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지지하지 않을 자유'가 성립할 수 없는 이유

2014. 12. 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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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

서울시의 서울시민인권헌장 공표 거부와

박원순 시장 "동성애 지지할 수 없다" 발언 후

성소수자를 둘러싼 논쟁의 사실관계 재정리

동성애와 성소수자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서울시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이 포함된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표를 거부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고 발언한 사실이 대변인을 통해 확인(▶관련 기사 : 박원순 서울시장 "동성애 지지할 수 없다" )되면서 확산한 논쟁입니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지난 6일부터 서울시청 1층을 점거하고 사흘째 농성중입니다.

탑게이 홍석천 씨가 활발하게 방송활동을 하고 있고,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씨가 공개 동성 결혼식을 했으며, 국가인권위법 제2조 3항에 버젓이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 행위가 평등권 침해'(관련 링크 : http://bit.ly/1w3Q2OV)라고 규정되어 있는 2014년 한국 사회에서 이런 파문이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것도 인권 변호사 출신의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정부의 수장인 사회에서 말이죠. 곳곳에서 뜨겁게 일고 있는 논쟁과 관련해 사실 관계를 다시 정리해야겠다 싶어진 이유입니다.

박원순 시장의 발언 이후 SNS에는 다양한 견해가 쏟아져 나왔는데요. 박 시장의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 발언이 왜 문제냐는 의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치면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동성애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도 인권 유린이다", "개인은 다양한 이슈에 다양한 정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특정 이슈에 대해 진보라면 다른 이슈도 진보여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인간에 대한 통찰 부족과 개인의 다면성을 거부하는 전체주의 발상"이라는 의견 등이 있었습니다.

한 인간의 성적 지향은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이 합쳐져 하나의 지향을 이루게 됩니다. '성적 지향'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적, 정서적, 또는 성적 이끌림을 기술할 때 쓰는 개념입니다. 동성애가 됐든 이성애가 됐든 양성애가 됐든 성적 지향은 인간의 선천적인 성 정체성의 일환이지만, 한 개인이 '만족스럽고 충분히 낭만적인 관계를 찾을 수 있는 집단' 속에서 나타나는 관계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한 인간의 성적 지향은 누가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지지한다고 해서 성적 지향이 더 확대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적 지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유가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왼손잡이가 비슷한 사례입니다. 왼손잡이는 타고나는 성향이지만, 오른손잡이로 태어난 LA 다저스 류현진 선수가 삶의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왼손잡이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왼손잡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20세기 중반의 한국 사회에선 왼손잡이 아이가 태어나면 억지로 오른손잡이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아이가 왼손잡이라는 사실이 바뀔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강요에 의해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는 있겠지만 말이죠. 이때 다른 사람이 "나는 니가 왼손잡이인 걸 지지할 수 없다"는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다시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는 말로 돌아와, "나는 이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는 말이 과연 성립할 수 있는가를 되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 말이 성립할 수 없다면, 앞의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는 말도 성립할 수 없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인권 변호사 출신인 박원순 시장이 이런 사실을 몰랐거나 아니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그런 사실을 외면하고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면 반인권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 소수자의 '소수성'이 단순히 "물리적 숫자가 적은 이들"이기 때문에 서울시민 인권헌장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 삽입에 반대표를 던진 17명의 시민위원(찬성표는 60명이었습니다)이 "상대적인 소수자 아니냐. 찬성이 다수라고 해서 표결을 강행한 것은 민주주의의 폭력"이라고 반론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 역시 소수자의 '소수자성'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입니다. 숫자가 적다고 해서 무조건 '소수자'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수자란 "육체적 문화적 특질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불평등한 차별대우를 받아 집단적 차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집단을 소수자로 명명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현존함을 밝히는 행위"로 이는 단순히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구조적 권력관계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여성, 흑인,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등이 대표적인 소수자인 건 구조적 권력관계가 이들을 억압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소수자의 '소수'란 수적 '다수'보다는 '정상'의 대립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는 "'정상적인' 성관계라고 생각되는 성적 지향과는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집단으로서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구별되고 차별받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이름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소수성은 사회가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한 권력관계의 구조 속에서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니 "인류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여성이 왜 소수자냐"와 같은 의견의 오류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소수자성에 내재한 권력 개념을 이야기한 것은, 위에서 예로 든 "박원순 시장이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치면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동성애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도 인권 유린이다"라는 반응에 대한 반론을 펴기 위함입니다.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를 펼쳐두고 한 개인에게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하라는 의견은 사상의 자유시장을 보장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장에도 사회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규제가 필요한 것처럼, 사상의 시장도 제도와 규제가 필요합니다. 사상의 시장에 진입조차 할 수 없었던 '사상의 사회적 약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이 이성애자라는 것을 전제로 성과 사랑을 구성하고 혼인과 가족 제도 역시 공히 이성애만을 기반으로 구성"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성 소수자는 세상에 존재함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성애자는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한 존재 증명을 할 필요가 없지만,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는 자신의 존재 증명을 끊임없이 강요받아 왔습니다. 이런 '시장의 불균형 상태'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논리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을 자유'를 말하는 것은 과연 온당할까요. 사회를 구성하는 사상에도 권력관계가 있음을 애써 인정하지 않는 협견 아닐까요. 결국 이런 자유가 확대되면 동성애나 양성애 등의 성적 지향에 대한 혐오의 자유마저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로 사상이 퇴보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동성애자가 박해받는다는 구체적 사례를 이야기해 달라"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내 주위에선 박해받지 않고 잘들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굳이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을 인권헌장에 넣으려고 '우기'냐는 말이겠지요.

