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머니투데이

산부인과엔 '아이' 울음소리 아닌 '의사' 울음만..

박진영|서진욱 기자 입력 2014. 10. 28. 07:14 수정 2014. 10. 28. 07:14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2020 인구절벽-사람들이 사라진다]<4>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다

[머니투데이 박진영기자][[2020 인구절벽-사람들이 사라진다]<4>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다]

#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에덴산부인과는 이달 들어 분만진료를 접기로 했다. 저출산에 따른 신생아 수 감소로 극심한 경영난을 감당해낼 수 없어서다.

김재연 에덴산부인과의 원장은 14년전 의원 개업을 하고 전주시 도농경계 지역에서 분만의원으로서 기능을 충실히 해내왔다고 자부한다. 한 달에 20여명 정도의 신생아들을 부지런히 받으며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차차 분만진료 건수가 줄어들었고 5년 전부터는 한 달에 10여명의 신생아만이 에덴산부인과를 거쳐 갔다. 10명은 병원 경영의 '마지노선'이었다. 그 뒤 5년간은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적자가 계속됐지만 김 원장은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면서 분만진료를 고집해왔다. 생명을 다루는 최전선에서의 진료가 가치 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 원장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한 달 출산아 수가 2명까지 떨어지자 김 원장도 더 이상 분만진료를 지속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분만실, 신생아실, 수유실, 각종 부대시설 등이 딸린 입원실과 각종 시설을 단 몇개라도 갖추려면 산부인과는 다른 진료과목 병원보다 몇 배의 운영비가 필요하다. 곁을 떠날 수 없는 신생아들을 24시간 보살피기 위한 인건비도 곱절이었다. 김 원장은 한 달 최소 3000만원 수준의 고정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김 원장은 더 이상 버티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뭇머뭇하다 지난 1일에서야 분만진료를 포기했다. 수년을 함께 해온 간호사 8명도 떠났다. 지금은 부인과 진료와 비만치료, 피부미용, 성형 등으로 명목상의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는 상태다.

김 원장은 "신생아수가 급격히 줄면서 나를 비롯한 많은 산부인과들이 줄도산하고 있다"며 "앞으로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산부인과와 관련 산업이 무너지고 있지만 3~4년 후에는 소아과, 학원, 대학교들도 손 쓸 새 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태어나는 신생아 수가 급속도로 줄면서 타격을 받는 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여파는 도미노처럼 이어져 이미 사회 곳곳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며 많은 부분들을 무너뜨릴 전조를 보이고 있다.

◇저출산에 산부인과업계 반토막='저출산 쇼크'에 가장 먼저 쓰러진 '도미노 조각'이 산부인과 업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산부인과 의원 수는 2006년 1월 1896개에서 2014년 2분기 1389개로 큰 폭 줄었다. 내과, 정신건강, 마취통증,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 대부분의 다른 진료과목 의원 수는 같은 기간 동안 늘어났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산부인과업계 내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무너진 것이 출산아 수와 직결된 '분만 인프라'다. 국내 분만 산부인과 수는 2004년 1311개에서 2012년 739개로 줄었다. 43.6%가 감소해 반토막이 났다.

출산율은 이미 2002년부터 1.10명대로 떨어져 있었다. 이 여파가 10여년에 걸쳐 산부인과 의원들을 경영난에 빠지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연간 출생아 수는 1971년 102만5000명에서 지난해 43만6600명까지 급감했다. 같은 기간 출산율도 4.54명에서 1.19명으로 크게 떨어졌다. 출산율은 15~49세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낸 지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외에 가서 출산하는 '원정출산'의 뜻마저 바뀔 판이다. 서울시 송파구의 경우 산부인과를 진료과목으로 내건 곳은 129곳이지만 대학병원 1곳을 제외하고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는 단 2곳에 불과하다. 근린 지역에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어 다른 지역으로 장거리 이동을 한 뒤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원정출산'으로 부르는 '동음이의 신조어'가 생겨났다.

◇산부인과 전공의도 대거 미달'=

산부인과 업계의 미래 또한 암담하다. 의원수가 줄고, 병원들의 경영난이 이어지는데다가 '3D(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업종으로 분류되면서 예비 의사들의 지원도 급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모들이 받는 의료의 질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2003년 산부인과 전공의 정원은 237명, 지원자 수는 293명으로 경쟁률이 1 대 1을 훌쩍 넘는 인기 학과였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2012년에는 정원이 166명으로 대폭 준데다 지원자 수는 96명으로 더 큰 폭 감소했다. 지원율이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산부인과 업계가 예전처럼 다시 살아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저출산이라는 인구구조적 문제가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여성 피부미용, 성형, 요양병원 등으로 분만 이외의 분야로 진료 영역을 확대하고 있지만 결국 부차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은 "23년간 산부인과 업계에서 일 해왔지만 이렇게 업계 상황이 악화된 것은 처음"이라며 "산부인과가 타격을 가장 먼저 받았을 뿐 저출산은 사회 곳곳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저출산 문제를 선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트위터 계정 @zewapi]

머니투데이 박진영기자 jyp@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