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일간의 세계여행] 8. 바라나시 가는 길, 하염없는 기다림의 끝
[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야간버스는 12시간을 달려 칸푸르(Kanpur)에 도착한다. 잘 포장된 도로는 아니어서 밤새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잠은 설쳤다. 아침 6시, 예정에도 없는 낯선 도시 칸푸르에 내린다. 버스터미널로 갈 줄 알았는데 시내 어딘가에 내리게 되니 막막하다. 모두 다 하차하라니 더 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새벽이라 노점도 가게도 없는 조용한 거리, 정보도 없이 그냥 경유하게 된 도시, 그래도 믿을 것은 순박한 사람들뿐이다. 외국인이 드나드는 관광지가 아니어서인지 사람들의 눈길이 내 얼굴과 배낭에 꽂히는 걸 느낀다. 사람이 적지는 않으니 위험한 일은 없을 것 같다.
막 문을 여는 인상좋은 가게 아저씨에게 바라나시 갈 수 있는 버스터미널 가는 방법을 묻고 양치하고 용변 볼 화장실도 구한다. 영어가 잘 안통해서 가이드북의 생존회화를 편다. 한국말로 쓰여진 힌디를 읽어 의사소통을 한다.
"야하 바라나시 버스 타게트 밀레가? (바라나시 가는 버스 있어요?)"
"버스 끼뜨나 바제 헤? (버스가 몇시에 있어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힌디를 사용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생존회화에 없는 문장들은 고유명사만 말하는 방법으로 의미를 전한다. 한두 사람에게 의미전달이 되면 나머지 사람들에게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주니 의사소통은 어렵지 않다. 이제 릭샤를 타면 되는데 문제가 생긴다. 그 와중에도 릭샤왈라들은 담합이라도 한 듯 말도 안 되는 가격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비용에 릭샤를 타기는 싫어서 실랑이가 길어진다. 젊은 릭샤왈라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 받으며 줄곧 100루피를 부른다.
안되겠어서 늘 하는 방법을 써본다. 지나가는 릭샤를 세워서 물어보는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그 릭샤왈라는 오십루피를 부른다. 바로 릭샤에 오른다. 여태 흥정하던 사람들을 뒤로 하고 떠난다. 처음 릭샤왈라들이 욕심 부리지 않았으면 서로 좋을 것을. 이제 릭샤는 얄미운 그들을 뒤로하고 떠난다.
도시의 아침이 깨어나는 모습을 보며 터미널로 간다. 나뭇가지를 가득 실은 짐수레를 끄는 소도 보인다. 인도에서 편히 노는 소들은 많이 봤는데 일하는 소는 처음 보는 것 같다. 해가 떠오르고 아침 공기가 상쾌해진다. 힘들어도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피곤해도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기에 이 순간을 즐긴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8시, 바라나시 가는 표가 있었다. 표를 사고 터미널을 둘러보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편안해지니 배가 고파오는 단순함이라니… 이제 막 문을 연 식당에 들어가 허기를 채우고 버스를 기다린다. 자이푸르의 친절한 투어리스트 오피스 직원이 쿤푸르에서 바라나시는 4시간 쯤 걸린다고 했으니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된다. 많이 기다리고 크게 실망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기운이 남아있다.
버스에 탄다. 버스는 좌석번호도 없는 완행이다. 외국인들도 없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이야 당연한 거라 신경 안쓰고 가리라 맘 먹는다. 커다란 짐들이 놓여있는 버스 앞쪽에 불편하게 앉아 큰 배낭과 작은 배낭을 지키고 간다. 어느 정도 시외로 갈만하면 시내로 진입해 사람들을 내리고 태우는 버스다. 자이푸르의 투어리스트 오피스 직원은 분명히 4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아마 사설 버스를 이야기 한 듯하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아까 쿤푸르에 내린 곳이 사설버스 정류장이었을 것 같다. 그냥 거기서 기다리면 될 것을, 이른 아침에 내리게 되면서 생긴 조바심에 공용버스정류장으로 가게 된 것 같다. 말이 잘 안통해서 상세히 물어볼 사람도 없긴 했다.
