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마을 중3 아이들, 이러고 삽니다

2015. 3. 1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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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중미의 신작 성장소설 <모두 깜언>

[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오늘도 수많은 책이 출간되고 있을 것이다. 세월 따라 묻히는 것이 아쉬운 책들이 있다.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도 그 중 하나. 어느 날 문득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 떠올라 '다시 한 번 읽어야지' 생각했지만, 다시 읽지 못한 채 몇 년이 지나고 말았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은 인천의 한 달동네다. 작가가 그 달동네 만석동에 13년 동안 살면서 그곳의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만난 아이들과 부모들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어떤 환경에 처한 누가, 어떤 날을 보낸 후, 어떤 상황이 되는가?'와 같은 작품 줄거리보다 가난해 가진 것 없는 그들의 현실에 대한 측은함과 그런 그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힘이 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내 매우 인상 깊은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모두 깜언>(창비 펴냄)은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저자가 인천 만석동 이후 강화도로 이주, 13년 동안 살면서 만석동에서처럼 동네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하며 만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살아가는 농촌의 이야기다.

상처 품고 자란 아이들, 서로 위로가 되다

<모두 깜언> 책표지.

ⓒ 창비

누군가가 나를 공격이라도 할까 봐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다치지 않고, 외롭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그 사람들은 나처럼 주먹을 쥐고 있지도 않았고 방패를 들고 있지도 않았다. 나만 혼자 주먹에 잔뜩 힘을 주고, 감당하지 못할 만큼 무거운 방패를 든 채 힘겨워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멋쩍어졌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방패를 치우고 주먹도 슬쩍 폈다. 그렇게 할머니한테 대들어 보기도 하고, 작은엄마에게 다가가 말도 걸었다. 그러자 작은 엄마가, 용민이와 용우가 다르게 보였다. 할머니의 무뚝뚝한 말투에 숨은 마음도 보였다. 나는 그렇게 열일곱이 되었다. - <모두 깜언> 중에서

유정이는 일명 '언청이'(구순구개열)로 태어났다. 동네 사람들이 숙덕거렸다. "산모가 성병을 앓았거나 술 담배를 했기 때문"이라고.

의사는 "꼭 성병 때문이 아니라 임신 초기에 감기약을 먹었거나, 영양실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유정이 아버지는 마을 사람의 말에 더 귀기울여 언청이로 태어난 아기 때문에 마음 아픈 아내를 감싸주기는커녕 몇 날 며칠 술만 마시다 집을 나가고 말았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지 한 달 후 엄마도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아버지가 죽었다. 유정이는 그렇게 버려졌다. 그런 유정이를 할머니와 당시 총각이었던 작은아빠가 거둬 키웠다. 작은아빠는 제 자식처럼 유정이에게 헌신했다. 어떤 어려움과 슬픔도 이겨내는 힘이 됐을 만큼 유정이에게 작은아빠의 존재는 든든하기만 했다.

자라면서 유정이의 어린 시절을 모르는 사람들은 유정이가 구순구개열이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수술의 흉터도 희미해졌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유정이는 매우 반듯한 아이다. 그럼에도 유정이는 늘 헛헛하기만 하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얻은 상처 때문이다.

이런 유정이 주변에 지희와 광수 그리고 우주가 있다. 어릴 적부터 살문리에서 함께 자라온 지희와 광수도 그리고 걱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을 것 같은 우주도 나름 만만찮은 상처가 있다. 서로 그간 몰랐을 뿐이다.

유정이와 그 친구들은 감수성 예민한 나이인 중3. <모두 깜언>은 이처럼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반항 혹은 방황의 이유가 될 수도 있을 만큼 깊은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되고, 서로의 상처를 위로해줌으로써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나가는 1년 동안의 이야기다.

내면의 상처 때문에 말을 더듬어 놀림을 받기도 하나 속이 깊은 유정이, 번번이 핀잔을 들으면서도 유정이를 살뜰하게 챙기는 광수, 걸핏하면 가출을 말하는 지희, 서울에서 전학 온 데다 공부도 잘하고 멋있어서 많은 여학생이 좋아해 멀게만 느껴지지만 자꾸 신경이 쓰이는 우주... 이들이 한데 어울려 겪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펼쳐진다.

결핍은 곧 사랑의 힘으로

"... 친환경이든 관행농이든 농사는 이제 끝이야. 정부에서 하는 짓 보면, 농업은 대농들만 남기고 다 죽이겠다는 거야. (...) 나같이 영세한 낙농업자한테는 이제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 아냐? 소 200두, 300두씩 키우던 사람들이 지금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 이번에는 돼지 농장들이 피해가 더 크다고 하데. 1000두 이상 키우던 농장이나 100두 남짓 키우던 농장이나 다 싹쓸이야." - <모두 깜언>에서

작품의 배경은 강화도 읍내의 한 변두리인 살문리라는 곳. 작가는 작품의 배경인 강화도를 '농촌과 어촌의 삶이 공존하고, 수도권에 자리한 탓에 도시 문화가 유입되면서 사람들이 잇속에 밝고 도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 또한 높다'고 말한다.

소설은 강화도의 이 같은 지역적 모습과 더불어 우리의 낮은 식량자급률에 대한 염려, 자유무역협정(FTA)과 구제역 등으로 좌절하는 농촌 사람들의 고단한 현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소외감과 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 등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래서 이 소설의 의미는 좀 더 남달라진다. 참고로 '깜언'은 베트남어로 '고마워'라고.

"결핍은 사람과 사람을 맺어 주는 매개가 되고, 서로 사랑하게 하는 힘이 된다. 내게 그 결핍의 힘을 알려 준 것은 항상 마을과 학교, 그리고 공부방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 가는 청소년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현실. '모두 깜언'의 주인공들을 통해 이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 <모두 깜언> '작가의 말'에서

소설의 주제인 결핍의 요소들과 연결지어 읽는 것도 이 소설을 한층 의미있게 만나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우리는 풍족함이 행복한 삶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그 반대로 결핍이 사람들을 꼭 불행하게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면서도 어느새 잊곤 한다.

이 책 <모두 깜언>은 우리가 이처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느새 잊기 일쑤인 결핍을 통해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처럼 줄거리보다 서로를 위로하고, 힘이 되는 과정이 따뜻하고 여운이 남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괭이부리말의 여운을 다시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

<모두 깜언>(김중미) / 창비 / 2015-02-06 / 1만 1000원이 기사를 응원하는 방법!☞ 자발적 유료 구독 [ 10만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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