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모래로 쌓은 스포츠 왕국

2014. 11.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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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의 민낯

[동아일보]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 그러나 사상누각이라는 걱정이 많다. 최대 규모의 아시아경기가 빚 걱정으로 막을 내린 현실도 그렇다. 우리의 스포츠 정책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동아일보DB
지난달 막을 내린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한국은 종합 2위란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삼류 개막식’ ‘도시락 실종사건’ ‘준비 부족’ 등 전반적인 대회 운영에서의 문제는 물론이고 쓸데없는 재정 낭비가 컸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문학종합경기장이 있는데도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 건설에 4600억 원이 넘는 돈을 썼다. 인천시 관계자가 “대회 뒤 남은 건 빚뿐이다”라고 인정했듯 국고보조금 4600여억 원 등을 빼고도 1조 원이 넘는 돈을 향후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 대회를 유치한 시장과 준비한 시장, 개최한 시장이 다르다 보니 적자 폭이 더 커진 측면도 있다.

‘소치 겨울올림픽(13위)과 브라질 월드컵(조별 예선 탈락), 인천 아시아경기, 프로야구 삼성의 통합 4연패, 프로축구 전북 현대의 3번째 우승….’

2014년에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스포츠에 울고 웃었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인 종합 4위를 한 뒤 2000년 시드니 대회(12위)를 제외하고 올림픽에서 줄곧 10위권을 지킨 스포츠 강국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13개를 획득해 종합 5위를 했다. 겨울올림픽에서도 1992년 알베르빌(프랑스) 대회에서 10위에 올랐고 2012년 밴쿠버에서 5위를 하는 등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프로야구는 인천 아시아경기 금메달의 주춧돌이었고 프로축구 K리그는 월드컵 8회 연속 진출과 인천 아시아경기 금메달의 토대였다. 가히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이라 할 만하다. 과연 그럴까.  

▼ 우승컵 부자 삼성 라이온즈, 2013년 한해만 121억 적자 ▼ 화려함 뒤에 안으로 곪는 프로팀

年 300억 이상 쓰는 프로야구단… 입장료-중계권료로는 운영비 못대 4대 리그 팀들 ‘돈먹는 하마’ 전락… 자생력 키우는 시스템 개혁 필요
프로구단의 겉과 속
프로야구 삼성 선수들이 2014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손가락 4개를 펼쳐 보이며 환호하고 있다. 손가락 4개는 4연속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뜻한다. 동아일보DB
프로야구 삼성은 4연속 통합 챔피언이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속은 부실하다. 연간 수백억 원을 투자하고도 실질적으로는 흑자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프로야구뿐만 아니다. 프로축구와 프로농구, 프로배구 등 국내 4대 프로스포츠 중 모기업의 지원금을 빼면 실질적으로 흑자를 내는 구단은 찾아보기 힘들다.

1982년 프로야구, 1983년 프로축구 출범으로 프로스포츠 시대를 맞은 한국은 주춧돌부터 잘못 놨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에서처럼 시민들이 스포츠를 즐기다 팬이 점점 더 늘고, 마케팅이 되면서 출범한 프로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정당하지 못한 집권에 반항하는 젊은이들과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국내 프로스포츠를 출범시켰다고 평가한다. 대한민국 프로스포츠의 모태는 기업팀이다. 군사정권은 기업들이 팀을 맡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구단은 어느 순간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운영비가 모자라면 모기업에 손을 벌리는 게 관행이었다. 수익을 늘려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은 극히 미미했다. 프로야구단 1년 운영비가 300억∼400억 원, 프로축구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팀들의 연간 운영비는 150억∼300억 원 정도로 알려졌다. 프로농구는 60억∼80억 원, 프로배구는 30억∼60억 원을 쓴다. 2014년 현재 프로야구 9개 팀(KT 제외),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12개 팀(챌린지 10개 팀), 프로농구 10개 팀, 프로배구 7개 팀(이상 남자부)이 있어 어림잡아도 매년 수천억 원을 쓰는데 수익은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프로야구단은 입장료와 중계권료 등으로 많게는 100억 원 넘게 벌지만 치솟는 선수 몸값 등으로 인한 운영비를 순수입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한다. 프로축구단은 많아야 20억∼30억 원, 프로농구 20억 원, 프로배구는 10억 원 정도를 버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제출된 프로야구 7개 구단(SK와 KIA 제외, LG는 LG스포츠)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모두 적자를 냈다. 삼성 야구단의 당기순손실이 121억 원으로 가장 컸고, 넥센(67억 원)과 한화(18억 원), 롯데(15억 원), LG(11억 원) 등의 순이었다. 삼성의 당기순손실은 2012년 1억3000만 원대에서 지난해 100배 가까이로 늘었는데, 광고수입이 280억 원에서 190억 원으로 크게 떨어졌다. 특히 모그룹 계열사 광고가 240억 원에서 150억 원으로 줄었다. 모그룹 지원 없이는 버티기 힘든 현실이다. 지난해 삼성의 입장료 수입은 75억 원에 불과했다. 다른 구단도 사정은 비슷하다.

