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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움직인다..무엇이든 될 수 있는 '한칸집'

입력 2014. 11. 20. 14:10 수정 2014. 11. 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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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라이프

가로세로 3m 방 아홉개가 미닫이문으로 이어져 자유롭게 구획짓는 양평 이내옥씨 집

'한칸집'이라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아홉칸이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송현리에 지어진 한칸집은 실질적인 넓이가 아니라 공간을 나누는 우리의 관습을 돌아보는 곳이다. 가로세로 9m 길이 정사각형으로 지어진 이 집은 처음에 9칸집이라고 이름 붙였다가 내부를 전부 움직이는 미닫이문으로 달아 문을 열었을 때 한칸으로 모이고 문을 모두 닫으면 아홉칸으로 나뉘는 구조가 되면서 이름을 바꿨다. 한칸집을 설계한 건축가 김개천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는 "한칸은 집을 이루는 최소한의 크기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장 큰 단위"라고 했다.

지난 11월13일, 초인종도 없는 한칸집의 문을 두드렸다. 16개의 나무 기둥이 떠받친 집은 투명한 유리창이 벽을 대신했다. '송현남포'(송현리 채마밭)라고 쓰인 작은 나무현판 옆 창문을 들여다본다면 반대편 마당까지 훤히 보이는 구조다. 2013년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직을 은퇴하고 7월부터 이곳에 살기 시작한 이내옥씨는 노후를 보낼 곳으로 조선시대 선비 사랑방을 닮은 검소하고 작은 집을 원했다. 오래된 마을 풍경을 거스르지 않고 묻혀지는 집이길 바랐다. 건축주가 "주변과 조화하는 건 내 건축의 목표도 아니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집짓기를 좋아한다"는 김개천 교수를 찾아간 이유는 김 교수가 기둥과 목조 창문만으로 전남 담양 정토사를 짓던 시절부터 쌓은 인연 때문이었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소원을 자기 식으로 받아들였다. "내 생각에 조화롭다는 것은 주변과 닮거나 비슷한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고유성을 갖고 있고 생명성을 획득하면 조화롭다. 내부 평면에서 그걸 구현하려고 했다"는 건축가는 기둥과 창문만 있을 뿐 투명한 집을 세워서 밖으로도 자기 식의 화려한 건축을 추구했다. 작은 집이 넓은 발코니를 고집한 것은 경계도 영역도 없는 이 집이 밖으로 더 확장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이 집은 보기에 따라 한칸도, 백칸도 될 수 있는 집"이라고 했다.

다른 효과도 있다. 워낙 81㎡ 넓이 작은 집은 유리와 나무로 투명하게 지으면서 존재감이 더욱 흐려졌다. 집 안을 탐색하려던 시선은 절로 건너뛰어 뒤쪽 산으로 뻗는다. 밖에서 들여다보려다가 되레 자기 모습과 바깥 경치가 창에 비치는 모습만 보기도 한다. 가뜩이나 뒷집보다 몸을 낮추어 낮게 지어졌지만 건축가는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지붕 위에 흙을 얹어 머리 위에 잡초가 무성히 자라는 집으로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현관을 들어서면 바로 만나는 거실에는 작은 책꽂이와 오디오가 놓여 있고 서쪽편에는 마당을 내다보거나 손님을 맞을 수 있는 좌식 공간이 있다. 현관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 주방이 있고 옆 칸에는 집주인이 글을 쓰거나 생각에 잠길 만한 작업실이 있다. 어디 앉든 밖이 내다보이는 것처럼 어느 창에서든 안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2m 정도 길이의 처마와 데크 안에 깊이 들어가 앉은 덕에 집 안은 아늑했다.

한칸집, 아니 아홉칸 집에는 다른 해석도 있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집주인 이내옥씨는 "중국 고대 건축에선 아홉칸 집을 '명당'이라고 불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맨 앞 세칸 중 가운데 칸을 또 명당 자리라고 했다"고 덧붙인다. 주로 명당칸에서 책을 쓰며 하루를 보내는 집주인은 길가에서도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허리를 곧추세우며 사는 것일까. 테이블과 침대, 낮은 소파 같은 몇가지 가구만 있을 뿐 집 안은 쓸데없는 살림 하나 없이 정갈하기만 했다. 건축가는 꾸밀 자리조차 없이 솔직하기만 한 집을 만들자며 벽 대신 움직이는 문을 달아 집주인이 그림 한 장 걸지 못하도록 하려 했다지만 워낙에 집주인은 그림 한장, 유물 한점 지닌 것이 없었다고 했다. 대신 건축가는 안방 바로 앞 침실에 작은 연못을 파고 벚나무를 심는 호사를 부려놓았다. 북서쪽 침실에 누우면 연못물에 기울어가는 해가 비치는 모습이 보이겠다.

한칸집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뜻이 맞아야 태어날 수 있는 집이다. 담양 정토사부터 국민대 강의실 담담원, 거제도 주택 등에서 영역도 경계도 없는 건축을 추구해왔던 김개천 교수는 "이 작은 한칸집에서 그 뜻을 원없이 풀어보았다"고 했다. 집주인은 "처음엔 내 집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의견을 한두번 냈다. 그런데 몇차례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이건 내가 할 게 아니다 싶어서 나중엔 아예 다 맡겨버렸다"고 했다. "물건에도 사람의 마음이 깃든다는데 건축은 오죽하겠어요. 건축가가 마음을 담아서 설계를 하길 바라면서 내 집이라고 이러저러한 주문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김개천이 지은 집에 산다는 것은 제가 김개천 마음속에 살기로 한 것이지요."

은퇴하면 과연 꿈꾸던 것처럼 지금의 번잡스러운 생활을 훨훨 털어버리고 살 수 있을까? 건축가는 방 벽도 용도도 정해지지 않은 채 움직이는 집을 지어주며 "사람은 다 제각각인데 아파트가 정하는 삶, 건축가가 정해준 평면은 사람을 구속한다"며 "칸칸이 마음 내키는 대로 쓰시며 자유롭게 사시라"는 축사 같은 말을 남겼다.

춘천·청주·부여·대구·진주 박물관장을 거쳐 서울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으로 마칠 때까지 평생을 돌아다녔다는 이내옥씨는 "새로운 지역으로 발령 나는 순간 지금까지 일했던 곳은 잊어버리는, 뿌리도 꼭지도 없는 인생을 살았다"며 "이곳도 내 집이 아니라 나는 잠시 여기 머물며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빈말이 아니다. 한칸집에 들어오면서 한 트럭 분량의 한국미술 서적이나 도록은 다 나눠줘 버렸단다. 은퇴 뒤에도 강의하고 책을 쓰는 그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종교서적 몇권만 지니고 사는 삶이 생각보다 홀가분했다. 처음 가져보는 내 집 마당이 좋아서 욕심껏 채소며 꽃이며 심었다가도 그러면 사람이 꽃에 매인다는 것을 느끼곤 다 뽑아 버렸다. 한칸집 마당엔 흰조팝나무 몇그루만 담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양평/글·사진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영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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