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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 "지금 행복해야 비로소 행복.. 힘들다고 내일로 미루지 마세요"

입력 2015. 01. 01. 03:03 수정 2015. 01. 01.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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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인사동에 '마음치유학교' 여는 우리시대 '힐링 멘토' 혜민 스님

[동아일보]

오랜 미국 생활을 접고 국내에 정착하는 혜민 스님. 청계천에서 두 팔을 활짝 펼친 것처럼 "이 시대의 아픈 이들과 더욱 자주, 뜨겁게 만나겠다"는 것이 스님의 새해 계획이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이자 우리 시대의 '힐링 멘토'인 혜민 스님(43)이 교장 선생님이 된다.

스님은 3월 서울 인사동에 '마음치유학교'를 연다. 미국으로 떠난 지 근 20여 년 만에 사실상 한국에 정착하는 셈이다. 2006년부터 재직하고 있던 미국 햄프셔대 교수직도 사직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던 지난해 12월 29일 을미년(乙未年) 새해를 준비하는 그를 만났다.

―스님의 이메일 주소가 'monkfromkorea'(한국에서 온 스님)인데 한국 정착하면 바꿔야 하나요.

"하하, 그런가요. 그럼 monk in Korea가 되나요."

―교수직을 버리는 게 좀 아깝지 않았나요.

"미국에서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똑같은 정성과 노력을 들이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특히 세월호 사고 이후 종교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로 생긴 영향력을 어떻게 하면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쪽으로 쓸 수 있을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네요.

"지금 시대 사람들의 아픔이란 게 단순히 좋은 책 한 권 보고, 강연 한 번 듣는다고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보다 직접적이면서도 꾸준한 심리 치유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종교인으로서 제가 이생에서 할 수 있는 사명을 찾은 것 같아 장고 끝에 큰 결정을 내린 거죠."

―마음치유학교는 어떻게 운영되나요.

"200m²(약 60평)쯤 되는 공간에 명상도 하고 상담도 할 수 있도록 편안한 공간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저뿐 아니라 심리상담 전문가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분들도 함께할 생각입니다."

―혜민 스님이 하는 학교라면 사람이 많이 몰릴 텐데….

"일단 그룹 상담 치유를 중심으로 하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처럼 아이를 잃은 부모님 중 심리 치유를 희망하시는 분들을 사전 인터뷰를 통해 모집해 최소 석 달 동안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도록 도울 계획입니다. 나중엔 암과 같은 병을 앓고 마음이 불안하신 분들이나, '왕따'의 상처 때문에 아픈 청소년들, 외롭게 혼자 사시면서 치유를 필요로 하는 분 등 여러 그룹을 만들어 돕고 싶습니다."

혜민 스님과의 대화는 뜻밖에 최근 끝난 화제의 드라마 '미생'에까지 이어졌다. 바쁜 와중에도 인터넷을 통해 모두 챙겨 보려고 애썼다고 했다.

―의외인데요.

"요즘 말로 '본방 사수'는 못 했지만 빠짐없이 봤어요. 직장인의 고충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제가 간접적으로라도 그분들의 삶을 느껴 보고 싶었어요."

―제일 좋았던 캐릭터는요.

"오상식 차장이죠. 마음이 따뜻한 캐릭터였어요."

―미생(未生), 완생(完生)은 바둑 용어이지만 불교적 느낌도 들어요.

"불교에서는 중생들이 모두 미생(未生)이 아닌 완생(完生)의 성품을 갖고 있는데 그걸 잊고 산다고 하죠. 생각이라는 구름을 일으킨 마음 하늘이 바로 자신인데 기기묘묘한 구름 모양에 현혹돼, 푸른 하늘 바탕은 잊고 구름만을 자신으로 동일시해요.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 속에서 존재하는데 그걸 믿지 못하고 내가 노력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얻어야 한다고 착각한다는 말이지요."

