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설치 호들갑 떨더니.." 엄마들 부글부글

채지은 2015. 3. 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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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설치법안 3표 차이로 부결

아동학대 불거질 때 너도나도 약속, 처리 합의하고도 5번째 좌절

"교사 인권? 말 못하는 아이는?" 학부모·시민단체 비난 목소리

"이런 법도 하나 처리 못하고 정치권이 뭐 하는 지 모르겠다."

"CCTV가 없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게 되어 법안 통과만 기다렸는데 분통이 터진다."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못하고 좌절되자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학부모들은 논란 끝에 본회의에서 단 3표 차이로 법안이 부결된 것에 허탈해하고 있다. 정치권이 CCTV 설치 의무화법안을 부결시킨 것은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다. 2일부터 18개월 된 아들을 가정형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김지은(36)씨는 "선생님 인권을 중시해 부결시켰다는데, 당초 말 못하는 아이들이 학대당할 경우를 우선 고려해 법안을 만든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20개월 아들을 둔 박민영(31)씨는 "주먹으로 후려치고 곰팡이 핀 급식을 주는 걸 엄마들이 어떻게 알겠냐"며 "CCTV가 있으면 그래도 나중에 잘못을 따질 수 있는데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고 탄식했다.

CCTV 의무화는 지난 1월 발생한 인천 송도 어린이집 폭행 사건 이후 잇따른 아동학대 사례에 국민적 분노가 커지자 정치권이 너나 할 것 없이 약속한 사안이다. 여야 원내대표는 본회의 전날 관련 법안 처리를 약속하는 합의문까지 작성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한 관계자는 "CCTV뿐 아니라 보조ㆍ대체교사 의무화나 신고 교사에게 불이익을 주면 처벌하는 조항까지 꼭 필요한 부분이 많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CCTV 설치는 2005년 대구 어린이집 원장이 자매를 폭행한 사건 때 처음 불거지면서 관련법안이 발의됐으나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0년 12월 인천 어린이집 원장 모녀의 상습폭행ㆍ학대 사건 때도 거론됐으나 역시 벽에 막혔다. 교사인권 문제를 고려하자는 의견과 어린이집 원장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법안 상정도 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수 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그때마다 정치권은 부결시키곤 했다. 그렇게 10여 년간 미적대던 정치권은 최근 잇따른 학대 사건으로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이번에야 말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또다시 말을 바꾼 꼴이 됐다.

학부모들과 시민단체들은 CCTV가 아동학대의 근본해결책이 아니라거나 아동보육 현장을 교사의 사생활 공간이란 정치권의 부결 논리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시민모임인 '하늘소풍'은 4일 성명에서 "아동 인권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며 "의원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영유아에 대한 보호와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결과"라고 밝혔다. 초등학교 1학년과 네살 딸 둘을 둔 사명옥(35)씨는 "어린이집 단체의 로비 때문에 부결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CCTV가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서도 아동학대 뉴스에 불안했는데, 그렇지 않은 부모들은 불안감이 오죽하겠냐"고 말했다. 그는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한국보육교직원총연합회 등 교사인권 침해소지를 들어 CCTV 의무화 법안을 반대하는 쪽도 있으나 다수 여론은 찬성 쪽이었다. CCTV 설치로 어린이집 학대를 예방할 수는 없지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자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공감이 컸기 때문이다.

비난의 목소리는 경찰로도 향한다. 경찰청이 지난 2일 발표한 전국 5만여 개 보육시설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적발된 아동학대는 단 2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강신명 경찰청장까지 나서 CCTV를 공개하지 않는 어린이집은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한 으름장이 무색할 정도로 경찰 조사가 겉핥기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나 정치권으로선 어린이집 폭행사건이 날 때마다 근본대책을 고민하기보다 가장 손쉬운 CCTV 설치 의무화를 들고 나왔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부결 여파로 CCTV 설치 계획을 세웠던 어린이집들은 하나 둘 계획을 철회하고 있다. 인천 송도에서 10년째 가정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박모(54) 원장은 "학부모들이 입학 상담 때 먼저 요구한게 CCTV 설치였는데, 법안도 부결됐고 선생님들도 반대해 지금은 유보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어린이집도 CCTV를 달 계획이라고 밝혔다가 4일 철회 입장을 밝히는 등 어린이집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부모들은 CCTV가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길 원하지만, 전체 어린이집의 20%에만 CCTV가 설치되어 있다. 정부는 자발적인 동참을 권유하고 있지만 예산 보조 없이는 현실적으로 어린이집을 움직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치권은 다시 4월 처리를 약속했지만 호들갑만 떨고 정작 관련 법안 처리를 못했다는 비난을 면키는 쉽지 않아 보인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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