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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日 3국 서체 65000 글자 개발 분투기

임유경 기자 입력 2014.09.23. 17:21 수정 2014.09.2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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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구글과 어도비시스템즈가 합심해 한중일 공통 오픈소스 폰트를 공개했다. 이로써 세 언어권에 속한 15억 인구, 즉 세계인구의 4분의1 이 사용할 수 있는 첫 오픈소스 서체 모음이 만들어졌다. 한중일 통합 오픈소스 폰트를 위해 총 65,535 글자(글리프)가 각각 7가지 굵기로 제작됐다.

규모는 물론 가치와 의미를 따져봤을 때도 대단한 결과물이다. 그 동안 여러 언어 폰트를 통일성 있게 사용하기 위해 글꼴을 뒤져야 했던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의 반응도 뜨겁다.

폰트 개발 뒤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한글 폰트를 개발한 산돌커뮤니케이션의 두 디자이너를 만나봤다. 프로젝트를 처음 맡았을 때 2~3년 차였던 이들이 겪었을 '한중일 통합 오픈소스 폰트 개발 뒤에 숨은 고생담'을 소개한다.

최근 만난 장수영 강주연 폰트디자이너는 "단지 글로벌 IT기업 두 곳을 포함해 다국적 5개국 기업이 모여 오픈소스 폰트를 만들었다는 것 이상의 도전이 숨어 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 폰트 제작에 어도비는 디자인적 전문성을 제공하고 구글이 전체적인 방향성과 제작에 필요한 모든 자금을 댔다. 여기에 3개국의 폰트 전문 제작 업체인 산돌커뮤니케이션, 이와타(일본), 시노타입테크놀로지(중국)가 각 언어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5개 업체가 저마다의 역할을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3년을 공들여 만든 결과물이다.

▲ 산돌커뮤니케이션 장수영(왼쪽). 강주연 폰트디자이너

5개 업체가 긴 시간 동안 한 개 프로젝트에 협업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까도 싶다. 하지만 이들이 입 모아 지목한 최대 난관은 '엘리먼트'방식이라는 새로운 폰트제작법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3개국 폰트업체는 모두 어도비의 TWB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글자를 제작했다. TWB는 글자의 획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폰트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장수영 디자이너는 엘리먼트 방식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글자 하나하나를 디자이너가 직접 그리는 게 기존 한글 폰트 제작 방식이에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엘리먼트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아마 한국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폰트를 만든 게 처음일 거에요."

'ㄱ(기역)'을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초성, 중성, 종성 조합에 따라 같은 'ㄱ'이라도 크기, 길이, 너비 등이 모두 다르고 굵기도 제 각각이다. 이전에는 모든 글자에 들어가는 'ㄱ'을 하나하나 디자인 했다. 하지만 어도비 TWB에서는 'ㄱ'을 가로획 하나 엘리먼트와 세로획 하나 엘리먼트로 분해한다. 각 엘리먼트는 가장 작거나 큰, 가장 얇거나 굵은, 가장 좁거나 넓은 경우 등 최소·최대값에 해당하는 경우로 사전에 분석해 그려진다. 그리고 이들 엘리먼트를 조합해 기계적으로 중간 값을 뿌려줘 '가'에 적합한 'ㄱ'을 만드는 데 쓰는 식이다.

▲ ㄱ(기역) 하나도 글자에 따라 수 많은 모양이 필요하며 그에 따라 엘리먼트를 제작해야한다

기계적으로 중간 값을 보여주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글자를 만들면서도 직관적으로 글자 모양을 보면서 그리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엘리먼트를 다 만들고 프로그램 위에 글자를 테스트해보면 생각한 것처럼 글자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한 것처럼 글자 모양이 안 나오면 또 다른 모양의 엘리먼트를 추가하는 거죠. 디자이너가 그리는 게 아니라 컴퓨터가 중간 값으로 그리는 거니까 어떻게 나올지 몰라 만들고 테스트하고 다시 만들고 테스트 하는 과정이 반복됐어요."

이번 프로젝트에 3년 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이유도 새로운 폰트제작 과정을 연구하는데 걸린 시간과 테스트를 반복하는데 투자한 시간이 많다. 이번 폰트를 만드는데 총 17개의 엘리먼트를 만들었고 각 엘리먼트 당 적게는 4개에서 많게는 128개의 최소·최대값을 다 만들었다. 또 11,172개 글자를 만들기 위해 이들 엘리멘트를 하나하나 조합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프로젝트에서 디자이너들이 가장 뿌듯함을 느꼈던 순간은 다름아닌 '글자가 나왔을 때'다. 엘리먼트를 처음 만들면서 "이렇게 분해해 놓은 것들을 다시 조합했을 때 한글이 나올까"라는 의문이 디자이너들에게 컸다. 그러다가 처음 문장을 쳤는데 글자가 나온 순간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 어도비 한중일 통합서체 본고딕(Source Han Sans) 예시

엘리먼트 개발 방식만이 난관은 아니었다. 어떤 본문용 서체를 만들 때보다 많은 양의 고어를 만드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고어대사전을 살펴보고 저자들을 찾아 전화하고 물어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디자인을 제대로 모르겠으면 구글 검색으로 고서적에 나온 글자를 일일이 살펴보고 아랫점이 어디에 붙어야 맞는 건지 이런 저런 것들을 공부하면서 만들었다.

이번 프로젝트 들어간 한글 고어는 500자나 된다. 이들이 만든 고어로 조합률을 짜면 100만 자 가량의 고어를 입력할 수 있다. 보통 기본 한글을 제작할 때 아주 기본적인 고어도 함께 만들지만 이렇게 방대한 양을 만드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한중일이 공통된 느낌으로 디자인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어렵지 않았다. 한중일이 오랫동안 붓이라는 도구적 특성을 함께 공유를 해왔기 때문에 글자 미감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이 디자이너들의 설명이다.

기준이 되는 글씨는 일본 유명서체 고츠카(KOZUKA)고딕으로 삼고 한자와 한글 디자인을 맞췄다. 언어학 박사로 동아시아 언어 원리를 꿰뚫고 있는 어도비의 켄 룬드 서체 수석개발자가 3개 언어 폰트 개발 전체를 중간에서 컨트롤했다.

장수영·강주연 디자이너는 폰트가 릴리즈된 이제서야 조금씩 한중일 통합 오픈소스 폰트 개발에 참여한 의미가 크다는 것이 느껴진다고 한다. 개발하는 동안은 "잘 안 되는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 받는 것부터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잘 몰랐다는 게 이들의 솔직한 대답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폰트를 구글은 노토(Noto) 글꼴 패밀리의 일부로써 '노토 산스 CJK(Noto Sans CJK)'란 이름으로 배포했다. 어도비는 본 글꼴 패밀리 (Source Sans family)의 일부로 본고딕(Source Han Sans)이란 이름으로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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