―스님을 여러 번 만나면서 꼭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어요. 책 제목처럼 스님도 너무 달려서 '멈춰야 한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끌려 다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죠. 사실 봉암사 선방에 계속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죠. 멈춰서, 어른 스님들에게 점검받고, 존경하는 스님들의 말씀을 귀담아들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한마디로 나를 먼저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고 그래야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처럼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돼 살 수가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죠."

―베스트셀러 저자, 사찰 부주지, 학자와 교수…. 여러 직함을 가졌는데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드나요.

"저는 '마음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특히 같은 수행자들과 법담(法談)을 나눌 때가 좋아요. 그래서 봉암사 선방을 1년에 한 번씩이라도 꼭 찾는 이유죠."

―'멈추면…'은 200만 부 이상 팔렸죠. 다음 책에 대한 궁금증이 많습니다.

"사실 제가 정말로 쓰고 싶은 책은 마음 수행에 관한 책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본래 성품을 깨닫는지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요. 그런데 수행에 관한 책은 일반 사람들에게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요.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는 것이 능력인데 제가 그 능력이 될지 모르겠고요. 이 책은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님은 책이나 트위터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거꾸로 영향 받은 세 사람만 꼽아 주세요.

"아무래도 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아들을 당신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하지 않고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신 분이세요. 그 다음은 은사인 휘광 스님요. 제 은사 스님은 주변 사람들의 잘못도 잘 품어 주시는 분입니다. 출가 초기에는 대나무처럼 곧은 스님상만 생각했는데 은사를 모시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최근엔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사실 높은 자리 올라가면 갈수록 자신을 낮추기 힘들어요. 그런데 교황께서 낮추니 더 울림이 크고 공감이 크다는 걸 몸으로 보여 줬어요. 올 6월에 로마에서 교황을 뵐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모두 행복을 꿈꾸지만, 정작 행복하다는 사람은 매우 드문데요.

"행복하기 위해선 지금 행복해야 하는데 우리는 보통 어떤 목표를 설정해 놓고 미래로 행복을 미루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그 목표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만족은 아주 잠시고, 그것보다 더 높은 목표가 다시 생겨 행복이 또 미래로 가 버립니다. 하지만 행복을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과의 따뜻한 만남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바로 여기서 행복할 수 있어요. 다른 목적 없이 만남 자체가 즐거운 만남을 자주 가지세요. 저는 꽤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끼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니 무엇을 성취해서가 아니라, 제가 제 주변 사람들을 정말로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더군요."

―스님 스스로는 행복을 어떻게 찾아가고 있나요.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행복해지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걸 깨달은 뒤 최근에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시간을 들이는데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렸어요. 그리고 또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고 주도하는 삶을 살도록 봉암사에서 수행도 하고 이번처럼 마음치유학교도 만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종교인들 중 정치적으로 활발하게 발언하는 분도 있습니다. 스님은 우리 정치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정치인이 아니고 종교인이기 때문에 저의 어떤 발언이나 행동이 정치적 색깔로 해석되는 걸 원치 않아요. 정치에 관심이 있었다면 정치인을 했지 종교인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한마디를 해야 한다면 우리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고 타협하는 문화가 좀 약한 것 같아요. 자신은 오로지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나 불의로 보면 타협은커녕 공존 자체가 어려워지니까요. 나와 다른 이웃을 없애야 되는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야 하는 존재로 볼 때 현실적인 대안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수행과 사회적 활동의 '황금비율'이 있을까요.

"제 경우 은둔과 고립이 수행의 목적은 아닙니다. 공부가 조금 부족해도 사람들을 돕고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수학 할 수 있으면 초등학생은 가르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꼭 박사 학위를 받아야 그때부터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니죠. 조금 부족해도 가르치면서 함께 배우면 서로 나아질 수 있어요."

―새해 덕담을 부탁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 나고, 관계가 힘들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잠깐 멈춰서, 휩쓸리는 게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하세요. 그리고 더욱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세요. 자신을 먼저 아끼고 친절하게 대하면 타인에게도 그럴 수 있습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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