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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장 열리는 동성애]도전받는 2000년 금기.. 프란치스코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입력 2014. 10. 22. 03:10 수정 2014. 10. 2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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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바티칸, '동성애=죄악' 깨고 공론화 일단 성공 ▼

동성애는 종교계를 포함한 지구촌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6일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금지해 달라는 버지니아 등 5개 주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찬반, 두 진영의 오랜 '전투'에 기념비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이로써 미국 내 전체 50개 주 가운데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주는 30개로 늘어났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김조광수 영화감독이 동성 연인과 결혼해 화제가 된 가운데 최근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국 방문 중 인터뷰에서 "한국이 아시아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혀 국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오래된 논쟁이면서도 여전히 휘발성이 강한 동성애 이슈의 결정적 불씨는 동성애를 '죄와 무질서'로 여기며 금기시해온 바티칸 교황청에서 날아왔다.

○ 끝나지 않은 프란치스코의 혁명

13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는 초안에서 '동성애자에게도 가톨릭 신앙공동체를 위한 은사(恩賜·gifts)와 자질이 있다'는 문구를 넣었다. 하지만 주교 시노드는 18일 임시총회 최종 보고서에 동성애자 환대와 이혼자 및 재혼자도 영성체를 받을 수 있도록 했던 초안 문구를 모두 삭제하기로 했다. 외신에 따르면 찬성 118명, 반대 62명으로 채택 요건인 3분의 2 찬성에서 2표가 모자라 부결됐다.

교황청 안팎에서는 채택 여부를 떠나 가톨릭에서 동성애 문제를 공론화한 것 자체가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인 이동익 신부는 "동성애는 성경이나 교회 공식 문서에서 윤리적인 악"이라며 "교회를 대표하는 주교 180명이 오랜 가톨릭의 금기를 공개적으로 토론했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라고 말했다.

시노드 문서 작성에 참여하고 귀국한 강우일 주교회의 의장은 20일 간담회에서 "최종 문서에서 제외됐다고 논의에서 배제되는 게 아니다"라며 내년 10월 회의에서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 가톨릭 교리와 동성애, 동성결혼

동성애, 나아가 동성결혼 허용은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에서 가장 첨예한 현안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동성애가 창조질서에 비추어 위배된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면서도 동성애를 이유로 한 차별은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가톨릭 내에선 차별 반대보다는 '동성애=죄악'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했다는 점에서 시노드 논의 자체만도 충격적인 변화다.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장인 김정우 신부는 "시노드의 핵심은 교리 수정의 문제가 아니라 동성애자가 교회에 기여할 수 있고, 교회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취지"라며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국내외 종교계

개신교는 이미 동성애를 둘러싼 심각한 갈등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 성공회는 2003년 동성애자인 진 로빈슨이 미국 성공회 주교로 선출되면서 논란이 격화됐다. 2008년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호주, 남미 출신의 보수 성향 성공회 교인들과 서구 복음주의자들이 '참회하는 성공회 교도들의 모임'이라는 독자적인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미 30개 주가 동성결혼까지 허용한 미국에선 동성애를 인정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장로교의 한 교단(PCUSA)이 최근 동성결혼을 인정했다.

국내 개신교에서는 교단 차원의 논의는 없었다. 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사회적 소수자 인권 차원에서 동성애자를 보호한다는 입장이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미 PCUSA의 동성결혼 인정에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동성부부도 이성부부와 똑같이 어려움 겪어" ▼美 성공회 첫 '동성애 주교', 결혼 4년만에 이혼

2013년 은퇴한 미국 성공회 진 로빈슨 주교(사진)의 최근 이혼은 교계 안팎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의 이혼이 유독 관심을 끈 것은 그가 성공회 최초의 동성애자 주교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목회하는 뉴햄프셔 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2010년 결혼식을 올렸지만 4년 만에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로빈슨은 "동성 부부도 이성 부부와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다고 외신은 전했다.

성공회 신부이던 로빈슨은 2003년 주교로 서품됐다. 당시 그는 함께 두 딸을 낳은 부인과 이혼하고, 동성 파트너와 10여 년째 동거 중이었다. 그가 주교로 선출되자 미국 성공회 내의 보수 세력이 반발했고 당시 세계 성공회는 미국 성공회와의 관계 단절까지 경고했다.

그의 이야기는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Love, Free or Die)'이라는 영화로도 제작돼 국내에선 지난해 개봉됐다.

국가별로 분권적 성격이 강한 성공회는 지역에 따라 동성애 문제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대한성공회 교무원 총무국장인 유시경 신부는 "미국 성공회는 동성애자 주교까지 인정한 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 성공회는 대체로 보수적"이라며 "국내에서 동성애 문제를 교단 차원에서 논의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 국내 불교-원불교 "소수자 보호차원에서 배려" ▼이슬람은 "性 구분 명확… 불인정"

기독교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동성애자 문제를 바라보는 국내의 이웃 종교들은 별 다른 반응 없이 지켜보는 분위기다.

불교에서 수행자와 신자를 위한 여러 계율이 있지만 동성애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부장인 정만 스님은 "교리나 학계에서 동성애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룬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며 "사회적 이슈가 된다면 생명의 관점에서 소수자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불교 핵심 원리인 연기법(緣起法)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인과관계와 상호의존성에 의해 생기고 사라질 뿐이다.

비슷한 교리 체계를 지닌 원불교의 한 관계자는 "교리에서 동성애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면서 "일부 교무가 소수자 보호 차원에서 동성애자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슬람교에서는 교리상 성(性)에 따른 남녀의 구별이 명확해 동성애는 허용될 수 없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이주화 이맘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했을 때에는 본성적 목적이 있고, 그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역할도 따로 있다"며 "동성애는 이런 창조본성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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