프로축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손익계산서를 자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올해 우승을 차지한 전북 현대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315억 원에 영업이익 0원으로 공시돼 있다. 프로야구에 비해 수입이 훨씬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당기순손실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과 스포츠

한 프로스포츠 관계자는 “한국의 프로 스포츠를 선진국과 비교하면 안 된다. 기업들이 처음엔 홍보비 성격으로, 지금은 사실상 준조세로 생각하고 돈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사회적 책무로서 스포츠단을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얻은 수익을 스포츠구단을 통해 사회에 되돌려 주는 측면도 있다.

기업들은 프로스포츠 외에도 각종 아마추어 팀도 지원하고 있다. 이는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져 온 현상이다. SK는 핸드볼, 삼성은 빙상과 육상, 한화는 승마, 현대자동차는 양궁 등에 연간 수십억 원을 지원하며 사실상 대기업이 대한민국 스포츠를 떠받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기업들이 사회공헌이란 이름으로 엄청난 돈을 계속 쓸 수 있을까. 2008년 지구촌에 금융위기가 몰아친 뒤 장기 불황에 빠지며 국내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로축구의 경우 울산 현대의 모기업 현대중공업이 조선업 불황으로 창사 이후 최대의 위험에 봉착했다. 건설 경기 침체로 부산 아이파크의 모기업 현대산업개발도 예전보다는 어려운 상황이다. FC 서울의 모기업 GS그룹도 석유화학과 건설 등이 불황이라 힘겨운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 기업들이 당장 지원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단들이 자생력을 갖추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언제 공중분해 될지 모르는 형국이다.

프로축구 시민구단 대전 시티즌은 지난해 말 13번째 대표이사 사장을 맞았다. 1997년 창단돼 올해까지 18시즌 동안 사장만 13명이 바뀌었다. 약 1년 4개월 만에 한 번씩 바뀐 셈이다. 대전은 지난해 말 부임한 김세환 사장(40)의 리더십 덕택에 2부 격인 K리그 챌린지에서 1부인 K리그 클래식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대전은 그동안 ‘나쁜 시민구단’의 모습을 보였다. 비전문가들의 방만하고 책임감 없는 경영으로 적자가 누적됐고, 성적도 좋지 않은 구단으로 전락했다. 한때 시민의 자랑거리였던 대전은 사장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망가졌고, 결국 지난 시즌 K리그 챌린지(2부)로 떨어졌다. 김 사장은 올해 경영 합리화를 통해 구단을 쇄신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7월 새로운 시장이 들어서면서 내년 시즌 그가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지자체 팀들의 눈물겨운 생존

일부 프로팀을 비롯해 시도군청 등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팀이 한국스포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지자체가 보유한 팀들은 주로 아마추어 종목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국 936개 팀(2013년 말 기준)이 운영되고 있다. 선수만 남녀 약 7000명이다. 지자체팀은 매년 1회 열리는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지역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운영된다. 사실상 지자체 팀이 없으면 한국 아마추어 스포츠는 없다고 할 정도다. 서울시의 경우 팀 운영 등에 연간 300억 원 정도를 쓰고 있다. 전국적으로 종합하면 엄청난 돈이다.

하지만 역시 ‘밑 빠진 독’이다. 특히 지자체장들은 스포츠의 육성 및 발전보다는 자신의 업적에만 신경 쓰다 보니 지자체들의 경쟁 대회인 전국체전 성적에만 급급해 한다. 성적이 안 좋은 팀은 가차 없이 정리되기도 한다. 전국체전 성적을 위해 메달 딸 능력만 갖추면 연봉 1억 원이 넘는 선수를 영입하는 ‘경쟁’도 불사한다. 기록보다는 성적으로만 평가를 받다보니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국제용보다는 ‘전국체전용’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제주에서 개막한 제95회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만났던 한 비인기 종목의 지도자는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따왔는데 다음 달 팀이 없어졌다. 전국체전 1회전에서 탈락한 게 이유”라고 말했다. 그가 지도하던 팀은 지역 이름을 딴 ○○체육회였다. 그는 “체육회 팀은 사실상 전국체전 딱 한 대회를 목표로 운동하는 팀이다. 아시아경기는 물론 올림픽보다 전국체전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와 자리를 함께한 다른 팀 지도자도 “전국체전은 비인기 종목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는 근거이자 이유”라고 거들었다.

