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소녀의 '두 문장', 독일을 달구다

뮌헨·남정호 편집위원 2015. 1. 3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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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쾰른의 한 김나지움(인문계 중등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17세 여학생이 학교 교육을 비판하는 글 두 문장을 트위터에 올린 뒤 격렬한 교육 논쟁이 독일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촌철살인의 글을 통해 불과 하룻밤 사이에 '트위터 스타'가 된 문제의 학생은 '나이나 K'라 불린다. 미성년자라서 언론에는 실명이 나오지 않는다. 나이나가 트위터에 게재한 글은 독일어로 단 22자에 불과하다.

'나는 곧 18세가 된다, 하지만 세금, 집세, 보험 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시를 분석하는 데는 능하다. 그것도 4개국 언어(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학교에서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산지식을 배울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나이나는 이 글을 1월10일 밤 트위터에 올렸다. 1월16일까지 5일 동안 리트윗 건수만 1만5000여 회. 나이나의 팔로어는 1만7000명이나 늘어났다. '쓰나미 같은 반응'이라는 평가다.

나이나의 문제 제기는 연방교육부와 연방교사연맹에서 주정부 문화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교육정책 담당자들과 언론·교육계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은 물론 SNS에서도 열띤 찬반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나이나는 인기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일약 교육 개혁 '프런티어'로 떠올랐다.

조만간 아비투어(졸업시험)를 마무리하면 곧바로 부모 곁을 떠나 혼자 살아야 할 형편이지만 '학교에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는 나이나의 불평은 특히 김나지움 상급반 학생들의 전폭적인 동의를 얻었다. 하르디 H(17)라는 학생은 '딱 맞는 말이다.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물리, 화학, 생물, 수학 같은 것들이 학과목의 9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동조했다. 18세인 알렉산더 코올리도 '100% 공감한다. 태양의 직경이 얼마인지는 아는데, 은행거래나 주택전세법 같은 것에 대해선 깜깜하다. 학교 교육이 미래 인생에 너무 무관심하다'라고 나이나의 문제 제기를 반겼다.

독일은 행정구역마다 채택 교과목 달라

요한나 반카 연방교육장관은 '나이나가 제기한 논란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라며 김나지움 교과목을 좀 더 검토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실비아 뢰르만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교육장관도 '일상생활에 관한 교육을 좀 더 늘리려고 생각한다'라며 문제 제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행정구역마다 채택된 교과목이 다르며, 교과목 개정 역시 10년 단위로 결정되기 때문에 조속한 개선은 어려우리라 보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독일 학생 가운데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전국적으로 연간 12만 건 이상이라는 사실이 새로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나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코라 A(17)는 '모든 것을 학교에서 배울 수는 없다. 집의 부모로부터 배우라'며 일침을 놓았다. 에스터 아카(18)도 '학교를 곧 졸업할 학생이라면 아기가 제 발로 서는 것을 배우듯 스스로 생활지식을 익혀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2014년도 '올해의 교사'로 선정된 베를린의 로베르트 하인리히 씨는 '생활지식은 학생 스스로가 배워야 한다. 인터넷을 통해 집세나 세금, 보험 등에 대한 지식을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나이나가 다니는 학교의 모니카 브루바운 교장 역시 '학교가 모든 걸 다 가르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17세 소녀의 주장을 무시하지 않고 정부와 국회·교사·학부모·학생 등이 광범위하게 진지한 토론을 벌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독일 사회의 건전성을 입증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뮌헨·남정호 편집위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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