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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내놓은 '부자 증세' 모범답안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입력 2015. 01. 31. 12:54 수정 2015. 01. 3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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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월20일(현지 시각) '부자 증세' 등을 통한 중산층 살리기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방송으로 생중계된 새해 국정연설에서 남은 2년의 국정 운영 방향을 밝히면서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앞으로 10년간 부자의 세금을 올려 3200억 달러 재원을 마련해 보육이나 교육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공화당이 즉각 거부 태세를 밝히면서 관련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중산층 살리기'는 2016년 11월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공화당의 발목을 잡는 동시에 우군인 민주당에 '중산층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굳힐 만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부자 증세안의 핵심은 명쾌하다. 부부 합산 연봉이 연간 50만 달러(약 5억4000만원) 이상인 경우 자본소득세를 현재의 23.8%에서 28%로 늘리는 구상이다. 또 상속을 받고도 세금을 회피할 수 있는 현행 세법의 허점을 없애고, 자산 규모 500억 달러 이상인 100대 대형 금융기관의 부채에 대해 0.07%의 세금을 매겨 앞으로 10년 동안 3200억 달러(약 345조원)에 이르는 증세를 꾀한다는 계획이다. 자본소득세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15%였지만 그 뒤 20%로 올랐고, 오바마 케어(건강보험 개혁법)가 시행되면서 다시 23.8%로 증액된 바 있다. 자본소득세가 오바마 대통령의 구상대로 28%가 되면 임기 중 두 배 가까이 오르는 셈이다. 하지만 백악관은 1980년대 공화당이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도 28%를 거뒀다며 유별난 게 아니라고 본다.

이번 증세안의 핵심은 상속세 개편이다. 지금까지 상속에 따른 관련 세법의 허점 때문에 천문학적인 자본소득세가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예를 들어 A씨가 과거 10만 달러에 산 주식이 100만 달러로 불었는데, 사망하면서 이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준다고 하자. 자본소득세의 산출 시작점이 상속 시점과 동일한 현행 세법에 따르면 A씨의 자식이 상속받을 시점의 100만 달러가 새로 취득한 '자본'이기에 100만 달러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된다. 기존에 불어난 90만 달러의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은 면제된다. 이런 허점을 없애려는 게 오바마 대통령의 증세안이다. 실제로 의회예산국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상속세의 허점을 노리며 빠져나간 자본소득세가 500억 달러에 달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 증세 카드를 빼든 것은 소득 계층 간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다. 현재 미국인 연평균 급여는 구매력 기준으로 3만4000달러(약 370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역으로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의 가구당 연평균 수입은 110만 달러(약 12억원)를 넘어섰다. 5년 전부터 미국 국민의 1%가 국민총생산 증가의 90%를 차지했고, 미국 국민의 90%가 남은 10%를 나눠 가졌다. 고작 부자 400명이 1억5000만명의 미국인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로버트 라이시 '미국인은 자신들의 부를 공유해야만 한다'. <렉스프레스>, 파리, 2013년 12월2일). 게다가 미국 최상위층의 5%가 보유한 주식은 전체 주식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산층을 도와 소득불균형을 해소하겠다고 나섰다. 백악관은 연소득이 200만 달러가 넘는 최상위 1%만이 자본소득세 인상과 상속세 누수 방지를 통한 추가 세 부담을 안게 되리라고 밝혔다. 계획대로 될 경우 국민 99%에는 세 부담이 없으며 오히려 지원이 늘어난다. '중산층 살리기' 핵심안 가운데 맞벌이 부부에 대한 지원이 눈에 띈다. 이들에게는 연말정산 시 500달러를 크레디트로 제공한다. 또 5세 이하 유아를 둔 부모에게는 현행 1인당 1000달러인 보육비 세금 감면 혜택을 앞으로 최대 3000달러까지 제공한다. 노동자에게 1년에 최대 일주일간 유급 병가를 제공하며, 600억 달러를 투입해 2년제 전문대학에 다니는 학생의 학비도 전액 면제한다.

'부자 증세'에 담긴 오바마의 정치적 계산

오바마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중산층 경제 육성 정책을 펼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7회, '노동자층'이란 표현을 9회, '가족'이란 단어를 16회 썼다. 또 '경제'라는 단어를 29회 사용했다. 이때 그는 '과연 우리는 극소수 사람만 잘나가는 경제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노력하는 모든 사람의 소득을 증대하고 기회도 제공하는 경제를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공화당은 지도부에서 평의원에 이르기까지 반발했다. 자본소득에 대한 증세가 기업인의 투자 의욕을 저하시켜 경제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공화당이 강하게 거부하면 부자증세안은 의회를 통과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발표를 강행했다. 이에 대해 공화당의 마이크 리 상원의원은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부자 증세안은 2016년 대선을 겨냥한 당략적 정치다. 공화당은 이런 걸 토론하는 데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우파 논객으로 알려진 마크 티센 정치 칼럼니스트는 '뻔히 안 될 줄 알면서도 부자 증세안을 꺼낸 오바마의 행동은 치밀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의 부자 증세안이 전략적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다. 부자와 힘 있는 자의 정당이라는 오명을 들어온 공화당은 그동안 이런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일부 의원은 저소득층에 대한 세금 감면을 지지하기도 했다. 공화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낸 밋 롬니는 소득불평등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대다수 공화당 의원은 부자 증세를 통한 중산층 지원에 대해 극구 반대한다. 여전히 '부자 정당'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부자 증세안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이 노리는 게 공화당의 '약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말로는 중산층을 위한다면서 실제로 부유층 감싸기에 급급한 공화당의 이중적 면모를 계속 부각시키면 2016년 대선 고지를 선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2년 대선 토론 당시, 소득불평등 논쟁을 통해 오바마 후보가 밋 롬니 공화당 후보를 완파해 득을 보았다. 하버드 대학 로버트 푸트남 교수는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소득불평등 문제는 2016년 대선을 가늠할 최고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누구든 대선전의 입장권을 얻으려면 이 문제를 다루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차기 유력 주자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이 발표된 직후 '오바마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경제 방향을 제시했다. 우리가 중산층을 위해 한발 더 나아가 일을 도모할 때다'라고 반색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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