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마이뉴스

"우리는 션이 아니다".. 보통 아빠의 변명

입력 2015. 03. 18. 11:47 수정 2015. 03. 19. 09:29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신입 아빠로 살아가기! ⑦] 4대 기피영역.. 이유식, 아기목욕, 대변 기저귀, 재우기

[오마이뉴스 연응찬 기자]

이서보다 5개월 먼저 태어난 아기를 기르는 선배 부부가 있다. 가끔 만나서 육아에 관해 이런저런 조언을 듣는다. 그런데 선배 부부는 유독 우리 부부보다 피곤하고 지친 기색을 보일 때가 많다. 당시에는 우리 애가 순해서 좀 편한가 보다 하고 넘겨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 이서가 그땐 어려서 한결 여유로웠던 것이다.

아내에게 토요일에 영화 보고 오라고 했다

▲ 사진 찍는 아빠를 보고 웃는 딸 이서

육아가 아무리 힘들어도 이 웃음에 다 잊는다.

ⓒ 연응찬

최근 몇 주 동안 매 주말마다 처와 본가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 보니 느끼지 못했다. 이서가 소위 '빡센' 아이가 되어 있다는 것. 요즘 이서는 끊임없이 사방을 돌아다니고 의자를 짚고서 혼자 일어서려다가 굴러 넘어지기 일쑤다.

'콩' 혹은 '쿵'하는 소리와 함께 우는 아이를 보면 귀엽기도 하지만, 얼마나 아프면 저렇게 서럽게 울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기분이 좋을 때는 혼자서도 잘 놀지만, 기분이 별로일 때는 아빠, 엄마에게 안아 달라고 칭얼거린다. 혼자 놀더라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곁에 계속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아내는 한 주를 보내고 완전 지쳐 버렸다.

인내심이 많은 아내가 이유식을 먹이다가 아이를 '콩' 한 대 쥐어박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정말,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래서 토요일에 혼자 영화를 보고 오라고 했다. 아내의 외출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뭔가 남다름을 느끼며 속으로 긴장했다.

사실 이번 이서와의 둘만의 시간은 내가 조금씩 반칙을 써서 쉽게 넘겼다. 내 꼼수는 다름아닌 '아기띠'였다. 이서 엄마가 나가자마자, 아기띠에 이서를 안고 계속 돌아다니며 재웠다.

내가 앉으면 이서가 깨기 때문에 계속 서있어야 하는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MBC <무한도전> 다시보기를 보며 나름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아이에게 괜한 죄책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와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기보다 잠깐 떼우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 엎드려 아빠를 보는 딸 이서

이서는 정말 끊임없이 움직인다. 심지어 기저귀 갈아 줄 때도!

ⓒ 연응찬

사실 요즘 반성 혹은 고민되는 것은 아빠와 엄마의 육아 영역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대부분 육아를 아내가 도맡아 하고, 나는 퇴근 후나 주말에 일정 부분만을 담당한다. 그 일정 부분만이 나의 육아라고 생각했다.

가령 이유식의 경우, 제조하는 데에 2~3시간 걸리고 먹이는 데에 평균 30분~1시간 걸린다. 이는 아내가 거의 전담하고 나는 이유식 거리 장보기나 아이가 입을 벌리도록 재롱 부리는 수준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조금 먹다가 입을 굳게 다문 이서에게 온갖 노래와 춤으로 웃을 수 있게 한다. 그 틈에 얼른 숟가락을 입 속에 넣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유식의 모든 뒤치다꺼리는 아내가 담당하고 있다.

그외 이서 목욕과 대변 기저귀 처리도 슬금슬금 피하고 있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 더 헌신적인 아빠가 되어야 한다는 자기 부담과 게으름이라는 양자 간의 충돌이 늘 내면에서 일어난다. 물론 대부분 게으름이 승리한다.

션이 '신계'라면 우리는 그저 '인간계'에서 고민하는 수준

▲ 엄마가 떠주는 이유식을 먹는 이서

잘 먹지 않는 이서 탓에 이유식 시간은 점점 전쟁이 되고 있다.

ⓒ 연응찬

육아에 대해 다른 학교 선배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선배는 일본 근무 중에 쌍둥이를 어렵게 출산했다. 지금은 훌쩍 커서 뛰어다니는 개구쟁이 형제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인큐베이터에서 부모 가슴을 졸이게 한 주인공들이였다. 그런데 그보다 놀라운 것은 쌍둥이의 목욕과 아기 재우기를 선배 형이 다 해왔다는 점이다.

귀찮을 텐데도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직접 씻기고 재우기를 몇 년 동안 해 왔단다. 그 덕에 선배 누나는 임신 이후 휴학했던 대학원을 다시 다니기 시작해, 최근에 졸업까지 했다. 누나도 고생했겠지만, 형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얼마 전 가수 '션'이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이후 '저건 션만 가능하다'고 쓴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남편들은 사실 좀 뜨끔했을 것 같다. 슈퍼맨도 저런 슈퍼맨이 없으니까 말이다. 션이 '신계'라면 우리는 그저 '인간계'에서 고민하는 수준이랄까.

▲ 온 가족이 함께하는 이유식 시간

엄마는 먹이고 아빠는 웃겨야 한다. 딸은 받아먹기만 하면 만점!!

ⓒ 연응찬

사실 뭐가 정답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션이나 선배 형처럼 육아에 있어 본보기가 되는 모습의 유형이 있는가 하면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는 피곤해 잠만 자는 아빠도 있을 것이다.

다들 나름의 상황과 사정이 있을 테니까. 나는 저 중간쯤 될까? 그래도 나는 션이나 쌍둥이 아빠인 선배 형의 예가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지 정답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피하고 있는 대변 기저귀, 목욕시키기, 재우기, 이유식에 대한 행동들이 잘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아내의 배려를 이용해 내 게으름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나도 여유가 되면 내 육아 기피 영역에 참여하고 함께해야 하는 게 맞다. 다만 너무 헌신적인 저 아빠들로 인해 모든 아빠들이 단죄를 받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각자 상황에 맞게 부부가 조율하되 목표는 행복한 가정에 둔다면 그게 각 가정의 정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궤변 섞인 답을 내고 싶다.

사실 현재 나의 답은 명확하다. 게으름을 이겨내서 오늘 퇴근 후 이서의 대변 기저귀를 처리해주고 목욕을 시켜 재우는 일이다. 다만 이유식은 먹이기부터 시작해 봐야겠다.이 기사를 응원하는 방법!☞ 자발적 유료 구독 [ 10만인클럽]

모바일로 즐기는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Copyrights ⓒ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