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복 "노무현정부 때 오히려 자유롭게 대북전단 날려"

2014. 10. 3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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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풍선날리려 소송..사전 예고 공개 행사는 사기극"

"자유롭게 풍선날리려 소송…사전 예고 공개 행사는 사기극"

(포천=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삐라' 보내는 건 노무현 정부 때가 오히려 자유로웠어요. 공개 행사는 막았지만 늘 미행하고 그런 건 안 했거든…"

민간 대북전단 살포의 '일인자'로 통하는 이민복(57·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씨가 현 정부를 향해 뜻밖의 비판을 했다.

탈북자로서 2003년에 처음으로 전단을 날린 그는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등을 나름대로 직·간접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활동 10년 만에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지난 6월 국가를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했다.

대북전단을 더 자주 날리려고 서울이 아닌 경기북부 지역에 산다는 이씨를 지난 29일 포천 산골 집에서 만났다.

소송 얘기를 시작하자 이씨는 "노무현 정부 때 대북 정책 기조는 지금과 달랐고 이념적으로 나와 맞지 않았지만, 인권을 침해하고 그런 제재는 없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되니 조용한 비공개 행사임에도 현장에서 활동을 제지당하곤 했다"면서 "박근혜 정부 들어선 집에서 (풍선 주입용 가스통을 실은) 트럭이 나가야 하는데 경찰이 앞뒤로 차를 막아 아예 나가지를 못하게 했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은 대북전단 문제를 놓고 남북, 남남 갈등이 첨예한 최근 정세 속에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괴리된 것이어서 의아스러웠다.

그는 그러나 실제로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갈수록 제약이 점점 심해졌다고 말했다. 모든 활동 방해를 촬영, 증거자료로 의정부지법에 제출했다.

지난해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 담당 경찰관으로부터 "불필요한 심적 압박 등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주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지만, 그것으론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씨는 "경찰 등 공무원이 신변보호라는 명목 아래 나를 지나치게 감시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자유로운 대북전단 살포'는 탈북자인 그가 남한사회에서 유일하게 원하는 것이자 이번 정신적 피해배상 소송(소가 5천만원)을 제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0일 경기도 연천에서 북한군이 전단 풍선을 향해 사격한 데 이어 25일 임진각에서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과 자유북한운동연합 등이 전단 살포 행사를 예고하자 이씨는 분노했다.

북한이 격렬하게 '대응'을 경고하고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가운데 진보단체까지 가세해 격돌하면서 전단 살포 활동이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찬반 논란이 있는 일을 두고, 쓸 데 없이 더 큰 갈등이 생겨 난감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대북전단 풍선 날리기' 기술을 배워 '옳지 않게' 사용하는 이들을 매우 못마땅해 했다. 또 "바람의 방향을 보지도 않고 풍선을 날리는 것은 모두 사기극"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와 대화를 나눈 집은 누렁이 개 한 마리가 지키고 앉은 컨테이너상자와 비닐하우스로 이뤄져 보기에도 딱했다.

산골 집 입구에 주차 중인 1.5t과 2.5t 가스 트럭, 방 한가득 걸린 각종 지도와 전단 더미들은 그 자체로 '나 삐라에 미쳤소'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는 "대북 전단지를 보고 탈북을 결심했고 삐라를 날리기 위해 '남조선'에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마치 '삐라학(學)'이라도 정립한 듯 한바탕 강연을 했다.

그의 경험으로는 체제를 비판하거나 선정·자극적인 내용의 전단은 북한 사람들의 눈에 처음엔 신기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반감을 갖게 한다고 한다.

북한 체제를 뒤엎자고 선동하거나 벌거벗은 여자 사진을 싣는다거나, 김정일 김정은 등을 희화화하는 내용 등도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며 자극적인 내용의 전단을 배포하는 단체들을 비판했다.

그는 "대북풍선은 가장 폐쇄된 사회인 북한을 평화적 방법으로 열려는 것"이라며 진실을 차분하게 꾸준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양의 삐라를, 한꺼번에, 원하는 곳으로 날리기 위해 무게를 줄이고 타이머까지 달았다. 비닐 전단을 개발했고 대형 가스차량을 구비했다.

그러나 그가 사상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무장한 활동가는 아니다.

선교용 전단을 따로 제작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대북전단 활동도 '풍선 사역(使役)'이라고 부른다.

그의 '종교적 신념'과 전단 살포 자체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 때 오히려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전단을 날렸으며, 여타 살포자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그의 모습에선 '전문가적 자부심'마저 묻어났다.

그로선 현 정부든, 전단살포 자체를 물리력까지 동원해 극구 저지하려는 일부 진보단체든, '사기치듯' 전단을 날리는 탈북·보수 단체든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2009년 1천514개, 2010년 1천475개, 2011년 753개, 2012년 1천55개, 2013년 911개 등 최근 5년간만 해도 모두 5천708개 전단 풍선을 날렸다고 정확히 기억했다.

풍선 1개당 전단을 3만장 가량을 매달 수 있다. 개당 드는 비용은 약 10만원이다.

그는 왼쪽 입술이 부르튼 것을 가리키며 "힘들지만 관심이 고맙다"며 후원금 내역까지 공개했다.

지난 7∼9월 최근 3개월간 모두 180여 명으로부터 4천여 만원이 들어왔다며 비용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돈은 이 가운데 6%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개인 단일 후원금 최고액은 어느 목사가 보낸 1천만원이었으며, 영국 가디언지에서 보낸 인터뷰비 명목의 20만원도 있었다고 서류와 기록을 보여줬다.

이씨는 "접경 지역 주민들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가 있어 미안한 점이 있다"면서 "피해가 없도록 조용히, 제대로 풍선 날리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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