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SBS

[취재파일] 이완구의 민낯, 언론의 민낯

조성현 기자 입력 2015. 02. 07. 21:36 수정 2015. 02. 07. 22:21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2월 6일 국회 출입기자들은 두 번 실망했습니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언론관에, 또 그것이 보도되는 과정에 기자들은 실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완구 후보자는 지난달 말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서 일명 '뻗치기'를 하던 정치부 기자들과 번개 오찬을 했습니다. 김치찌개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기엔 중앙 일간지 기자 3~4명이 동석했습니다. 평소 출퇴근길 코멘트 정도만 가능했던 취재원이 불쑥 식사를 제안해왔으니 기자들 입장에선 굉장한 호재였을 겁니다. 같이 식사하면서 의혹들에 대한 해명도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정견도 들어볼 수 있으니 기자라면 거부하기 힘든 '번개' 자리였을 겁니다.

이 자리에서 이완구 후보자의 언론관이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보도 외압은 물론, 기자 인사 개입까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너무나 태연하게 얘기했습니다. 방송사에 전화해 "패널을 넣어라. 빼라." 얘기해 실제 그렇게 됐고, 또 간부에게 전화해 "걔는 되고, 걔는 안돼"라며 인사에 개입한다는 얘기는 믿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 후보자는 원내대표 시절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을 포함하는 문제를 놓고 언론의 자유를 강조해왔던 터라 이런 발언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기자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는 사적인 자리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를 접하면서 답답한 마음에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라면서 "그럼에도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못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저의 부덕의 소치"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오각성하는 마음으로 사과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안이 보도되는 과정도 주목해볼 만합니다. 사석에서 한 발언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통째로 녹음되고, 그 녹음 파일이 특정 정당에 유입됐다는 점입니다. 해당 의원실에서는 "녹음한 기자의 동의를 구해 제3자를 통해 파일을 입수했다"고 설명했는데, "기자가 몰래 녹음해 (직접이든 간접이든) 정당에 넘겼다"는 사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후보자는 총리 후보자로서 공인 중의 공인인 만큼 검증의 대상인 것은 분명합니다. 언론이 검증 대상인 공인의 부적절한 발언을 보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의무입니다. 통신비밀 보호법상 자신이 포함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불법도 아니어서 이 기자의 녹취 행위가 현행법 위반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기자'가 당사자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하고, 이를 특정 정당에 전달한 행위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깁니다.

기자들은 취재원과 수시로 접촉합니다. 함께 늦게까지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취중진담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런 기자들의 가장 괴로운 임무 가운데 하나가 '복기'입니다. 취재원과 나눈 얘기를 팩트와 맥락을 되살려 최대한 그대로 되살리는 일은 저처럼 기억력이 좋지 않은 기자들에겐 가히 고문과 다름없습니다. 그래도 독자를, 시청자를 대신해 만나는 취재원의 생각과 언행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노트북 앞에 앉아 머리를 싸매는 기자들이 대부분입니다.

몰래 녹음한 것도 모자라, 이를 특정 정당에 건넨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오해를 사기 충분한 사안입니다. 차라리 녹취를 정당에 넘기지 말고 자사 홈페이지에 올리고, 멋지게 단독보도를 했으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면 정당 보다는 제3의 중립적인 단체나 기관의 힘을 빌렸으면 어땠을까요.

한 국회의원은 녹취가 공개된 데 대해 "이렇게 되면 누가 기자들과 사석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느냐. 공식적인 브리핑과 기자회견 외에 기자 접촉을 꺼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취재원들이 기자를 멀리하고, 공식적인 언급만 하는 상황 속에선 기자들은 사안의 이면을 알아내기 더 어려워지고, 그건 독자나 시청자의 알 권리와 직결됩니다.

물론 이번 사안의 본질은 총리의 언론관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곁가지라 하더라도, 언론의 취재 관행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계기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조성현 기자 eyebrow@sbs.co.kr

저작권자 SBS & SBS Digital News Lab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