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지금 싸우자는 거예요?" 기자 없는 언론, 허수아비 박근혜

2015. 1. 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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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 대통령의 문제, '불통'과 '비밀주의'가 아니다

[오마이뉴스 강인규 기자]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거 어떻게 하면 돼?"

"잘."

이걸 농담이라고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다.

2012년 여름, 텔레비전을 켜자 한 유력한 대선후보가 나왔다. 대통령이 되면 어떤 경제를 어떻게 일으켜 세우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원칙대로 잘 해서..."라고 답한다. 이어 '농어촌활성화 대책'에 대한 답은 귀를 의심케 했다. 그것도 역시 "원칙대로 잘 해서..."였기 때문이다.

미디어 학자인 나는 텔레비전이 구체적인 사실을 전하기에 적합한 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인쇄매체와 달리 이미지와 감성 전달에 유리하고, 따라서 사람들의 객관적 판단을 흐리기 쉬운 게 텔레비전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 이후 나는 공영방송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방송이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이라면, 진행자가 앞의 상황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질문을 바꾸어 상대방에게 구체적인 답을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 한들, 어떤 답변이 나왔겠는가?

그 방송을 보기 훨씬 전인 2004년, 저널리즘의 기본에 충실한 인터뷰를 한 언론인이 있었다. 상대에게서 두루뭉술한 대답이 나오자 재차 질문을 했고, 그가 다시 같은 답변을 되풀이하자 정중하게 질문을 바꾸어 물었다. 그러자 상대는 이렇게 답했다.

"저하고 지금 싸움하시는 거예요?"

그런 뒤 얼마 후 '원칙대로 잘 해서...'라는 인터뷰를 보았고, 그 해가 바뀌기 전에 그 후보는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거 어떻게 하면 돼?' '잘.'

근혜 대통령의 당선은 이 농담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음을 증명했을 뿐 아니라, 이 농담을 잘 포장하면 국가수반까지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결과를 목격하고 있다.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문화, 교육 모든 면에서.

무능한 대통령, 무책임한 언론

▲ 세월호 가족, 박 대통령을 향한 절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9일 국회를 방문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후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국회 본청을 나서자,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농담'의 결과는 이 참담한 현실에 대한 책임이 지도자뿐 아니라, 언론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세월호 사건 당일 '전원구조'라는 터무니 없는 오보로 무능한 정부를 더 나태하게 만들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켜놓고도 정부의 허물을 덮고 감추기 바빴던 게 그들이다.

한국 언론의 문제는 권력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부가 낡은 선박에 대한 규제를 풀 때 질문하지 않았고,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질문하지 않았으며, 대통령이 유족들에게 한 약속을 어겼어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언론이 대통령이 집권 공약을 모두 뒤집었어도 질문하지 않았고, 국민 다수가 고통받는 현실에 대해서도 질문을 회피하고 있다.

언론은 '질문하지 않은' 대가로 정부로부터 종편방송 허가를 받고, 광고를 확보하고, 청와대 대변인과 국회의원 자리를 얻었다. 이렇게 정부와 한 몸이 된 언론이 날카로운 질문으로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들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이로써 '편한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불편한 사람을 편하게 한다'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한국에서 '편한 사람은 더욱 편하게, 불편한 사람은 더욱 불편하게'로 바뀌었다.

과거 대통령이 곤란한 (따라서 제대로 된) 질문을 받고 '싸우자는 거냐'고 응수했을 때, 사람들은 '발끈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나는 이 별칭이 꼭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발끈'한 이유가 감정적이거나 인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달리 반응할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이러니 대선토론 당시 그를 벼랑까지 몰았던 진보당 이정희 의원은 얼마나 미웠겠는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할 수 있는 솔직한 답변은 '모르겠다'나 '생각해본 적이 없다'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 박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야당 대표였고, 질문 내용은 핵심적인 경제살리기 정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 대표가 구체적인 정책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답변이 '모른다'이든, '싸우자는 거냐'든, 아니면 '잘...'이든 비극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 주위에 정책에 대해 섬세한 지식과 판단이 요구되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유력 정치인을 이 지경까지 내버려둔 것은 무능한 측근 정치인들과 '질문하지 않는' 한국 언론이다. 가혹할만큼 검증해야 하는 대선후보를 불러놓고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아우라"라고 칭송하는 게 우리나라 언론의 현주소다. 이때 기회를 놓친 라이벌 채널은 집권 뒤 "겨울왕국 엘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공통점"으로 맞섰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낸 종편채널 TV조선.

ⓒ TV조선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낸 종편채널 '채널A'.

