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동아일보

[Healing Travel]경이로운 활화산·신이 살 듯한 협곡.. 규슈의 속살을 만나다

입력 2015. 03. 11. 03:03 수정 2015. 03. 11. 03:03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산큐패스로 떠나는 규슈

[동아일보]

장구한 세월 동안 고카세 강의 물길에 침식된 협곡을 이젠 사람들이 배로 지난다. 드러난 용암벽엔 폭포까지 걸려 신비로움을 더하는데 그게 여길 일본 건국신화의 현장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긴 겨울도 이제 막바지. 꽃 소식이 들려온다. 그럼에도 외출복은 여전히 겨울옷. 아침저녁 한기와 꽃샘추위 탓이다. 그러다 보니 여행이나 꽃 나들이는 아직 언감생심. 일본의 규슈는 이렇듯 겨울도 봄도 아닌 이맘때에 찾을 만한 훌륭한 대안(代案)이다. 규슈 전역에서 모든 버스를 자유로이 탈 수 있는 저렴한 산큐패스 한 장이면 봄이 한창인 규슈를 3, 4일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서다. 오늘은 거기서도 남쪽, 미야자키(宮崎) 현으로 안내한다. 태평양과 울창한 수림, 비경의 협곡이 기다린다.

버스와 철도, 그 차이

3년 전 규슈 버스여행을 시작한 이래, 일본에서의 철도여행은 내게 그 빈도가 크게 줄었다. 철도여행으로는 느낄 수 없던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에 빠진 덕분이다.

버스여행 최고의 매력, 그것은 해방감이다. 기차는 왠지 실려 간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버스는 그렇지 않다. 더 느긋하고 편안하다. 일상을 오고가는 교통수단이란 점도 버스만의 장점이다. 그래서 좀더 가까이서 일본과 일본인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또 어디든 마음 내키면 당장 내려 기웃거릴 수 있는 것도 버스여행의 매력이다. 기차도 가능은 하겠지만 불현듯 내리고 싶은 느낌이 드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철도는 어느 도시든 보통 외곽을 통과하므로.

사람들은 말한다. 일본어도 못하는데 버스여행이 가능하겠느냐고.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 그걸 대신할 수단이 널려 있다. 일본버스의 친절한 안내시스템이 그것이다.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착용한 버스기사는 매번 다음 정류장을 육성으로 안내한다. 고속·특급버스의 실내요금표는 정류장 이름을 일본어와 영어로 게시한다. 한글도 가끔 보인다. 나는 운젠(나가사키 현)에서 홀로 여행하던 미국인을 버스에서 만났는데 그 역시 일본어를 할 줄 몰랐다. 그런데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친절한 일본인 덕분인데 영어를 대략 알아듣고는 늘 도와주어서란다. 그건 나도 늘 경험하는 일이다. 게다가 버스센터는 시간표를 정확하게 게시한다. 인쇄한 시간표도 반드시 비치한다. 그것만 지니고 있어도 버스를 타고 내리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영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의외로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서다. 그러니 버스여행을 겁내지 말자. 물어물어 찾아가는 게 여행 아닌가.

분화 중인 아소산을 넘어

규슈여행의 출발지는 대개 후쿠오카 시내다. 제주도 가는 시간이면 닿을 만큼 가까워서다. 후쿠오카 시내버스를 자세히 보면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단 한 대도 예외 없이 모두 '니시테쓰(西鐵)' 버스여서다. 니시테쓰는 '서일본철도(西日本鐵道)'의 줄임말. 니시테쓰는 '학문의 신'을 모신 후쿠오카 명소 '다자이후'를 오가는 다자이후센을 비롯해 이 도시의 몇몇 철도노선을 갖고 있는 사설철도회사다. 이 회사는 후쿠오카 중심가 덴진에 철도역과 버스센터를 갖고 있고 호텔(솔라리아)과 백화점까지 운영하는 후쿠오카 현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이다.

산큐패스는 이 니시테쓰를 중심으로 규슈 7개현의 모든 버스회사(51개사 2400개 노선)가 협력해 운영하는 외국인전용 기간제 할인권. 바다건너 혼슈의 야마구치 현 일부까지 통용된다. 패스는 일본에서도 살 수 있지만 할인판매를 하는 한국에서 사는 게 이익이다. 이번에 나는 규슈북단의 기타큐슈 시(후쿠오카 현)부터 찾았다. 간몬(關門)해협을 사이에 두고 지척간인 혼슈의 시모노세키 항(야마구치 현)과 모지 항(규슈)을 두루 살필 참으로. 그 뒤 고속버스로 남쪽 구마모토 시로 내려왔다. 일본의 건국신화가 탄생한 미야자키 현 다카치호를 찾아서다.

구마모토는 가고시마와 나가사키 시처럼 노면전차를 운행한다. 나는 그 느릿한 움직임이 좋아 기회만 있으면 이 세 도시를 찾는다. 마침 투숙한 뉴오타니 호텔은 전찻길 앞이었다. 다카치호행 특급버스도 근방서 출발(오전 9시 11분)하기에 그날 아침은 발길이 가벼웠다. 다카치호에 도착한 것은 낮 12시 20분. 그곳은 남규슈 동해안(태평양)의 미야자키 현에서도 북쪽의 내륙산악지대다. 아주 오래 전 아소산 분화 당시 용출된 용암대지인데 구마모토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아소산 분화구를 왼쪽에 두고 내내 동쪽을 향해 규슈를 횡단하기 때문이다. 다카치호는 그 산자락의 끝이다.

