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SBS

"네 순서 맞니?" 상처받는 간호사 임신 순번제

이종훈 기자 입력 2014. 10. 26. 21:21 수정 2014. 10. 26. 22:10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앵커>

'임신 순번제'라고 들어보셨나요?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여럿이 한꺼번에 임신하면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순번을 정해 임신 시기를 조절한다는 건데요, 정부의 출산 장려정책이 무색하게 현실에선 이런 비인권적인 행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종훈 기자입니다.

<기자>

3년 전 한 병원에서 한 달 사이 간호사 네 명이 한꺼번에 임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임 끝에 어렵게 임신한 한 간호사에게 건네진 첫 마디는 "이번에 네 순서가 맞느냐"는 질책이었습니다.

['임신 순번제' 경험 간호사 : 최우선적으로 축하를 먼저 받아야 될 일인데 부서장이나 위에서부터 대놓고 '네 순서 맞니?', '굳이 이번에 낳아야 되겠니? 남한테 피해 주는 건 생각 안 하고…']

순서에 맞지 않는 임신으로 근무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는 수간호사의 추궁은 임신기간 내내 이어졌습니다.

['임신 순번제' 경험 간호사 : '계속 대책을 내놔라' 하면서 정말 애 낳는 날까지 계속 괴롭혔어요. 임산부, 모성보호 차원을 넘어서 인격적으로 인권적인 문제가 너무…]

간호사들 사이에서 '임신 순번제'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병원 고위층에서 "수간호사가 임신 순서를 잘 정해서 무리 없도록 하라"는 암묵적 지시를 내리면 임신 계획 중인 간호사들은 눈치를 보며 순번을 정해 임신 시기를 서로 조절한다는 겁니다.

간혹 순번이 아닌데 다른 사람과 겹쳐 아기를 가질 경우 질책을 우려해 몰래 중절 수술까지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산 경험 간호사 : 아픈 추억인데요. 출근해서 입덧하는 걸 수간호사가 어떻게 참고 보겠어요? 12주 때에 유산을 시켰어요.]

전국보건의료노조 설문조사 결과, 간호사 5명 중 1명이 이처럼 '임신 순번제'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간호사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0시간 가까이 됐고 임신한 간호사 가운데 22%가 야근까지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유산을 경험한 경우도 18.7%에 달했습니다.

인구 1,000명당 우리나라의 간호사 수는 2.37명으로 OECD 평균 6.74명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부족한 인력에다 불규칙한 3교대로 인한 밤샘근무 등이 임신순번제라는 비인간적인 관행을 낳은 겁니다.

[유지현/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 위원장 : 인력이 충원되고 모성보호라는 이러한 중요한 것들이 병원에서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들이 필요합니다.]

출산장려가 국가적 과제가 됐지만, 정작 병원은 임신과 출산의 자율권마저 침해당하고 있는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영상취재 : 김찬모·박대영, 영상편집 : 박춘배)이종훈 기자 whybe0419@sbs.co.kr

저작권자 SBS & SBS Digital News Lab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