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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① 겨울 사색(思索)을 위한 공간

입력 2014. 12. 02. 09:40 수정 2014. 12. 0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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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시기엔 사색의 공간이 필요하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미지의 길에 나설 채비를 하기 위해 사람들은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는다. 천 개의 고요한 해변과 황홀한 낙조가 있는 태안반도는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여행에 제격이다. 시름과 번민을 찬 바다에 내던지고 정갈해진 마음을 갖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겨울 바다는 시적(詩的)이다. 시린 푸른빛의 바다와 하늘,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집어삼킬 듯 해안을 때리는 파도, 발자국 몇 개 없는 고요한 해변, 방파제 끝에 우두커니 서 있는 등대 등 겨울 바다의 풍경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든다. 차가운 바다와 바람 속에 낡은 것을 비우고 싱싱하고 맑은 새것을 채워 넣기 좋은 분위기다. 많은 이들이 삭풍 부는 계절에 바다를 찾는 이유다.

태안반도의 겨울 바다는 가히 최고로 꼽을 만하다. 그곳의 풍경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감동적이다. 허파꽈리 같은 해안선을 넘나들면 바다와 해변, 숲과 항구가 펼치는 1천여 점의 풍경화가 폐부 깊숙이 감동의 파동을 일으킨다.

◇반도의 모든 풍경 담긴 해변길

태안반도에는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총길이 97㎞의 7개 구간 '해변길'이 조성돼 있다. 각 구간은 '바라길', '소원길', '파도길', '솔모랫길', '노을길', '샛별길', '바람길'이란 명칭이 붙어 있는데, 이름만큼이나 각기 다른 특별한 풍광을 품고 있다.

학암포에서 신두리 사구까지 이어진 길이 12㎞의 바라길은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코스다. 학암포 자연관찰로를 따라 가면 탁 트인 해변이 펼쳐지고, 구례포해변에서는 바람에 날린 모래가 언덕을 형성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조그만 먼동해변을 지나면 싱그러운 곰솔 숲이 나타나고, 끝에는 국내 최대의 해안사구인 신두리 사구(천연기념물 제431호)가 있다.

신두리 사구는 바닷물에 의해 해안으로 운반된 모래가 풍랑에 밀려 올려지고, 수천 년에 걸쳐 일정한 방향으로 분 바람에 의해 낮은 구릉 모양으로 쌓여서 만들어졌다. 사구는 바다와 육지의 완충지대로 해풍을 막아 농지를 보전하고, 바닷물이 드는 것을 막는다. 오랜 시간을 두고 바다와 바람이 합작한 작품이다.

신두리 사구에는 가운데와 둘레에 탐방로가 마련돼 있다. 오른쪽 모래언덕을 오르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사구의 물결과 구릉 뒤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언덕을 내려와 왼쪽 탐방로로 접어들면 사막 같은 풍경은 사라지고 허리 높이로 자라난 풀숲이 이어진다. '어린왕자'가 살 것 같은 아름다운 사막을 보고 싶다면 이곳 언덕에 오르면 된다.

신두리에서 만리포까지는 길이 22㎞의 '소원길'이다. 원유 유출 사고를 겪었던 곳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빨리 복원되기를 바라던 마음이 담긴 구간이다. 소근진성과 황톳길, 의항항을 지나 태배전망대에 오르면 사고 당시 사진과 각종 도구가 있는 유류피해 역사 전시관이 있다. 전망대에서는 아기자기한 섬이 떠 있는 해안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만리포로 가는 길에는 오토캠핑장과 글램핑 시설이 있는 조용한 구름포해변이 있고, 의항해변에서는 돌을 쌓아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 방식인 독살도 볼 수 있다.

3구간은 만리포에서 파도리해변까지 이어지는 길이 9㎞의 '파도길'이다. 경쾌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길로 싱싱한 해산물이 거래되는 모항항과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진다.

◇곰솔 향기 진한 탐방로와 환상의 해넘이

4구간과 5구간은 몽산포에서 드르니항까지의 '솔모랫길'(16㎞), 백사장항에서 꽃지해변까지의 '노을길'(12㎞)이다.

솔모랫길에서는 향긋한 솔 내음을 맡으며 울창한 곰솔림을 통과하고 부드러운 모래언덕을 밟으며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청포대해변에서는 전래동화 '별주부전'의 전설이 깃든 자라바위와 노루미 독살을 볼 수 있다. 구간 초입에는 해변길 안내 리플릿과 지도를 챙길 수 있는 태안해안국립공원 몽산포탐방안내센터가 자리한다.

4구간 끝의 드르니항과 5구간 시작점인 백사장항은 길이 250m의 해상 인도교인 '대하랑꽃게랑 다리'로 연결돼 있다. 최근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꽃게 모양 다리를 건너며 항구와 바다, 해변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해가 지면 다리에 밝혀진 화사한 조명이 어선들의 휘황한 불빛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경관을 선사한다.

5구간은 고즈넉한 해변과 짙푸른 곰솔 숲이 번갈아 이어지는 해변길 최고의 풍광을 자랑한다. 부드러운 모래가 깔린 폭신한 해송 숲길을 파도 소리를 듣고 거닐며 온전한 나만의 시간에 빠져들 수 있다. 인적 없는 해변과 숲길이 아름다운 기지포 해안사구를 거쳐 방포 모감주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이내 꽃지해변이다.

해변 초입에는 최고의 해넘이 명소인 할미·할아비바위가 있다. 매일 해 질 무렵이면 할미·할아비바위가 보이는 도로변에는 관광객이 엄청나게 모여든다. 겨울철에 태양은 수면 위로 우뚝 솟은 두 바위 사이로 떨어져 내린다. 바다와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두 바위의 선명한 실루엣이 눈앞에 펼쳐지면 여기저기에서 탄성의 소나기가 쏟아진다.

해변길의 마지막 두 구간은 샛별길(13㎞)과 바람길(16㎞)이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고려시대에 삼별초가 주둔하며 훈련을 했다는 병술만이 있고, 자갈 부딪치는 소리가 청아한 샛별해변을 만난다. 바람길은 바다, 사구, 곰솔 숲이 있는 아름다운 구간으로 종점에는 먹거리가 풍부한 영목항이 자리한다.

◇활기와 낭만이 있는 항구들

태안반도에는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활기찬 항구가 군데군데 포진해 있다. 해변길에서 만나는 백사장항, 드르니항, 영목항 이외에도 조그만 포구들이 있어 여행길이 흥겹다.

만리포와 몽산포 사이 근흥면의 안흥항과 신진도항(안흥외항)도 한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다. 신진대교가 태안반도와 신진도를 잇고, 다시 도로가 북쪽의 마도와 신진도를 연결하는 구조로 특히 해 질 녘 신진도항을 감싸고 있는 방파제 사이로 나타나는 일몰이 환상적이다. 길쭉하게 뻗은 방파제와 양쪽에 서 있는 빨간색과 흰색의 등대가 항구의 배, 주변 섬들과 어우러지며 한 폭의 풍경화를 빚어낸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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