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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판교 참사' 생존자 "환풍구 위에서 방방 뛰지 않았다"

입력 2014. 10. 22. 20:40 수정 2014. 10. 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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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주최측에서 여러차례 제지했다는 말 사실 아냐"

"일부 언론의 오보 근거로 희생자 비난해서는 안돼"

경찰도 "행사 영상 확인했는데 안내 없었다" 밝혀

"사람들이 환풍구 위에서 걸그룹을 보며 방방 뛰거나 그런 모습은 전혀 없었습니다."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참사 현장에는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관람객들이 환풍구 위에서 뛴 일이 없었고, 주최 쪽에서 여러 차례 내려 오라고 방송한 적도 없었다는 생존자의 증언이 나왔다.

사고가 난 현장 근처 IT(정보기술) 업체에 근무중인 30대 직장인 ㄱ씨는 2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행사 시작 전인 지난 17일 오후 5시께부터 올라가 있었지만, 5시 10분~20분께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와서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안전'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한 한마디 외엔 환풍구 쪽을 향해 어떤 말도 없었다. 내려오라고 한 안전요원도 물론 없었다"며 "더욱이 사람들이 환풍구 위로 올라가 방방 뛰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해당 사고를 두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일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환풍구 위에서 방방 뛴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피해자 책임론이 힘을 얻고 있는데, 이 책임론이 잘못된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라는 현장 진술이 나온 셈이다.

경찰 관계자도 이날 <한겨레>에 "환풍구에서 내려오라는 방송이 있었는지 여부를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데일리로부터 제출받은 행사 영상에서는 관련 안내가 없었고, 목격자 조사에서도 그런 방송을 들었다는 진술은 없었다"라고 밝혔다.

ㄱ씨는 사고 당시 환풍구 가장자리에 있다가 가까스로 난간을 잡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했다. 환풍구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들이 늘자 사람들에게 휩쓸리고 싶지 않아 바깥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이상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희생자들이 환풍구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고 했다. 그도 쓸려 내려가다 겨우 기어올라올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사고가 난 환풍구 쪽은 평소에도 왕래가 잦은 곳이어서 주변 직장인들일수록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라며 "상가 안쪽으로 연결된 방향은 어른 허리 높이이고, 화단도 연결돼 아이들도 자주 올라가던 곳이었다. 판교는 그런 화단이 많다"고 말했다.

ㄱ씨는 "방송 같은 데서 전문가들이 나와 '안전기준을 지켰더라도 성인 남성 여럿이 방방 뛰면 위험하다'는 식으로 뛴 것을 전제하고 말하곤 하는데, 당시 사고 현장은 차분히 구경하는 분위기였다"며 "근처의 30~40대 직장인이 대다수라 방방 뛰고 그러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그는 "제가 올라가고 얼마 안 돼 중년 부부가 올라왔는데, 남편분이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의자를 갖고 올라와 부인을 앉혀 기억에 남았다. 만약 방방 뛰는 분위기였다면 그 와중에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었겠나"라고 덧붙였다. 이 중년 부부는 부인이 암 수술을 받은 뒤 바람 쐬러 나갔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나중에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다. (▶ 관련 기사 : "암 수술한 아내와 바람 쐬러 나갔다가 그만…" )

ㄱ씨는 지금도 사고 장소를 내려다보며 일하고 있다. 친숙한 장소가 순식간에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진 곳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평소 인도에 수많은 전철 환풍구 위를 걸어다니던 생각을 하면, 안전하다고만 생각했죠. 다소 높이가 있으니 어린 학생들은 올라갔다가 잘못해서 길 쪽으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진 들었지만, 그냥 서 있다가 수십 미터 환풍구 속으로 떨어질 거라는 건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 생각을 했다면 누가 올라갔겠어요?" (▶ 관련 기사 : '고작 1명만'…"돌출형 환기구에 절대 올라서면 안돼") )

ㄱ씨는 마지막으로 "환풍구에 올라간 제 행동에 무조건적인 면죄부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사회자가 말려도 사람들이 환풍구 위로 올라가 방방 뛰며 춤을 췄다'는 등의 잘못된 내용과 희생자 비난으로 일관된 기사 댓글 등을 보니 희생된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일인 것 같았다"며 제보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인터넷한겨레>가 21일 보도한 '환풍구 올라선 사람들 탓이라고? '공공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기사 (▶ 바로 가기) 를 보고 <한겨레>에 연락을 취해 왔다.

정유경 박경만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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