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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표 앞에 애국심 없다 .. 해외 직구 올 들어 2조원

장정훈 입력 2014. 12. 01. 01:00 수정 2014. 12. 0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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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프라이데이 쇼핑 건수 급증작년 4만 → 올 8만 건 2배 늘어해외업체들 한국어 안내문 걸고배송업체선 전세기까지 띄워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중 직장인 박만(32)씨는 미국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상품을 고르다 분통이 터졌다.

 박씨가 얼마전 서울 여의도의 IFC몰에서 본 170만원짜리 바나나리퍼블릭 코트가 공식 홈페이지에선 배송비·세금을 포함해도 세일가격 약 80만원에 살 수 있었다. 박씨는 "한국 옷값은 미쳤다. 유통 마진을 얼마나 받는지 모르겠다. 국내 유통업체가 돌변한 소비자 마인드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혀를 찼다.

 지난주 미국 최대 쇼핑업계 할인 행사인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수만여 명의 해외 직접구매 고객(직구족)들이 밤마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 온라인 쇼핑몰로 달려갔다. 아마존·베스트바이 등에서 국내보다 훨씬 싼 가격에 파는 옷·신발·가전·식품·육아용품 등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유통업계는 지난해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중 4만여 건이었던 구매 건수가 올해는 8만여 건에 달하고, 올 한 해 직구 규모도 2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8년이면 8조원에 달하고 10조원을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유통업계는 "내수 시장이 소비 침체로 자꾸 쪼그라들어 확 키워도 시원찮은 판인데 해마다 해외 직구로 수조원씩 빠져나간다"며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직구족의 발길은 거침이 없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중국·유럽 등으로 오히려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6년 차 직구족을 자처하는 주부 신미진(35)씨는 "요즘엔 타오바오(중국)·라쿠텐(일본)을 거쳐 독일·영국의 쇼핑몰까지 이용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결혼할 때는 LG 스마트TV, 네스프레소 캡슐머신, 지멘스 전기레인지 같은 혼수용품을 직구로 구입했다. 모두 합쳐 국내가보다 300만~400만원 정도 쌌기 때문이다. 신씨는 "가격을 따라가다 보니 쇼핑의 국경선이 무의미해졌다"며 "가격표 앞에 소비자는 애국심이 없다"고 말했다.

 해외업체들도 우리 직구족 유치에 적극적이다. 한국어 안내문을 내거는 쇼핑몰이 등장했고, 배송업체는 한국행 전세기까지 띄워가며 배송기간 단축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직구 열풍 이유는 간단하다. 가격 때문이다. 시내 백화점에서 118만원에 파는 여성 코트(띠어리)를 아마존에서는 477달러면 살 수 있다. 배송료에 관세·부가세까지 다 합쳐도 70만원이면 돼 50만원 가까이 싸다. 독일 아마존에서는 지멘스 전기레인지가 76만원이다. 국내가는 이보다 200만원가량 비싸다. 똑같은 상품이 국내외에서 큰 격차가 나는 건 정부와 유통업계 탓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미국 등은 의류나 신발 등의 소비재 관세가 2~4% 수준인 반면 우리는 8% 정도 된다"며 "해외보다 옷이나 신발값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유독 소비재 개방도가 낮다. 미국이나 영국의 소비재 수입 비중이 35~40% 선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9% 남짓 된다. 정부가 최근 병행수입을 허용하긴 했지만 국내시장은 아직도 유통업체와 연계된 독점수입업체가 활개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KDB산업은행 김대진 연구원은 "선진국과 수입 비중이 비슷한 원자재나 자본재는 국내외 가격차 논란이 없다"며 "소비재의 가격차 논란은 시장 개방이 덜 됐기 때문"이라며 "유통업자가 수입선 다변화 같은 적극적인 노력을 게을리한 탓"이라고 말했다.

 김상현 영남대 경영학부 교수는 "직구 열풍은 그동안 좁은 국내시장에 갇혀 있던 소비자가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글로벌 마켓으로 뛰쳐나가고 있는 것"이라며 "소비자가 납득할 만한 수준의 가격정책을 펴지 않는 한 직구 열풍은 더욱 거세지고 그만큼 국내 유통업계의 고객 이탈도 많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정훈·박미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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