어쨌든 이 버스도 바라나시로 가긴 가는데 온종일 가는 버스일 뿐이다. 바라나시로 가는 버스가 그 버스밖에 없는 건지 상황을 알 수도 없다.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영어도 안통하고 그냥 허튼 미소만 지으며 간다. 버스는 8시간을 갔다. 사람들이 바뀌고 풍경이 바뀌고 시간이 느릿느릿 지나간다. 온종일 가다보니 버스안에 울려퍼지던 인도 음악마저 익숙해진다. 이젠 버스기사 아저씨가 가끔 뒤돌아보며 아는 척도 해준다. 저렇게 운전하면 기사가 얼마나 힘들까 싶기도 하고 운전솜씨에 감탄도 하게 된다.
버스여행이 기차보다 좋은 점은 좀 더 가까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는 길목마다 들르는 도시나 시골 풍경이 다양해서 재미있다. 정차해서 점심 시간도 주고 간식 살 시간도 주고 화장실 갈 시간도 준다. 버스가 시간은 잘 지키는 건지, 사람들이 잘 참고 기다리는 건지 정차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계속 내리고 탄다.
버스가 가는 길은 중앙선이 잘 그어진 고속도로가 아니다. 시외도로인데도 중앙선은 커녕 신호체계도 하나 없다. 가변차선도 아닌데 역주행은 기본이다. 경적을 너무 크게 자주 울리는 게 거슬렸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이해가 된다. 차 뒷편마다 "Please Horn"이라는 글이 알아보기 쉽게 서있다. 서로 경적을 크게 울려주는 것이 신호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온종일을 달려도 교통사고가 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해가 질 무렵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4시간으로 예상한 길이 8시간이 넘게 걸렸다. 6년 전과 다름없이 바라나시 정션역 앞은 사람들과 릭샤들과 자동차로 바글거렸다. 익숙한 공기가 떠다닌다. 오토릭샤에 올라 다사스와메드 가트(Dasaswamed Gatt)로 간다. 연말이어선지 오늘 정치인이 다녀갔다는 거리에는 차가 막힌다. 목적지까지 못가고 내려 배낭을 메고 낑낑대며 걷는다. 사서 고생이라는 말이 지금 내 모습과 딱 맞다. 어렵게 시간 내고 용기 내어 장기여행 떠났는데 여행초반부터 무슨 고생이 이렇게 심한지 모르겠다. 내가 시작한 여행, 내가 정한 일정, 내가 저지른 실수,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날짜를 하루 잘못 계산한 결과가 이런 괴로움을 안겨준다. 여행 시작하고 일주일인데 밤기차, 낙타사파리, 야간버스로 얼룩진 노숙의 연속이다. 겨울이라 춥다고 북인도 일정은 델리-자이살메르-바라나시만 잡았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기간이 연말연시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남은 여행에 이런 힘든 여정은 만들지 말라는 교훈이 될 것이다.
다시 오기를 간절히 원했던 이 도시, 바라나시는 여전히 느낌이 좋다. 인도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던 그 풍경들을 본다는 기대감에 기분이 들뜬다. 여기선 이제까지의 어설픈 좌충우돌은 잠잠해질 것같은 예감이 든다. 한번 와 본 곳이라 어렵지 않게 벵갈리토라의 숙소를 찾아 짐을 푼다.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 샤워까지 마치고 나니 졸음이 밀려온다. 하염없을 것 같은 기다림 속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세상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우주의 규칙으로 진행되는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우여곡절, 다사다난, 파란만장한 것 같은 일주일이 휙 지나갔다. 온종일 죽 끓듯 변덕스러웠던 마음도 잠잠해진다. 끝없이 기다릴 것 같기만 했던 하루도 끝나는 중이다. 드디어 방에서 잔다. 잠이 꿀맛이다.
정리=강문규 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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