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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도 양극화.. 허리 역할하던 '1만 부 著者(저자)' 사라진다

박돈규 기자 입력 2014. 10. 06. 03:02 수정 2014. 10. 0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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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는 올해 1만 부 넘게 판매된 신간이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를 비롯해 대여섯 종에 그쳤다. 지난해 매출 280억원을 올렸고 1만 부 이상 책을 20종 안팎씩 내던 출판사라 하기엔 민망한 성적표다.

이덕일이 쓴 '정도전과 그의 시대'는 지난 1월 출간돼 2만 부 넘게 팔렸다. 드라마 '정도전' 바람에 올라타지 않았다면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이 책을 낸 신은영 옥당 대표는 "1만 부 고지(高地)에 오르는 길이 훨씬 가파르게 변했다. 과거의 1만 부 책이 요즘은 7000부, 5000부 책은 이제 3000부 규모로 오그라든 느낌"이라고 했다.

'1만 부 저자'가 사라지고 있다. 교보문고가 본지 의뢰로 1년에 1만 부 팔린 신간(수험서·외국어·만화 등 제외)을 집계한 결과 2011년 244종에서 해마다 감소해 올해는 97종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픽〉.

◇'1만 부 저자' 실종 사건

교보문고 시장 점유율은 약 25%. 여기서 신간이 1년에 2500부 판매된다면 '1만 부 도서'로 분류할 수 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영화·방송에 힘입은 '미디어셀러'나 유명 저자, 기존 스테디셀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판에서 1만 부는 '대박'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부수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일반 교양서의 경우 2000~4000부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데 1만 부는 출판사 이익은 물론이고 책의 확장성, 저자가 사회적으로 힘을 갖는 상징"이라고 말했다. 그 책에 공감하는 확산 독자가 생겼다는 뜻이고 베스트셀러로의 가능성도 열리기 때문이다.

1월 1일에 신간 100종을 냈다면 그해 12월 31일 1만 부 판매에 도달한 책은 얼마나 될까. 주명석 21세기북스 이사는 "3년 전에는 15종 안팎이었지만 이젠 10종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유명 저자도 '관리'하느라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이 8000부로 뛰었다.

◇왜 '허리'가 무너지나

독자는 책이 아닌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지식을 단편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고세규 김영사 주간은 "무엇보다 독자를 붙잡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책값 외에 지불해야 할 시간도 중요한데 그것을 다 합친 독서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책의 가치는 스마트폰이나 스마트TV에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발행 부수도 초판 1500~2000부로 줄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1년에 1만 부라면 출판사의 '허리'에 해당하는 책들인데 사회 전체의 양극화 현상처럼 중간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책을 깔고 팔 수 있는 공간이 인터넷 서점과 대형 오프라인 서점 몇 곳으로 줄었다"며 "이들이 베스트셀러 집중, 대형 저자·대형 타이틀 중심으로 책을 판매하니 다양성이 죽고 있다"고 했다.

1년에 1만 부를 팔 수 있는 국내 소설가는 20여명으로 추산된다. 염현숙 문학동네 국장은 "미디어에서 신인 저자를 소개하는 빈도가 급감했고 서점에서도 무명 저자의 책을 홍보할 자리가 사라지면서 1만 부 저자도 줄었다"고 말했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3~4년 전이면 1만 부 팔릴 저자가 최근엔 광고를 해도 6000~7000부 판매에 그친다"고 했다.

◇전망은

밝지 않다. 220개 출판사의 책을 배송하는 문화유통북스가 지난달 발표한 자료로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1만 부 이상 출고 도서는 2010년 상반기 95종에서 2014년 상반기 52종으로 급감했다. 출판사 매출에서 신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있고, 올해 상반기 1000부 미만 출고 도서는 2010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26% 증가했다. 안 팔리는 책은 과거보다 심하게 안 팔린다는 얘기다.

연기력 좋은 배우에게 일감이 몰리듯, 스토리텔링 잘하고 네트워크도 좋은 저자에게 출간 의뢰가 집중되고 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저자에게도 집필 능력 외에 강연·SNS에도 능한 '토털 파워'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며 "책의 힘만으로 1만 부를 팔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출판사들은 신간 10종 중 팔리는 1~2종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주연선 대표는 "새 도서정가제 시행(11월 21일)을 앞두고 밀어내기와 할인이 난무해 신간을 내기도 어렵다"며 "목표 수치를 과거의 70%쯤으로 낮춰 잡고 새로운 저자와 콘텐츠로 도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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