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일보

<저출산 대책 백지서 다시 짜라>"취업난 탓 육아 꿈도 못꿔.. 내 고통 '代물림' 싫다"

이용권기자 입력 2015. 02. 03. 11:41 수정 2015. 02. 03. 15:22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中) 고용 불안이 '출산 파업'으로

90년대 말 출산율 급속 하락 換亂 뒤 구조조정 시기 일치 낮은 임금-불안정한 신분이 결혼·육아 포기하게 만들어 주변 '일하는 엄마'애환 보며 두려움·걱정 앞서 임신 못해

고용이 불안하면 출산율도 떨어진다. 일자리가 불안정하면 자녀를 가져야 하는 젊은 세대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간 1.5명 수준을 유지하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1990년대 말부터 급격하게 하락하는데, 이는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가 본격화된 시기와 일치한다. 합계출산율은 1970년 4.53명에서 1977년 3.99명으로 떨어진 뒤, 1984년 1.74명까지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1997년까지 1.5명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겪던 1998년 합계출산율이 1.448명으로 1.5명 밑으로 떨어진 뒤, 미국 9·11 테러사건의 여파로 전 세계적 경제위기가 나타났던 2001년에는 합계출산율이 1.297명까지 내려앉았다. 이후 1.1명 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정부의 각종 저출산 대책이 추진되면서 2012년 1.297명까지 근접하면서 다시 회복되는 듯했지만, 2013년 다시 1.19명으로 떨어졌다.

고용불안의 가장 큰 현안은 '비정규직 문제'다. 고용노동부가 추산하는 비정규직 규모는 2014년 8월 기준 32.4%이지만, 통계청에서는 35.2%, 한국노동사회연구원은 45.4%로 추산하고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 비정규직 규모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정규·비정규직 여부를 떠나 고용 안정성과 질이 매우 낮은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출산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은 임금 자체가 낮고 신분이 안정되지 못해,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과 육아를 포기하면서 저출산의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사회보장학회가 개최한 '한국사회의 저출산, 해법을 찾는다' 세미나에서는 비정규직 여성들의 불만이 공개적으로 표출됐다. 6개월간 공기업 청년 인턴 후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아 다시 구직활동을 하는 29세 여성은 "취업도 어려운데 육아는 남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무엇보다 아이에게 내가 겪는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33세 비정규직 여성도 "비정규직이라는 상황 때문에 주거나 결혼, 출산, 자녀계획 같은 인생의 장기 계획을 전혀 세울 수 없다"며 "비정규직을 위해 출산·육아 대체인력을 뽑아주는 회사는 거의 없어서 비정규직 신분으로의 출산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결혼 후 자녀가 없는 32세 직장 여성도 "일하는 엄마들의 애환을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에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 애를 쉽게 가지지 못하고 있다"며 "양가 부모님이 모두 지방에 거주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어떻게 아이를 키울지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본인을 경력단절녀라고 소개한 42세 여성은 "한동안 육아에 전념하다 이제는 경제적 지원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오전에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있다 해도 보수가 시간당 5000원 정도여서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선뜻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또 민간기업은 사회 대타협을 통해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하거나, 기업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부가 2015년 경제운영방향에서 '비정규직 근로자 사용기간 연장'을 내놓으면서 비정규직 근로자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까지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경영계는 물론 노동계에서도 '장그래 양산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최근 비정규직의 고달픈 삶을 그린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를 빗대어 정부 대책이 비정규직을 더욱 늘리는 것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수익추구가 최우선인 민간기업은 차치하더라도, 공공부문조차 비정규직에 대해 외면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서울시, 부산시 등 10개 지방자치단체는 약 8년간 노인 등 취약계층의 건강관리를 돕던 방문간호사 500명 이상을 지난해 12월 31일 대량 해고했다.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게 되자 계약을 해지해, 사실상 해고한 것이다. 복지부와 고용노동부가 각 지자체에 이에 대한 개선을 권고했지만 강제할 권한은 없다.

저출산 해소를 위해서는 정부가 20~30대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고용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 한 비정규직 여성은 "결혼해야 할 시기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일하고 있어도 비정규직이거나 안정적이지 않으면 결혼을 해서 애를 낳을 수가 없다"며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젊은이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Copyrightⓒmunhw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