다카치호를 찾은 날은 지난해 11월 25일로 아소산의 나카다케가 크게 분화한 이틀 후였다. 나는 운 좋게도 차창을 통해 하늘 높이 솟구치는 거대한 화산재 연기를 볼 수 있었다. 그중 압권의 전망장소는 다카치호 도착 전 마지막 정류장인 다카모리 마을(미나미아소 군). 분화장면을 영화처럼 멋지게 조망할 수 있었다. 이런 행운도 버스여행이었기에 가능했다. 철도였다면 잠깐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1800년 역사의 다카치호 신사. 신녀가 아침 안개속에서 낙엽을 쓸고 있다.

신화의 산실 다카치호

세상 어느 나라든 건국신화는 있게 마련. 그런데 일본은 좀 다르다. 신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 125대인 아키히토 왕(1989년 취임)까지 모든 왕이 신화의 주인공인 진무왕(기원전 711∼기원전 585) 후손으로 인정받고 있어서다. 물론 패전 후 일왕은 '인간선언'을 통해 더이상 신격을 갖진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 왕은 국가의 상징적 존재로 신격화된다. 미야자키 현은 그 신화의 무대다. 니치난해안의 작은 섬 아오시마는 진무왕의 할아버지(야마사치히코)가 용왕의 딸과 결혼한 뒤 물 밖으로 나온 곳이다. 근방의 우도신궁은 아들(진무왕의 아버지)을 낳고는 용궁에 숨어든 용왕 딸을 대신해 젖을 물린 동굴이다.

이게 '천손강림(天孫降臨)'신화인데 다카치호는 거기서도 핵심장소. 신화에 따르면 일본은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손자 니니기노미코토가 볍씨를 뿌려 안개를 없앤 뒤에야 무사히 지상에 내려옴으로써 건국됐다고 하는데 나라를 세운 곳이 여기 다카치호다. 그렇다 보니 다카치호 산중에는 관련 신화의 장소가 신사 형태로 곳곳에 존재한다. 그래서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다녀가는 곳이 됐다. 연중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대표적인 곳은 세 곳인데 1800년 역사의 다카치호 신사, 아마테라스 여신이 숨는 바람에 세상이 온통 어둠에 휩싸여 혼돈이 일어났다는 동굴 아마노야스카와라, 이 동굴을 모시는 아마노이와토 신사가 그것. 신화는 그 민족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그러니 비록 허구라 하더라도 여행자는 그 나라와 국민에 대한 예의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화와 관련이 없더라도 다카치호 신사와 동굴은 그 자체로 찾을 만하다. 경관이 수려하고 산책 삼아 걷기에 좋은 숲길, 정취 있는 분위기가 매력이다.

천상의 풍치, 다카치호 협곡

그런 다카치호의 풍광 중에서도 최고는 다카치호 협곡이다. 내가 가본 일본 전국의 비경 중 최고라 할 정도다. 협곡은 노 젓는 보트로 통과할 수도, 절벽 가장자리의 산책로로 걸으면서 감상할 수도 있다. 어떻게 촬영해도 멋진 사진을 얻을 만큼 아름답고 완벽한 촬영 포인트가 산재해 있다. 그래서 협곡에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 협곡 역시 아소산 분화 때 분출된 마그마로 이뤄진 용암대지. 오랜 세월 고카세 강에 의해 침식돼 이런 비경을 빚어냈다. 인간세상이 아닌 듯한 느낌의 경치가 여길 신화의 땅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Travel Info▼

다카치호(高千穗):

미야자키 현 니시우스키 군

◇찾아가기:

후쿠오카 덴진버스센터(고속버스 하루 4회·왕복 7200엔)에서 3시간 반, 구마모토 역(95km·특급버스 하루 2회·왕복 4110엔) 2시간 50분, 벳푸 3시간, 유후인 2시간 40분, 구로카와온천에서 2시간 소요.

◇현지관광:

자전거 혹은 렌터카 이용(반나절도 대여)

◇호텔 다카치호:

www.h-takachiho.com 총연장 1115m의 터널을 활용해 소주를 장기 숙성하고 저장고 '톤네루노 에키'도 운영.

◇다카치호정 관광협회:

www.takachiho-kanko.info(한글페이지 제공)

산큐패스(SunQ Pass):

규슈 전역과 시모노세키(야마구치 현)에서 버스는 물론이고 세 항로의 배와 일부 철도까지 정해진 기간에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할인패스(사진). 전 규슈권(3일·4일권)과 북부규슈권(3일권·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오이타 구마모토 등 5개현만 사용가능) 등 세 종류가 있다. 가격은 1만4000, 1만, 6000엔. 규슈투어(www.kyushutour.co.kr) 등 국내여행사에서 할인 판매한다.

◇이용:

'SunQ Pass'라고 쓴 스티커 부착 버스는 모두 탑승 가능. 일본버스는 뒷문으로 타고 앞문으로 내리는데 탈 때는 반드시 정리권을 뽑는다. 내릴 때는 정리권을 함에 넣고 운전기사에게 패스를 보여준다. 일부 고속버스 노선은 전화로 예약을 해야 한다. 필요하면 3자 통역서비스(무료)를 요청한다.

△규슈타비(http://kyushutabi.net):

산큐패스와 이를 이용한 규슈여행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담은 블록. 다양한 이벤트도 펼치고 있다.

다카치호(일본 미야자키 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