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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서류만 보고 평가..아이 비명 키웠다

오현태 입력 2015. 01. 15. 18:46 수정 2015. 01. 18.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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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어린이집에 95점.. 못 믿을 정부 인증제
서류 꾸미기에 교사들 올인..인증 갱신땐 보육 나몰라라
사고 빈번해도 '안전 우수'..믿고 맡겼던 엄마들만 분통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인천 송도국제도시 입주민연합회의 한 학부모가 15일 보육교사의 어린이 폭행 사건이 발생한 문제의 어린이집 인근에서 '때리지 마세요, 안아주세요,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뿔났다. 어린이 학대 사건이 발생한 인천 연수구의 K어린이집이 보건복지부의 '어린이집 인증평가'에서 95.36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불신감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빵점짜리' 어린이집을 최상급으로 평가한 복지부는 평가인증을 위해 10년간 수백억원의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서류 중심 평가로 실제 보육서비스의 질을 평가하지 못하고 있어 인증제도를 이번 기회에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5일 복지부 등에 따르면 2006년부터 운영 중인 평가인증제는 보육환경, 운영과정, 보육과정 등 6개 영역에서 어린이집 원생 규모에 따라 수십개의 항목으로 평가한다. 2013년 기준으로 전국 4만3591개 어린이집 중 3만955개가 인증을 받았고, 평균 인증점수는 92.94점이다. 복지부는 올해 평가인증에 쓸 예산으로 전년(86억원) 대비 14%(12억원) 늘어난 98억원을 책정했다.

문제는 평가가 대부분 '서류 평가'에 그쳐 교사들이 보육에 매달려야 할 시간만 뺏고 있고, 평가점수와 어린이집의 서비스 질은 별개라는 점이다.

서울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장모(53·여)씨는 "아이를 방치하고 서류작업에 오래 매달릴수록 인증 점수가 높아진다"며 "평가인증 점수가 어린이집의 질과 비례한다고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각 어린이집이 3년에 한 번씩 받는 평가인증 기간이 돌아오면 교사들은 본업이 바뀐다. 영유아 권익 단체인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행복한 세상)이 지난해 어린이집 교사 817명을 조사한 결과 교사들은 평가인증 준비로 평균 4.82개월을 매달리고 있다. 평가자가 도착하기 1개월 전부터는 하루 평균 12시간47분을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육을 뒷전으로 미뤄놓고 인증 조사를 준비하다가 인증이 끝나면 원래대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행복한 세상의 조사에서 평가항목의 52.7%가 인증이 끝난 후 기준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증제도가 허술하다 보니 점수가 높은 어린이집에서 빈번하게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서모(당시 2세)군이 낮잠을 자다가 사망한 서울 동대문구의 한 어린이집의 인증 점수는 93.94점이었다. 서군의 어머니 문모(34)씨는 인증 점수를 믿고 이 어린이집을 일부러 선택했다가 아들을 잃었다. 문씨는 "살고 있는 아파트에 어린이집이 있었지만 점수가 높아 좀 멀어도 믿고 맡겼다"며 "평가인증은 서류상 인증일 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당국은 평가인증이 어린이집 선택기준으로서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을 인정했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인증제도로 교사들의 개인성향을 파악할 수는 없다"며 "앞으로는 아동학대 관련 부분까지 평가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양미선 동향분석통계팀장은 "평가인증에서 서류준비 부담을 줄이고 부모들이 보고 싶어하는 지표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수 기자 v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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