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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법정 통곡 "사랑? 그건 성폭행이었다"

손현성 입력 2015. 03. 05. 18:10 수정 2015. 03. 0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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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27살 차이에도 사랑한 사이"

무죄 취지로 돌려보내 논란된 사건

피해자, 파기환송심서 눈물의 호소

"무서워서 어쩔 수 없었어요."

4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법정 312호. 4년 전 27살이나 많은 낯선 아저씨를 만나 임신한 뒤 칼로 손등을 긋기까지 했던 A양의 통곡에 법정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날 A양은 법정에서 15살 여중생 시절 악몽을 입 밖으로 꺼내야 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A양을 수 차례 성폭행해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조모(45)씨에 대해 중형이 선고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내 논란을 일으켰다.

대법원 판결 이후 조씨는 보석을 신청했고, 법원이 받아들여 석방됐다. 조씨가 찾아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숨어 지내다시피 했던 A양은 이날 파기환송심 법정에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A양은 아파서 병원에 있던 자신을 불러내 몹쓸 짓을 한 그가 꼭 처벌받아야 한다는 결심으로 이날 용기를 냈다고 한다. 머리를 짧게 친 A양은 증인 신분으로 형사8부(부장 이광만) 재판부에 당시 상황을 전하며 "(피고인에게 서신 등을 보낸 건) 말을 듣지 않으면 화낼까 봐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했다"는 취지로 거듭 말했다. 감정에 북받친 A양이 눈물을 흘려 신문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날 법정에 있던 한 법조인은 "A양이 이날도 강압에 의한 성폭행을 당했다는 변함 없는 주장을 했다"고 전했다.

피고인인 조씨도 이날 법정에 출석해 성폭행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신문이 별도로 진행돼 A양과 조씨가 대면하진 않았다.

A양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낸 데는 대법원이 법리적 오류를 판단하는 법률심이 아닌 1ㆍ2심이 담당하는 '사실심'에 가까웠기 때문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대법원은 연예기획사에서 일한다며 미성년자 A양을 현혹해 성관계를 가진 조씨와 A양이 "사랑한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A양이 다른 형사사건으로 구속된 조씨를 매일 찾아간 점과 '오빠', '자기야' 등 호칭이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 수백여건 등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13세 이상 미성년자는 성매매가 아닌 '합의'에 따른 성관계로 인정되면 처벌할 수 없다.

1ㆍ2심은 A양의 증언을 직접 듣고 "부모 또래이자 병원에서 우연히 알게 된 조씨를 며칠 만에 이성으로 보고 성관계를 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고, 조씨의 갑작스러운 강간 시도에 제대로 저항도 못한 채 당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맞다"며 각각 징역 12년, 9년을 선고했었다. 서류로만 판단한 대법원과 달리 A양의 진술이 일관성이 있다고 보고 받아들인 것이다. 대법원이 돌려보낸 이번 사건은 내달 1일 결심공판이 열린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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