아무래도 저 분 주위엔 성 소수자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에 대한 반론을 펴려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주립대의 케이틀린 라이언 박사 팀의 연구 결과를 인용할 수 있겠습니다. 연구는 성 정체성을 이유로 가족에게 강한 거부를 당한 청소년들은 거부당하지 않았거나 아주 약한 수준의 거부만 받은 동성애자 혹은 트렌스젠더 청소년과 견주었을 때 △8배 이상으로 자살 시도를 했고 △거의 6배에 달하는 비율로 심한 우울증을 호소했으며 △3배 이상의 약물 오남용과 3배 이상의 HIV와 성병 감염률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가족에게 거부당한 성적 지향에 따른 결과가 이 정도인데, 사회에서의 '박해'는 더 심각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좀 더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알고 싶다면, 성소수자 차별반대 인권운동 커뮤니티인 '무지개행동'에서 펴낸 '학교 내 성소수자 차별사례집'(▶관련 링크 : http://bit.ly/1cLR7kg)을 보셔도 좋겠습니다.

동성애와 양성애는 '치료해야 할 대상'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우선 동성애와 이성애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오랜 시대에 걸쳐 보고되었습니다. 게이와 레즈비언, 바이섹슈얼(양성애)은 인간의 정상적인 유대 관계의 다양한 형태입니다. 게다가 현재까지 발표된 논문들 가운데 성적 지향을 바꾸는 치료로서 '(성적 지향) 전환 치료'의 효능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입증하는 논문은 전혀 없었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치료지침에도 성적 지향은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동성애는 치료해야한다' 주장을 제기해오면 "나의 성적 지향이 '병'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가져오라"고 되받아치면 되겠습니다.

나아가 "동성애를 허용하면 근친상간도 수간도 소아성애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의견을 이 기사에 써야할까, 쓰는 것이 성소수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되진 않을까 고민했습니다만 그래도 쓰기로 했습니다. 우선 이런 의견이 적절성 여부를 떠나 유통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분명한 반론을 써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이런 의견이나 위에서 열거한 의견이나 문제성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판단도 들었습니다.

우선 논리적으로 "동성애를 허용하면"이라는 전제 뒤에 오는 "근친상간도, 수간도, 소아성애도 허용해야 한다"는 결론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동성애를 허용하면"이라는 전제가 없어도 이성애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 근친상간이나 수간, 소아성애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요.

게다가 소아성애나 수간은 성 관계가 아니라 일방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 관계는 대등한 성적 주체가 서로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는 정신적·육체적 관계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아성애에서 '소아'와 수간에서 '동물'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지기 어려운, 그래서 성적 주체가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대상과 합의되는 섹스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겠지요. 그러니 동성애와 견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근친상간 역시 논리적인 모순을 가집니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우리가 근친상간이라고 두고 상상하는 대표적인 그림들은 모두 이성애를 전제로 하고 그리는 것이니 그렇게 따지자면 근친상간은 이성애적 문제가 된다"며 "이성애의 순수성에 대한 판타지를 상정해두고 만들어진 견해인데, 이성애는 정말 순수하냐"고 되묻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서울시민 인권헌장에 '만장일치 합의'를 요청한 서울시의 선택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견해에 대해 반론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는 지난 8월 13일 이후 4개월 동안 모두 6차례에 걸친 장시간 토론을 바탕으로 인권헌장에 포함될 조항에 대한 숙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애초 5차례 계획됐던 토론회가 한 차례 연장될 정도로 긴 시간 동안 논의했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별다른 숙의 과정없이 표결로만 결론을 내려했다면,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토론 과정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게 현장 시민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게다가 애초부터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에 대한 의견에서 '만장일치'가 가능했다면, 과연 우리가 서울시민 인권헌장에 이 조항을 삽입하기 위해 저렇게까지 애쓸 이유가 있었을까요. 한국 사회에 여전히 저 조항에 동의하지 않고 자신은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는 차별해야겠다는 사람들이 버젓이 존재하니, 인권헌장까지 만들어 제도적으로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애초부터 '만장일치'는 불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만장일치 합의'를 요구하는 시 정부가 되레 폭력적인 것 아닐까요. 엄연한 '차별 금지' 조항을 '동성애를 조장'하는 조항이라고 가볍게 환원해버리는 이들의 폭력처럼 말입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미국심리학회가 말하는 동성애와 동성애치료'

김현경, 박보람, 박승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 그 옹호의 논리를 넘어서 : 표현의 자유론 비판과 시민권의 재구성', 2012

같은 논문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 모임' 카페에 게시된 '당신이 성소수자 자녀를 받아들여야 하는 과학적인 이유'

같은 카페에 게시된 '미국정신의학회가 말하는 동성애와 동성애치료'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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