전국체전은 가장 큰 국내 종합 대회지만 개폐회식을 제외하면 중계되는 경기는 거의 없다. 4년 전 ㈜리서치월드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중 364명이 전국체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국민들의 무관심’을 꼽았다. 또 전국체전 관람 경험이 있는 204명 중 28.9%가 ‘선수 가족 또는 체전 관계자’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 같은 무관심 속에서도 현장 분위기는 살벌하다. 전국체전 경기장에서 지도자의 기본 음성 모드는 ‘고성(高聲)’이다. 하지만 유독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도지사님(혹은 시장님)’이 경기장을 격려 방문했을 때다. 대회 기간 경기장 앞에 주차해 있는 수많은 관광버스의 출입문 앞에는 ‘○○ 선수단 격려 방문’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지도자들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가 제주도에 내려온 날 저녁이면 ‘접대’에 바빴다. 한 종목 지도자는 “선수 시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두 번 우승했다. 말하자면 월드 챔피언이었다. 그런데도 일부 공무원들은 인격까지 무시하며 폭언을 한다. 그럴 때는 정말 자존심이 상하지만 애들(선수들) 생각에 참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담당 공무원은 문자 그대로 비인기 종목 관계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실제로 올해 전국체전에서 17개 시도 중 14위에 그친 전북체육회는 대대적인 쇄신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20년 동안 모 종목의 협회에서 잔뼈가 굵은 A 씨는 “기업 팀은 사회공헌이라는 취지 때문에 무리하게 성적을 내라고 압박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자체는 단체장의 임기 내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전국체전 때 과도한 목표를 요구하는 일이 많다”고 전했다.  

▼ “亞경기 金 따도… 전국체전 1회전 탈락했다고 팀 해체” ▼ 정치에 휘둘리는 지자체팀 대회도중 지자체 관계자 찾아오면 감독-코치는 저녁 접대하기 바빠 “일부 공무원 인격무시-폭언까지… 어쩝니까, 선수들 보며 참아야죠”

비인기 종목 스포츠인들의 소원은 딱 한 가지다. ‘생존을 위한 무대’가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현재 47개(시범 종목 3개 포함)인 전국체전 종목을 2019년부터 38개로 줄인다는 방침이다. 올림픽 종목 28개에 대한체육회와 개최지가 각각 5종목씩을 추가해 38개 종목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탈락할 위험이 높은 종목 협회의 B 씨는 “완전 공산당이다. 결국 비인기 종목끼리 대한체육회와 지자체에 로비 경쟁을 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으로는 지자체의 무분별한 국제스포츠 이벤트 유치 및 개최도 ‘망국의 병’이다. 정치논리와 생색내기를 위한 국제 스포츠이벤트 유치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동안 지자체는 무분별하게 국제대회를 유치한 뒤 “돈 없으니 국가가 대 달라”라고 요구하고, 정부는 잘못되면 국가 망신이라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며 재정 지원을 한 사례가 많았다.

한국 스포츠의 맨얼굴과 개혁

이게 대한민국 스포츠의 민낯이다. 한국 스포츠는 학교팀을 제외하면 기업형과 정부형 2가지로 운영된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한국 스포츠는 기업과 정부가 빠지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기형적인 구조다. 한마디로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처음부터 기초를 잘못 다졌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혁명적으로 바꿀 수도 없다. 스포츠는 올림픽 금메달과 프로팀을 지켜보며 기뻐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사회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공공재’로 평가된다. 이러한 스포츠를 지나치게 자본주의 논리만으로 접근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 개선책은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비정상인 구조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이 최선이라고 지적한다.

이용식 한국스포츠개발원 박사(스포츠행정)는 “기업들에 ‘묻지 마 재정 지원’을 강요해 놓고 지금 와서 정상화하는 방법을 기업에 찾으라고 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 주도로 기업과 정부가 돈을 지원하는 틀이 마련됐고 이 속에서 한국 스포츠가 기형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서서히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구조 속에서도 세계 ‘톱 10’의 경쟁력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스포츠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선 얼마간 현 상태의 유지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박사는 “비정상의 합리적인 정상화 방법은 결국 구조조정밖에 없다”고 말했다. 팀을 없애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그동안 관행적으로 불필요하게 쓴 돈과 인적 자원에 대해 합리적으로 칼을 대 효율성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투명성과 재정건전성을 확보한 기업 구단과 지자체 팀에 더 큰 세제 혜택과 자금 지원 등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으면 자연스럽게 한국스포츠는 자생력을 갖출 것이란 분석이다. 전국체전과 국제대회 개최도 마찬가지다. 결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강준호 서울대 교수(글로벌스포츠매니지먼트)는 “프로야구 넥센은 자생력을 갖추려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한국 프로스포츠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 이제 기업 구단이나 지자체 팀도 승리에만 급급하지 말고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근간은 이런 자생력 확보 노력의 결과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양종구 yjongk@donga.com·제주=황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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