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인터뷰] '미스터쇼' 신현수의 느린 연기

2014. 10. 10. 07: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헤럴드POP=김은주 기자] 신현수는 오묘한 배우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걸친 낯익은 인상. 세련되지 않은 큼직한 이목구비에 뒤로 넘긴 머리카락. 길거리에서 마주했던 느낌을 주는 평범한 얼굴이다. 물론 187cm가 넘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깔끔한 옷차림은 "패션 모델인가"하고 한 번 더 보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외모에 갇혀 있지 않다.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매력적인 중저음 말투가 귀를 세운다. 연극 '상처난 자리들'에서 툭툭 내뱉는 듯한 연기를 본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가슴에 잔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겠지"라고 예측할라 치면 어느새 멀리 도망가 있다. 한시도 놓치 못하게 만든다.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있다.

[지난 8월 공연한 연극 '상처난 자리들'에서 정우 역으로 활약한 배우 신현수]

올해 스물다섯.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인데 사연이 많다. 처음부터 연기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꿈은 의상 디자이너였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기초 선 긋기를 하다가 지겨워졌다. 우연히 찾은 교내 연극부. 거기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조명. 뭔가에 홀린 듯 연기에 빠져들었고 배우를 꿈꾸게 됐다. 지난해 6월 동서울대학교 연기예술과 동기들과 함께 만든 극단 오기에 소속돼 작품을 올린 게 본격적 필모그래피가 됐다. 그러다가 올 공연계 화제작으로 자리매김한 박칼린의 연출작 '미스터쇼'에서 저스틴 역을 따냈다. 여성 관객을 위한 일종의 스트립쇼인 '미스터쇼' 무대에서 과감하게 벗었다.

그가 처음부터 벗으려고 했던 건 아니다. 독립 영화를 두루 거쳤던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뜻하지 않는 사고에 있었다. 스물두 살 때 아크로바틱 수업을 하다가 넘어지면서 허리를 크게 다쳤다. 한 달 동안 꼼짝없이 누워만 지냈다. '그동안 난 왜 열심히 살지 못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눈물겨운 재활 훈련을 마치고 일어난 뒤로 그는 완전히 달라졌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자 그동안 배척해왔던 상업 공연 오디션도 보고 싶어졌다. 우연히 지원하게 된 게 공연이 '미스터쇼'였다. 연출자가 박칼린이라는 말에 무조건 하고 싶었다.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쇼를 하면서 제 안에 자리 잡았던 편견들을 많이 깼어요. 이러한 쇼도 스토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요. 춤 동작 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계산하면서 연기해야 한다는 것도요. 연기를 온몸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습니다."

[쇼 뮤지컬 '미스터쇼' 저스틴 역으로 출연한 배우 신현수]

신현수는 지난 3월 27일부터 '미스터쇼' 무대에 섰다. 몸짓에 의존하는 공연이라 대사는 없다. 하지만 몸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아무리 남자지만 벗는 게 어렵지 않았을까.

"공연 부제목이 '여성이여 본능에 충실하라. 욕망을 일깨워라'입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감춰왔던 성 문화를 대놓고 보여주는 거죠. 지금까지 성 소비 주체는 남성이었잖아요. 이제는 여성도 당당해질 수 있다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그런 주제를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설정이었다고 생각하니 당당히 벗게 되더라고요."

박칼린 감독과의 만남에 대해 행운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170회 정식 공연 내내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고. 개개인의 색깔을 존중해주고 작은 습관도 지나치지 않았다. 일일이 기억해뒀다가 알려줬다. '여러분이 최고예요' '여러분이 행복하지 않으면 이 공연 안 할 것'이라고 외치며 기운까지 북돋아줬다. 무엇보다 신현수의 마음은 흔든 결정적 한 마디는 "'미스터쇼' 하면서 여러분 행복하십니까"였다고.

[2014 '코스모폴리탄' 핫가이 TOP10 2위에 선정된 배우 신현수]

"박 감독님이 '나는 여러분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무대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인간은 다 행복하려고 산다' 얘기해주셨어요. 제 궁극적 인생 목표도 행복이었거든요. 무대에서 즐겁지 않은데 즐기지 않는 척 하는 건 가슴 아픈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을 하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박 감독을 통해 행복의 정의를 다시 배웠습니다."

'미스터쇼'는 무명에 불과한 신현수를 박수 받게 만들었다. 조금씩 알아보는 사람도 늘어갔다. 몇 만 원으로 버티던 삶도 공연 횟수가 늘어가면서 여유가 생겼다. 부산·대구·청주 등 8개 도시 투어에 이어 10일부터 서울 공연을 시작하고 있다. 이 모든 무대에 선다면 주머니가 조금 더 채워지고 박 감독의 눈에 한 번 더 들지 모른다. 하지만 과감하게 내려오기로 했다. 남들보다 좀 더 느리게 걷기로 했다.

"메이저와 언더의 경계를 떠나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거라면 연기뿐만 아니라 그림과 음악에도 취미를 붙이고 싶고요. 제가 갖고 있는 생각들을 다양한 통로를 통해 표현하고 싶어요. 지금은 연기할 때 가장 행복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느낌이 좋은 영화를 촬영하고 싶어요"

신현수는 올해도 매년 공연하는 극단 오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연기를 들여다 볼 예정이다. 느리게 흘러가지만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닿길 바라고 있다.

glory@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POP & heraldpop.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