ⓒ 채널A

갖가지 무기로 상황 모면, 비극적

대통령이 가끔 눈으로 발사하는 '눈 레이저 광선'은 '싸우자는 거냐'의 비언어적 메시지이고,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의 솔직한 표현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갖가지 '무기'로 상황을 모면하도록 허락한 결과는 비극적이며,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의 비극이다. 지도자로서 필요한 지식과 판단을 키울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측근 몇 명이 국정을 쥐고 흔드는 '허수아비 대통령'이라는 평가까지 받게 되었다.

같은 이유로, 언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불통'이니, '비밀주의'니 하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소통하고 드러내려면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통령은 그럴 내용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통령과 지지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것은 지난 2년 넘게 이 사회가 지켜본 바다.

공개할 수록 공개할 게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 역설은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민과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청와대가 '콘텐츠 부재'를 만회하기 위해 대통령의 '매력'과 맹목적 권위를 강조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눈물을 흘렸을 때, 나는 그 기이함에 놀랐다. 여타의 논란, 예컨대 시점이 사고 발생 후 한 달이 지난 뒤였다든가, 선거를 코 앞에 둔 상황이었다든가, 청와대가 지정한 방송사에서 눈물 줄기를 확대화면으로 잡았다든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지난해 5월 19일, 대통령의 사과방송이 나오기 직전에 CBS의 기자가 라디오를 통해 청와대의 분위기를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대국민 호소력이 커진다는 의견을 개진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대통령이 참모진의 의견을 수용해 단 한번도 없었던 눈물을 보일지 지켜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의 눈물의 '진위'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국민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웃을 지도자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기이하게 느낀 것은 참모진이 대통령에게 특별히 '감성적 접근'을 요구했다는 사실이었다. 측근이 감정표현까지 주문하는 현실은, 대통령의 정책이나 연설문만이 아니라, 눈물까지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제 측근 뿐 아니라, 종편까지 대통령의 입과 머리를 자임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폭풍 앞의 허수아비

한국은 지금 여러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가장 가깝게 국민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다. 생산활동인구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2014년 10월 기준으로 140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30%에 가까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하지만(2010년 기준), 이들 가운데 절반이 한 달에 100만 원도 벌지 못한다.

이런 경제구조 속에서 경제력을 잃는 순간 어떤 삶이 닥쳐 올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60대 이상 노인 절반이 빈곤층이며, 노인인구 자살률은 OECD 평균의 네 배에 달한다. 물론 고통은 이 '좌절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잘 알려져 있는대로,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며, 경제활동가능인구(15-64세)의 자살률 역시 세계 최악이다.

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더 나은 경제적 기회와 사회안전망을 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은 대거 증발하거나 후퇴했다. 자영업자의 고통은 지금도 비명을 지를 정도지만, '베이비 붐' 세대의 끝자락에 태어난 1960년생 취업자들이 퇴직하면 경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안전하게 돈을 벌기 원하는 재벌 3세들이 제조업을 포기하고 식음료업에 뛰어들어 자영업자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안보 문제도 심각하다. 현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함으로써,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안보가 좌우될 위험성이 높아진 것이다. 논란이 된 영화 <인터뷰>는 이런 우려가 현실임을 보여주었다. 별도의 기사로 자세히 쓰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느낀 점은 '진보적'이라고 자부하는 할리우드조차 북한에 너무나 무지하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북한' 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대한 문화적, 인종적 편견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어떤가. <오마이뉴스>의 신은미 시민기자는 북한을 방문해, 평범한 시민이 바라본 북한의 현실을 전해 주던 귀한 증인이었다. 그의 글은 책으로 출판되었고,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어 전국 도서관에 배포되었다. 심지어 정부는 신은미 기자를 통일부 홍보 영상에까지 출연시키기까지 했다. 그랬던 그가 종편 보도 하나로 '종북'이 되었고, '통일은 대박'이라던 대통령이 느닷없이 그 말을 따라쓰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에게 '20세기 중반에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갈라놓았다'고 말하면 눈을 휘둥그레 뜨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미국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미국과 북한이 관계를 개선하도록 도와야 하지만, 우리는 정 반대로 가고 있다. 무지와 혐오를 요구하는 것이고, 이 두가지가 결합될 때 나타나는 것은 파국을 부르는 어리석은 판단 뿐이다.

결국 국민이 똑똑해지지 않는 한, 이 사회는 망가질대로 망가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비선세력'과 달리, 국민은 대통령에게, 정부에게, 국가에게 합법적으로 요구할 권리가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지, '십상시'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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