야기가 소문으로 돌면서 다른 골프장의 캐디 복지와 대우가 나아지게 됐다.

캐디

ⓒ 플리커

캐디들이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필요한 것들

캐디들은 골프 이론 공부, 체력, 서비스 정신, 동료와의 관계를 다 챙겨야 한다. 라운딩 한 번에 소모되는 에너지도 엄청나다. 한 끼에 밥을 두 그릇씩 먹어도 살이 8kg나 빠졌다. 캐디 한 명이 고객 4명을 전담하지만 항상 4명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여야 한다. 공에 맞을 수도 있으니 공보다 앞으로 가지는 못한다. 모든 캐디가 공과 함께 움직인다.

계속 뛰고 공의 위치를 확인하고 고객에게 맞는 채로 바꿔준다. 그린에 올라가 공을 닦고 라인을 잡고 깃대를 뽑는다. 뒷 팀과 앞 팀의 간격을 유지하고 홀 상황을 무전으로 체크하며, 쉬는 시간을 확인해서 식사를 시켜 둔다. 쉬는 틈을 타 식사를 하고 필드로 나간다.

나는 사람이다. 하지만 캐디는 사람이 아니다. 아파도 조퇴 한 번 쉽게 못하고 고객에게 맞아도 사과 한 마디 못 듣는다. 나는 국민이지만 캐디는 국민이 아니다. 캐디의 하루 일당인 '캐디피'는 현장에서 현금으로 주기도 하고 통장 입금도 있다. 하지만 세금 정산은 없다. 캐디의 이익이 아니라 골프장이 숨을 이익을 위해서다. 그러니 당연히 4대 보험도 없다. 캐디의 권리만 제대로 보장받는다면 세금을 납부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

나는 하루 파업에 동참했다가 '1일 천하'로 잘렸다. 그래도 그 당시 내가 믿고 따랐던 캐디 언니들이 옳다고 본다. 캐디는 사회보험이 아니라 사설보험에 가입한다. 위험직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보험료도 비싸다. 캐디는 뭉쳐야 산다. 노조도 있어야 하고 4대 보험도 보장받아야 한다.

캐디들은 회사가 원하는 서비스 교육뿐만 아니라 성희롱 예방교육, 진상 고객 응대법 등 실무에 필요한 교육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고객과의 다툼이 있어도 함께 진상조사를 하고 사과와 합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성추행을 당해 사과를 받는 자리에서 나처럼 창피하게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알바노조 조합원으로 전직 캐디입니다. www.alba.or.kr 알바노조(02-3144-0936)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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