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티켓다방女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통영 입력 2014. 11. 28. 11:03 수정 2014. 11. 2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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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경남 통영시의 한 병원 장례식장. 지난 25일 통영시 죽림동 모텔에서 성매매를 하려다 경찰의 단속에 적발되자 6층 창문에서 떨어져 숨진 A(24)씨의 빈소는 초등학교 1학년인 딸(7)과 A씨 아버지, 친언니(26)가 단출하게 지키고 있었다. 경남여성인권상담소 등 여성 단체 회원 30여명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딸은 엄마에게 일어난 일을 모르는지 천진난만하게 빈소를 뛰어다녔고, A씨 아버지(53)는 "착한 딸이었는데…내가 죄인"이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타향 출신인 A씨가 통영으로 내려온 것은 5년 전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학교도 다니지 못했고, 가출했다가 17세 때 딸을 낳아 미혼모가 됐다. 딸을 키우기 위한 변변한 일자리도 구할 수 없었고, 집안 도움을 받을 형편도 안 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티켓 다방' 등에서 일했다. 어머니를 일찍 잃은 A씨는 어린 딸을 고향 아버지에게 맡겼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지만 아버지 앞으로 매달 많게는 100만원, 적게는 40만~50만원의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냈다. 아버지는 최근 공사장에서 일하다 척추·다리를 다쳐 거동이 쉽지 않은 상태다.

자신은 월세 50만원짜리에 살면서 한 번도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함께 일했던 동료는 "출근 시각 10분 전에 꼭 왔고, 아플 때는 응급실에 가 주사를 맞으면서도 출근을 꼭 했다"고 했다. 옷차림도 수수했고,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열심히 모았다고 한다. A씨 지인은 "늘 딸을 보고 싶어 했고 딸 앞으로 보험도 들었다고 했다"며 "'얼른 딸을 데려와 같이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고향으로 올라가 딸을 본 것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이날 A씨는 딸과 언니와 함께 갈비를 먹고 찜질방에 가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불렀다.

언니는 "동생이 몇 달에 한 번씩 보는 딸이라 맛있는 것을 사주고 함께 즐겁게 시간 보내다 헤어질 때는 계속 울기만 했다"고 말했다.

다시 통영으로 내려온 A씨는 지난 25일 변을 당했다. 이날 밤 경남경찰청과 통영·진해·고성경찰서 경찰관들로 구성된 합동단속반이 성매매 단속에 나섰다. 경찰관 1명이 길에서 주운 다방 홍보 전단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모텔로 다방 여종업원을 불렀다.

경찰은 밤 10시 30분쯤 모텔로 찾아온 A씨에게 화대 15만원을 줬고, A씨가 욕실에 들어간 사이 밖에서 대기하던 다른 단속반원들에게 연락했다. 10여분 뒤 경찰이 들이닥쳤다. A씨는 "옷을 입을 동안 잠시 밖에 나가 달라"고 부탁했다. 경찰은 5분이 되도록 A씨가 나오지 않자 이상해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갔지만 A씨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모텔 6층 창문으로 아래를 보니 A씨가 떨어져 있었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6일 새벽 숨졌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경찰의 함정 단속 때문에 숨진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조영숙 경남여성인권상담소장은 "성매매 알선자와 구매자가 아닌 여성을 표적으로 한 함정 수사 때문에 조씨가 숨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A씨에게 성매매를 할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함정 단속이 아니다"며 "담당 경찰관들에 대한 감찰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법조계에 따르면 범죄를 할 의사가 없는데 수사기관이 유도하거나 꼬드겨 범죄를 저지르도록 하는 '범의 유발형'일 경우 함정 단속이라고 한다. 예컨대 마약을 구매할 의사가 없는 사람을 꼬드겨 마약을 사도록 하는 것이 함정 단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건은 범죄 의사가 있는 '기회 제공형'이기 때문에 함정 단속이 아니라는 것이다. 형사가 민간인으로 위장해 뒷주머니에 두툼한 지갑을 꽂고 소매치기가 많은 번화가를 어슬렁거리다 소매치기가 지갑에 손을 대면 검거하는 방식이 기회 제공형이다. 이 '기회 제공형' 수사 기법은 2010년 법원에서 함정 단속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단속팀에 여경이 없었다는 점은 문제로 볼 수 있다"며 "범죄 혐의자를 단속할 때 바로 수갑을 채워 데려가지 않고 '옷 입을 동안 잠시만 시간을 달라'거나 '담배 한 대 피우게 시간을 달라'는 등의 요구를 들어주다 혐의자가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 온정적 체포 태도도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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